대만을 보는 우리의 시각

대만을 보는 우리의 시각

글 박윤철 호서대 중국학과 교수 / pkwlka@hoseo.edu 

대만의 민주주의를 이해하기 전에, 먼저 대만을 바라보는 우리의 기본적인 시각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한 사회에 대한 깊고 애정 어린 이해를 위해서는 외부적 시각과 함께 내재적 시각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한국 언론은 대부분 대만에 주재기자를 두지 않고, 북경 혹은 홍콩 특파원을 활용하여 대만을 관찰하고 있다. 그들이 중국적 시각에 경도되지 않고, 기자로서의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라 믿지만, 공간적 한계는 쉽게 극복되지 않는다. 대만인들의 삶에 대한 구체적 이해에 기초하지 않은 외부 중심적 사고는 대만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차이(蔡)정부와 대만인의 딜레마

2016년 5월 20일 집권한 이래, 차이 정부는 지지도가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집권 1년 만인 최근 세 여론조사에서 각각 39.4%(聯合報), 30%(臺灣民意基金會) 및 18.4%(臺灣守護民主平台)의 낮은 지지율을 얻고 있다. 대만인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 8년 만에 정권을 재장악한 진보정부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의 근원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대만의 차이 정부 자체의 집권능력과 사회적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대만의 외부적 조건에 대한 관찰도 필요하다.

먼저 주요한 대외적 조건을 관찰하면, 대만은 자신에 비해 압도적인 군사력과 경제력을 지닌 중국대륙과의 관계 속에서 생존을 추구하고 있다. 중국의 면적과 인구는 각각 대만의 약 270배와 약 59배에 달한다. 대만 수출의 대중국(홍콩 포함) 의존도는 40% 수준에 이르고, 더욱이 대만의 제조업은 중국-대만 생산분업 체계하에서 중국을 자신의 생산기지로서 깊이 의존하고 있다. 양자의 현격한 국력차이와 경제적 의존은 대만의 자주적 결정에 분명한 제한을 가하고 있다. 중국은 자주적인 독립 노선을 추구하는 대만에 대하여 정치, 군사, 외교 및 경제 등 각 방면에서 압박을 가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 중국의 압박으로 주요 우방인 파나마는 대만과 단교하였다. 이러한 압박은 안보불안과 경제적 침체를 가져와, 민주적 개혁을 위한 정치적 동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다음, 대만 내에서 경제회복과 진보적 개혁에 대한 요구는 분출되고 있으나, 차이 정부는 이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집권능력을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 실제로 진보적 개혁의제인 ‘노동시간 법안’, ‘국민당재산 환수(막대한 국민당 재산은 일당독재 시절에 불법적으로 차지한 사실상의 국가재산이다)’, ‘국민연금’, ‘청년취업 문제’ 및 ‘동성결혼 허용’ 등 일련의 정책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보수세력의 완강한 반대 때문이기도 하지만 차이 정부의 소통능력과 추진력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차이 총통은 중요한 개혁의제를 실현하기 위해 직접 나서서 국민과 언론 및 국회 등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예를 들면, 최근 중요한 사회 이슈였던 동성결혼 문제에 대해 전혀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지 않고, 그 문제의 해결을 사법원(司法院)에 떠넘겨버렸다. 한편, 차이 정부는 중국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해, 화교들이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고 대만과 강한 유대감을 갖고 있는 동남아지역에 수출과 투자를 확대하는 ‘남향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다지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 대만 국기와 도시 전경

중국과 대만의 역학관계 속에서 대만의 경제발전과 정치적 자주성은 서로 역상관관계에 놓여 있다. 경제발전을 위한 중국과의 유대강화는 대만의 정치적 자주성 혹은 독립을 제한하고, 정치적 자주성이나 독립에 대한 과감한 주장은 직접적인 부메랑이 되어 경제위기를 자초하게 된다. 그러므로 차이 정부와 대만인은 위와 같은 구조적인 조건 속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92공식(九二共識)과 위기의 양안관계

소위 말하는 ‘92공식(共識)’은 중국과 대만의 공식 국가기구 간에 협의된 내용이 아니며, 또 문서화된 협의나 합의가 있는 것도 아니다. 국민당의 주도적 개혁에 기초한 민주화가 진행되던 시기인 1992년 반관반민(半官半民)기구인 대만의 ‘해협교류기금회’와 중국의 ‘해협양안관계협회’ 간의 협상 과정에서 도달한 구두합의에 불과하다. 그 내용에 대한 양자의 해석도 각각 상이하다. 대만은 ‘하나의 중국, 각자 표현한다(一中各表)’라고 주장하고, 중국은 ‘하나의 중국을 각자 표현한다(各表一中)’라고 주장한다. 이는 언어유희처럼 보이지만, 대만의 주장은 “자신의 정식국호인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이 각각 따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대만의 입장에서는 중국이 해석하고 있는 92공식을 기본적으로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반면에 중국의 주장은 “하나의 중국만 존재하는데, 그 표현은 각자의 방식으로 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중국의 입장에서는 대만이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92공식을 위반하는 것이 된다고 본다.


✽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대만 가오슝의 쭤잉 해군기지를 방문, 잠수함 위에서 주먹을 쥐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대만의 국내적 관점에서 중국의 압박은 단기적으로는 대만의 독립주장을 억제하는 효과를 발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대만 여론이 중국에 더 부정적으로 돌아서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최근 대만의 한 여론조사(新臺灣國策智庫)에 의하면, 55.7%가 ‘현상유지’를 지지하고, 23.3%가 ‘독립’을 지지하며, 11.1%가 ‘통일’을 지지한다. 그러나 중국의 강한 압박으로 대만이 고립되어 더 이상 ‘현상유지’ 정책을 유지할 수 없게 될 경우를 상정한 조사에서는 54.8%가 ‘독립’을 지지하고, 23.6%가 ‘통일’을 지지하며, 21.6%가 ‘무의견’으로 나타났다. 이는 대만인의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증대되어 양안관계가 더 악화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대만의 사회적 조건과 진보적 사회운동의 선구적 발전

대만에서 진보적 사회운동이 아시아의 그 어떤 나라보다 선구적으로 발전한 원인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대만 사회의 구조적 조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먼저, 대만은 1948년부터 1986년까지 수십 년 동안 군사계엄령하에서 국민당 일당독재체제가 유지된 나라이다. 이러한 독재체제 아래서 정치적 반대운동은 허용되지 않았다. 따라서 시민사회는 정치성이 상대적으로 은폐된 사회운동을 통해 시민을 동원하는 전략을 구사하였다. 그 대표적 운동이 환경운동, 여성운동 및 사회적 약자보호운동 등이다. 둘째, 대만에는 1949년 이후 국민당 정권과 함께 중국대륙에서 이주한 ‘외성인’과 오래 전부터 거주하고 있었던 ‘본성인’ 사이의 민족적 차별이 있었으며, 또 수천 년 전부터 정착하고 있었던 ‘원주민’에 대한 차별이 동시에 존재하였다. 따라서 사회적 차별에 상대적으로 민감한 사회적 조건을 갖고 있었다. 셋째, 대만은 한국과 유사한 유교문화권에 속하지만,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등주의 문화가 정착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서구문화의 유입이나 확산 속도가 한국에 비해 훨씬 빨랐다. 이러한 사회적 조건이 진보적 사회운동이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 주었다.


✽ 2016년 대만에서 열린 동성결혼 지지 집회 연합뉴스

몇 가지 사회운동을 예로 들면, 첫째, 대만의 환경운동은 한국과 비슷한 시기인 1980년부터 시작되었으나 그 발전과정은 한국과 상당히 상이했다. 대만의 환경운동은 중앙에서 먼저 시작되거나 주도한 것이 아니라 지역(지방)에서 먼저 시작되었고, 또 지역(지방)이 주도하였다. 나중에 지방조직의 연합체인 중앙조직이 결성되었다. 그들은 1980년에 이미 반핵운동에 돌입하여 그해 계획된 제4핵발전소 건설을 거의 20년간이나 시위 및 주민투표 등의 수단을 동원하여 저지하였다. 1999년 비로소 건설이 시작되었으나 지속적으로 반대운동을 전개하여 공사를 중단하게 하고, 2015년에는 정부로 하여금 거의 완성된 핵발전소를 3년간 봉쇄하고 안전검사를 하도록 하였다. 또 차이 정부는 기본적으로 2025년까지 완전 비핵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둘째, 동성애자 인권운동의 경우, 1990년에 이미 동성애 시민단체가 결성되었고, 1993년에는 대학 내에 동성애단체가 설립되었으며, 국회에서 동성애 문제에 대한 공청회가 열리기도 하였다. 그 후 지속적으로 동성애자 인권 향상을 위한 성평등법 등이 제정되거나 발의되었다. 동성결혼 허용이 차이 정부의 중요한 공약 중 하나가 되었으며, 2017년 5월 마침내 사법원(司法院) 대법관으로 구성된 헌법법정(憲法法庭)에서 동성결혼 금지가 위헌이라고 선포되었다. 셋째, 대만의 대체복무제는 2001년 병역법 개정과 ‘대체복무실시조례’의 제정을 통해 시작되었다. 대만의 복무기간은 줄곧 한국보다 짧았으며, 현재 1년이다(대학생 군사훈련 참여기간을 공제할 경우 11개월로 단축). 이러한 짧은 복무기간과 대만 사회의 약자보호문화는 대체복무제 채택에 긍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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