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행사

고 한영현 열사 추모

고 한영현 열사 추모


○ 일 시 : 7월 5일 (토) 오후 4시


행사 정보

토요일 2008-07-05
한양대 본관 옆 추모비 지도에서 보기

인물 정보

한영현(당시 21세)

1962년 3월 1일 출생.
1981년 한양대 공대 기계공학과에 4년 장학생으로 입학.
교내 써클 민속문화연구회에 가입, 대학연합 민속문화연구회와 야학도 함.
1983년 4월 2일 강제징집.
입대 후 훈련소도 가지 않고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고 자대배치 후에도 계속 조사를 받음.
1983년 7월 2일 의문의 죽음을 당함.

- 제 88차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 인정자
한영현 동지는 한양대학교 기계과에 재학했었던 학생으로 81년도에 4년 장학생으로 입학하였다.가정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민주화를 위해 활동했던 동지는 대학 1학년 때 민속문화연구부에 가입하고 선배와 함께 탈연합회에서 활동하였다. 82년 민속반이 학교의 방해로 등록을 하지 못하자 친구들과 소그룹을 형성하여 계속적으로 공부하였으며 82년 탈연합회의 선배 소개로 부천에서 야학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83년 1월 중순경에 부천의 야학에서 활동한 선배의 조사과정 중 동지의 이름이 나오자 성동경찰서는 동지를 끌고가 조사를 하면서 구타를 가했다. 조사 이후인 4월 1일 수원 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게 되는데 늑막염이라는 병으로 군대를 갈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다음날인 4월 2일에 경찰서에 오라는 소식을 듣고 나가 행방불명이 되었다. 2-3주 후에 동지의 옷이 집으로 우송되자 가족들은 그때야 비로서 동지가 강제로 군에 끌려간 것을 알았다. 동지는 입대 후 훈련소에도 가지 않고 4월 10일부터 18일까지 직접 군수사기관에서 그간의 활동에 대해 진술해야 했다. 당시 도망다니다가 5월 9일 시위를 하여 조사를 받던 한 동료의 말에 따르면, 조사중 한 수사관이 한영현 동지가 똥물을 토하면서 한 이야기라고 하면서 동지의 육성이 녹음된 테이프를 들려주고 그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라고 협박했다고 한다. 5월에 자대를 배치받고 나서 형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보면 동지는 점점 건강이 회복되고 있으며 군생활에 인내력을 키우고 있다는 내용이었으나, 6월 초에 친구에게 몇 번이나 면회를 요청한 것으로 보아 다시 조사가 시작되어 심기에 불안을 느꼈던 것으로 생각된다. 6월 18일 포상휴가를 나온 동지의 팔은 철사로 심하게 맞은 듯한 피멍이 선명했다고 한다. 휴가 중 동지는 “정신력으로 모든 환경을 버틸 수 있다고 생각되나 자신이 없다”, “나로 인해 너무나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볼 것이며 81학번 뿐만 아니라 72학번까지도 여파가 미치는데 아마 커다란 배가 침몰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형에게 “기관의 어느 사람을 만나면 의가사로 10월이면 제대가 가능하고 잘하면 10월부터 다시 학교를 다닐수도 있는데 죄책감이 너무 크다”며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기관원이 누구이며 만났는지의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렇듯 동지는 강제징집된 학생으로 당할 수 있는 모든 고통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귀대 후 7월 2일, 부대로부터 전보로 자살통보가 와서 형님이 가보니 “6월 30일 밤에 분대장으로부터 탄환을 훔쳐서 다음날 사역 도중 오전 10시에 식사하고 화장실에 나갔으나 조금후 벙커에서 총소리가 나서 가보니 이미 죽어 있었다”라는 말을 전해 듣고 시체를 확인해 보니 두개골이 없는 참혹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일부 기관에서는 동지가 가정 파탄을 비관하여 자살하였다고 하나, 아버님이 어머님을 살해한 것은 동지가 고 3때의 일이며 대학입학 후 동지의 건강한 생활태도와 행적을 볼때 죽음의 직접적 계기가 될수 없다고 판단된다. 동지를 생각하며 <추모시> 한 영 현 < 행당산을 위한 노트 中 - 신동호 > 무어란 말입니까 시대를 비껴가며 산다는 것은 시대의 한복판에 내리는 비를 맞으며 부는 바람에 몸을 내맡겨 산다는 것은 무어란 말입니까 잊혀진다는 것은 기억하며 산다는 것은 무어란 말입니까 비상조치가 있던 시절 비상조치에 쫓겨보지 않고서 녹화사업이 있던 시절 녹화사업대상에 들어보지 않고서 국가보안법이 여전한 시절 국가보안법의 족쇄에 묶여보지 않고서 그것을 비껴 기댄 곳에는 언제나 안식의 미래가 있겠지만 기꺼이 그 안에 산다는 것은 역사를 사는 것이었습니다. 시대의 정점에서 비껴살지 않았던, 기억하며 오늘의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이름 그 이름을 불러봅니다. 한 영 현 열아홉의 인생을 열아홉답게 살았고 스무살의 인생을 스무살답게 살았던 자신의 미래 안식의 미래를 살지 않았던, 그렇게 가고만 행당의 언덕과 진사로가 기억하는 이름 한 영 현 오늘 우리들의 모습과 전혀 무관하지 않은 이름 오늘 그 이름은 우리의 이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그와같이 비껴살지 않은 이들에 의해서 행당의 역사가 나라의 역사가 되고 세계의 역사가 되는 미래 그런 미래를 만드는 이들에 의해서 그런 역사가 있는 행당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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