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호 전태일의 ‘대학생 친구’에서 불안정노동자로



이글은 한국사회운동사의 몇몇 상징적 국면들을 중심으로 대학생의 지위변천과정을 살펴보았다. 60년대는 물론이고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대학생은 소수의 특권층에 가까웠다. 당시 지식 담론을 독점하고 있던 대학은 소수만이 진입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 만큼 대학 졸업장은 그 자체만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해 주었다. 대학생은 사회적으로 부러움과 존경의 대상이었고 스스로도 엘리트 지식인이라고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학생운동은 엘리트 지식인으로서의 자부심 속에 국가와 민족이 나아갈 바를 논할 수 있었고 지식인의 부채의식으로 노동자민중에게 헌신했으나 내려놓을 ‘특권’이 있었기에 ‘헌신’은 인정받을 수 있었다.

 

오늘날의 대학생은 어떠한가? 민주화 이후 특히 1990년대 중반 이후 대학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곳으로 변했다. 그런 만큼 대학생으로서의 특권은 사실상 사라졌다. IMF 외환위기는 대학생의 경제적 지위마저 빼앗아갔다. 대학생은 이제 좁은 취업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무한경쟁에 돌입해야 한다. 그나마도 질 좋은 일자리는 소수에게만 허락되고 나머지는 불안정 노동을 전전해야 하는 상황이다. 오늘날 대학생이라는 신분은 고등학생과 마찬가지로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무언가가 되기 위해 더 많은 스펙을 쌓아나가야 할 불안정한 존재일 뿐이다. 더구나 지금대로라면 졸업 이후에도 소수만이 ‘무언가’가 되고 나머지 대다수는 취준생, 청년실업, 빈곤 청년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4월혁명 60주기를 1년 정도 남겨 놓은 오늘, 학생운동의 상황은 어떠한가? 애석하게도 과거의 영광이 무색하게 민주화 이후 30여 년 동안 학생운동은 위기를 넘어 쇠락을 길을 걸어왔고 이제는 사실상 소멸될 처지에 놓인 듯하다. 물론 오늘날에도 학생들의 저항은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학생운동’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운, 과거의 것과는 전혀 다른 불안정노동자들의 당사자운동이 되었다.

 

그러나 과거와 같은 학생운동이 없더라도 뭐가 아쉬운가? 과거처럼 휘황찬란 눈에 띄지는 않지만, 오늘날 청년 학생들은 오늘의 상황에 맞게 저항을 이어오고 있다. 과거 선배세대가 그랬듯이 오늘날 청년 학생들 역시 가장 낮은 곳에서 처절한 투쟁을 벌여나가고 있다. 이제는 내려놓을 특권도 없으며 구제의 대상은 그들 자신이다. 그것만으로도 과거에는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운동이 아닌가?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때는...’으로 시작하는 훈계가 아니라 그들의 성공을 응원하면서 아낌없이 연대의 손을 내밀어줄 자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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