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Mini interview

비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글 박한나 자유기고가 / hanna_p@naver.com

성경에 따르면 신은 인류의 타락에 탄식하여 40일 동안 큰비를 내린다. 모두 물에 잠기고, 신의 명령에 따라 방주를 만들어 몸을 피한 노아의 가족과 동물들만이 살아남는다. 비가 그친 뒤 노아는 비둘기를 방주 밖으로 날려 보낸다. 앉을 곳을 찾지 못해 금세 돌아왔던 비둘기는 7일 뒤에는 올리브 잎을 물고 돌아왔고 그로부터 다시 7일 뒤에는 아예 돌아오지 않았다. 물이 빠져 땅으로 돌아갈 수 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고대 로마 시대에도 비둘기는 소식을 전하는 데 쓰였다. 특히 전쟁이 끝나면 군인들이 로마로 비둘기를 날려 보냈기 때문에 로마 시민들은 비둘기가 올 날만을 기다렸다. 기다리던 비둘기가 오면 로마에는 잔치가 열렸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전해지면서 비둘기는 다툼이 없고 서로 조화로운 ‘평화’를 상징하게 되었다.

오늘날 평화의 의미는 다양한 관점에서 폭넓게 해석되지만 좁은 의미로는 여전히 옛 유래에서처럼 ‘전쟁을 하지 않는 상태’로 정의된다. 평화를 목적으로 세계 곳곳에서 펼쳐지는 평화운동 역시 양심적 병역거부나 무기 개발‧군사 시설 반대 등 전쟁을 막고 그 위험을 없애려는 형태로 나타난다. 특별히 한국에서는 평화를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인 분단을 종식시킬 수 있는 ‘통일’ 관련 활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평화와 통일은 늘 후순위로 밀려난다. 마치 옛이야기의 교훈처럼 당연하다고 여기지만 어떤 계기가 있을 때나 잠깐 생각할 뿐 평소엔 잊고 산다. 가끔이나마 평화와 통일이 가치로 인정받을 때는 좋은 시절일지도 모른다. 요즘처럼 북한의 무력 활동이 거센 시기에 평화와 통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자폭 행위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평화를 말하면 안전은 어떻게 보장하냐며 차마 지면으로 옮길 수 없는 반응이 날아오고, 통일을 말하면 사상을 의심받는다.

그럼에도 통일을 꿈꾸고 평화를 말하며 애타게 비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평화의 소식을 전하는 비둘기를 날려 보내기 위해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평화와 통일이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고, 지금 당장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부탁한다. 반대해도 좋으니 자신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달라고. 그 부탁, 당신이 들어주길 간절히 소망한다. 나와 다른 생각에 주의를 돌려보는 것, 민주 시민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북한이탈주민과 어울려 사는 것, 통일연습이죠

“저희 식당에서 식사를 한 손님들이
‘통일되면 이런 모습이겠죠?’ 하고 말씀하세요.
전 ‘당연하죠.’라고 대답해요. 통일이 별거겠어요?
남북한 시민이 마음을 열고 주고받으면 그게 통일이죠.
북한이탈주민과 하나하나 맞춰 가는 건 통일 예행연습이고요.
그러니까 북한이란 나라는 미워해도
북한에서 넘어온 사람,
북한에 살고 있는 시민들은
미워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 요리사의 꿈을 이룬 이성진 씨는 맛있는 음식으로 즐거움을 선사하고 이를 통해 통일에 이바지하기 위해 날마다 라멘을 만든다.

북한에서 키우고 한국에서 이룬 꿈
문을 연 지 1년도 안 된 ‘이야기를 담은 라멘’의 초보 사장 이성진 씨는 2004년 북한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북한이탈주민이다. ‘이야기를 담은 라멘’은 기업과 각종 사회단체 등이 협력해 진행한 북한이탈주민 자립 역량 강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프랜차이즈 식당이다. 이 씨는 이 프로젝트의 ‘OK(One Korea) 셰프’ 1기로 선발돼 교육을 받고, 훈련생 중 가장 먼저 식당 문을 열었다.

사실 요리사는 이 씨가 북한에서부터 키워 온 오랜 꿈이다. “2월이었어요. 동생이랑 집에 돌아왔는데, 어머니가 장사하러 가면서 끓여 두신 옥수수죽을 도둑이 다 먹어버린 거예요. 배고프다고 우는 동생을 데리고 근처 과수원에 가서 언 배를 주워 먹었죠. 동생도 잘 먹었는데 밤에 거품을 물더라고요. 너무 어려서 소화를 못 시킨 거예요. 그렇게 동생을 보내는 제사상에는 옥수수죽밖에 없었어요. 그때 동생이 좋아하는 음식을 해 주고 싶단 생각이 들어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됐죠.” 당시 이 씨의 나이는 7살, 동생은 5살이었다.

이후 15살에 한국으로 온 이 씨는 꿈을 이루기 위해 요리특성화고와 대학에서 조리학을 전공하며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왔다. 하지만 북한에서 자란 이 씨가 한국에서 조리사 자격증을 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같은 한글이라도 사용하는 어휘가 달라 의사소통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던 터라 필기시험에서 거듭 떨어졌다. 실망한 이 씨를 다독인 건 당시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대신 시험 등록을 해 주면서 합격하면 등록비를 갚지 않아도 좋다고 제안했다. 이에 이 씨는 밤을 새워 가며 시험을 준비했고 이후에는 모든 시험에서 한 번에 합격하며 여러 자격증을 따냈다.

함께 잘살고 싶어 새로 꾸는꿈
노력이 빛을 발해 드디어 꿈을 이룬 이성진 씨가 앞으로 바라는 것은 장사가 잘 돼 단순히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롤모델이 된다는 생각으로 노력하고 있어요. 제가 지원과 기회를 얻고 성장한 것처럼 저도 다른 사람에게 기회와 도움을 주고 싶어요.”

이 씨는 통일을 대비해 남북한 가교 역할을 하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도 꾸준히 하고 있다. 현재 운영 중인 식당이 안정되면 남북한 청년들이 어울려 남북한 퓨전 음식을 파는 가게를 차리기 위해 틈틈이 준비 중이다. “통일이 되면 저희가 할 일이 많을 거예요. 무엇이 필요한지 실질적으로 피부로 느꼈기 때문에 잘 알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먼저 준비를 해야겠단 생각이 들어요.”

정부와 사회는 북한과 다양한 교류를 통해 한국의 문화와 생활상을 북한 주민들이 접할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는 게 이 씨의 생각이다. “우리나라는 말 그대로 자유롭잖아요.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할 수 있고, 눈치 보지 않고 자기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고요. 이런 모습을 북한 사람들이 접하게 된다면 북한 사회도 변하게 될 거예요.”

이 씨의 최종적인 꿈은 통일 이후 요리를 하고 싶은 북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다. “통일이 되면 고향 땅에 요리학원이랑 식당을 차리고 싶어요. 북한에서는 하고 싶은 걸 잘 못하거든요. 요리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요리를 가르치고 식당에 취직을 시켜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긴장은 평화가 아니예요

2011년 9월 2일 새벽,
경찰 병력 600여 명이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농성 현장으로 들이닥쳤다.
현장에 있던 해군기지 반대 주민과 시민 활동가는 수십 명이었다.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달려와 100여 명이 되었을 때도
경찰 병력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400여 명이 추가 투입된 공권력 앞에
시위대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군기지 공사장 주변 모든 구간에 울타리가 설치됐고,
구럼비 바위는 국가에 빼앗겼다.


✽ 해군기지 완공 이후에도 ‘제주생명평화대행진’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가해 한 목소리로 해군기지 반대와 평화를 외쳤다.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
10년 가까이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해온 ‘민주노총’ 제주본부 정책쟁의국장 부장원 씨는 그날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서귀포에서 태어난 저는 어릴 때 강정천에 자주 놀러갔어요. 친구들이랑 은어도 잡고 물장구도 치면서 놀았죠.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하면서는 구럼비 주변에 숙소를 차리고 6개월을 생활했는데, 그때 ‘이게 평화구나’ 싶을 정도로 연대감과 공동체 의식을 깊게 느꼈어요. 그날 경찰은 우리의 공간과 기억을 파괴해버린 거예요.”

부 씨를 비롯한 활동가와 마을 주민들은 포기하지 않고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펼쳤지만 이내 구럼비 바위는 폭파되고 결국 해군기지가 완공되었다.

그러나 강정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부가 제기한 구상권 청구 소송이 진행 중이기도 하고, 마을의 공동체 복원처럼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마무리해야 할 일이 많다. 무엇보다 지난 10년 동안 강정마을의 운동은 단순히 군사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차원을 넘어 군사기지의 효용성, 그것이 생명과 환경‧공동체의 파괴를 묵과할 만큼 중요한 것인지 끊임없이 우리 사회에 질문을 던져왔다. 때문에 강정의 싸움은 공권력과 전쟁에 맞선 평화 수호 운동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어쩌면 강정의 평화운동은 이제 시작이다.

우리의 삶을 지키는 평화운동

2012년부터 매년 여름 열리는 제주생명평화대행진은 강정의 싸움이 마을만이 아니라 평화를 염원하는 모두의 것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시민들이 5박 6일 동안 제주를 함께 행진하며 평화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강정을 향해 지지와 응원을 보낸다. “올해 행진에는 강정에 대해 전혀 모르는 청소년 7명 정도가 참가했어요. 처음에는 잘 어울리지 않았는데 다른 참가자들과 대화도 나누고 여러 프로그램을 지켜보더니 먼저 와서 지금 상황을 묻더라고요. 나중에는 내년에 또 오겠다고 약속하면서 갔어요.”

이들이 염원하는 평화가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단순히 군사기지를 저지하고 전쟁을 반대하는 것을 넘어 우리의 삶이 온전히 유지되는 것이 평화라고 생각해요. 개인의 존재와 삶, 공동체를 지키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이기 때문에 평화운동은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기도 하죠.”

하지만 계속되는 북한의 미사일 실험과 도발에 맞서 군사력 증강은 불가피한 일이 아닐까. 부 씨는 인식을 전환하고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평화란 무엇인가, 군사력으로 유지되는 게 평화인가 스스로 질문을 해 볼 필요가 있어요. 점점 군사시설을 늘려 대결 양상으로 가는 건 평화가 지켜지는 게 아니에요. 국민들의 삶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으로 내몰리는 거죠.”

전쟁의 위협이 없는 진정한 평화를 위해 부 씨는 강정에 대한 계속적인 관심을 당부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거든요. 기지가 완공됐지만 아직도 강정, 제주에서는 평화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지속적으로 연대하고 지지해 주세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은 우리가 왜 싸울 수밖에 없었고 지금도 포기하지 않는 가치가 무엇인지 관심을 가져 주시면 좋겠습니다.”

다양한 꽃이 어우러진 민주사회가 아름답죠

명동역에서 남산 방향으로 가는 골목 끝자락에 자리한 건물에서
학생들이 재잘대는 소리와 웃음소리가 밝게 울려 퍼진다.
입시와 경쟁으로 메마른 여느 학교들과 달리
생기가 감도는 이곳은
북한이탈청소년과 북한이탈주민 2세 100여 명이 공부하는
‘여명학교’이다.
여명학교의 학생들은 저마다 살던 곳, 학력, 한국으로 오게 된 계기와 과정도 다르고
나이와 개성도 제각각이지만 함께 어울리며
배움의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 여명학교의 학생들은 맞춤식 수업과 남북한 청소년 교류 프로그램(오른쪽) 등을 통해 우리 사회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형형색색의 꽃으로 피어나고 있다.

제자 바보, 선생님
“아이들이 장점이 정말 많아요. 수업 시간에 질문을 하면 적극적으로 대답하고, 엄청 열심히 참여해요. 서로를 생각하고 선생님을 존중하는 따뜻한 정서가 있죠.” 여명학교에서 12년째 사회를 가르치고 있는 김신동 씨는 인터뷰 내내 침이 마르도록 제자들을 칭찬했다.

학생을 향한 김 씨의 애정은 말로만 위하는 것이 아니었다. 학생을 걱정하는 김 씨의 진심에 감동한 제자가 방황을 끝내기도 했다. “한쪽 다리가 불편한 친구가 있었어요. 적응을 못하고 반항적이었는데 어느 날 무단결석을 하더라고요. 그 친구가 사는 안산으로 가서 어디 있는지 수소문하고 PC방을 돌아다니면서 겨우 찾아내서 이야기를 나눴죠. 다행히 그 뒤로 학교에 잘 나오더라고요.” 무사히 졸업한 그 학생은 몇 년 뒤 학교로 찾아와 김 씨 덕에 맘 잡고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며 김 씨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 학생은 바로 장애인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최광혁 선수다. 최 선수는 내년 평창동계패럴림픽을 앞두고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에 김씨는 어려움을 극복한 최광혁 선수의 모습이 감동적이라며 제자를 추켜세웠다.

김 씨의 각별한 제자 사랑에는 이유가 있다. “아이들은 자라온 환경도 다르고 경험도 성격도 다 다른데 탈북청소년은 이럴 것이다 하고 고정관념을 갖고 바라들 보는 게안타까워요.” 요즘처럼 북한과 관계가 좋지 않으면 편견과 불신의 눈초리에 위축되는 학생들이 안쓰럽다. “모르는 사람이 말하는 걸 듣고 북한에서 왔냐고 물어보면 조선족이라고 한대요. 북한에서 왔다고 하면 이말 저말 나와서 스트레스 받으니까요.”

다채로운 사회의 씨앗, 학생들

다행히 학교에서는 김 씨의 말처럼 학생들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내보이며 자유롭고 적극적으로 생활한다. 이들을 위해 여명학교에서는 수준별 맞춤 수업과 직업 교육으로 남한사회 이해와 적응을 돕고, 음악·체육 등 여가 프로그램과 심리 상담으로 건강하게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를 통해 북한이탈청소년과 북한이탈주민 2세들은 한국 사회를 이끌어나갈 인재로 성장하고 있다.

사회 교사인 김 씨는 다양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도록 특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다른 것을 틀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다양성의 의미를 이해하고 남을 존중하고 나도 존중받을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죠. 이건 가르친다고 알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저도 아이들 의견을 모두 들어주려고 노력해요.” 김 씨는 우리 사회도 다양성의 가치를 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가장 좋은 민주주의 국가의 모습은 하나의 꽃으로 가득한 꽃밭이 아니라 여러 가지 꽃들이 어우러진 꽃밭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북한이탈주민뿐만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나 다양한 사회 배경을 가진 분들이 함께 우리 사회를 구성할 때 생기는 시너지가 있잖아요.”

특히 북한이탈주민의 가치를 한국 사회가 바로 알기를 김 씨는 희망했다. “북한이탈주민을 ‘먼저 온 통일’이라고 얘기해요. 이분들을 통해서 통일을 잘 준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거죠. 청소년의 재능도 출중해요. 북한에서 생활하면서, 한국으로 오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인지 공감 능력이 뛰어나요. 봉사활동을 할 때도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최선을 다하죠. 우리 시대가 바라는 인재 아닌가요?”

민주주의와 전쟁은 함께 할 수 없어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바라보는 시선은크게 두 가지예요.
남들 다 가는 군대도 안 가는 겁쟁이들,
감옥도 불사하는 신념을 가진 젊은이들.
둘 다 있는 그대로 저희를 바라본 건 아닌 것 같아요.
저희는 겁쟁이가 맞아요.
하지만 겁쟁이라서 폭력을 당하는 것도 행하는 것도 무서워서 폭력에 대해 성찰할 수 있어요.
그렇다고 대단한 영웅도 아니에요.
영웅이 주도하는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도 아니고요.”


✽ 이용석 씨와 전쟁없는 세상은 전쟁의 폐해와 평화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폭력에 저항하며 평화운동을 펼치고 있다.

전쟁을 인정하는 것이 더 어려운 사람들
‘전쟁없는 세상’은 비공개였던 양심적 병역거부자 모임을 공개 모임으로 전환하면서 2003년에 만들어진 단체다. 병역거부 운동으로 시작해 군대를 거부하고 전쟁을 반대하는 이유를 이야기하고자 비폭력 트레이닝과 무기 감시 캠페인까지 영역을 넓혀 비폭력‧평화운동을 해나가고 있다. 활동가 이용석 씨는 병역거부 상담 및 지원,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캠페인 및 작업, 평화운동으로서 병역거부를 하는 이유를 알리는 활동 등을 맡고 있다.

‘전쟁없는 세상’에서 병역거부 상담을 받거나 실제로 병역거부를 하는 이들은 넓게 보면 평화주의자이자 반군사주의자이지만 구체적 사유는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다. 전쟁 참여나 시위 진압 등 특별한 계기가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살아온 경험과 생각, 만난 사람 등이 쌓이고 쌓여 어느 순간 병역거부를 결심한 사람들이다. 이 씨는 이들과 상담을 하게 되면 일단 말린다. “군대에 대한 고민과 신념을 존중하지만 감옥 생활과 이후 현실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는지 물어요. 밖에서 지원해 주는 사람이 많아도 혼자 감당해야 할 몫이 있거든요.”

수감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나온다 해도 병역거부자에게 쏟아지는 사회의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 “예전에는 거리 캠페인 하다가 멱살 잡혔어요. 맞을 뻔한 적도 있었죠. 그래도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에요. 반대는 할 수 있어도 대놓고 비난하는 건 창피하단 인식이 생긴 것 같아요.” 이 씨의 말대로 느리지만 조금씩 사회도 변하고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2015년부터 하급심에서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무죄판결이 대폭 늘었다. 대법원장 후보자 등 새 정부의 인사들은 전반적으로 대체복무제를 찬성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여전히 병역거부에 부정적인 목소리도 거세고, 대체복무제 관련 법안은 매 국회마다 발의만 될 뿐 큰 진전은 없다.

일상을 해치는 전쟁, 일상을 지키는 저항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전쟁을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은 모든 전쟁은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이며 전쟁을 대비하고 훈련하는 과정에서도 여러 가지 폐해가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전쟁을 대비하고 이를 위해 군사력을 증강하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전쟁이에요. 폐해가 덜 가시화됐을 뿐이지 문제가 심각하죠. 우리나라만 해도 많은 돈과 인력을 국방에 쏟고 있잖아요. 이것이 다른 영역에 쓰인다면 우리 삶의 질이 훨씬 좋아질 텐데, 전쟁이 가로막고 있는 거죠.” 무엇보다 전쟁의 가장 큰 폐해는 민주주의 파괴라고 이 씨는 말한다. “민주주의를 가장 많이 파괴하는 게 전쟁이잖아요. 전쟁 상황이 되면 민주적인 시스템은 모두 정지되죠. 민주적인 군대도 존재할 수 없고요. 민주주의와 전쟁은 함께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주의에 동의해도 대다수가 따르는 시스템을 거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보다 쉽게 할 수 있는 평화 실천 방법은 없을까. “일상에서 평화를 지키는 길은 사회 부조리에 저항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꼭 직업적인 활동가가 될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는데다 각자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굉장히 많아요. 먼저 자기 주변 이슈에 관심 갖고, 그 분야에서 누군가가 저항하고 있으면 거기 옆자리에 함께 있어 주고 비가 오면 같이 맞아주면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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