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백남기선생 2주기 추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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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백남기선생 2주기 추모제

○ 일 시: 2018년 9월 15일(토) 12:00. 11:00 천주교 추모미사

○ 장 소: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

행사 정보

토요일 2018-09-15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

열사 정보

백남기

1947.08.24 전남 보성군 웅치면 유산리
부 백춘선 모 김기남 사이 무녀독남으로 출생
1963.02 광주서중학교 졸업
1968.02 광주고등학교 17회 졸업
1968.03 중앙대학교 행정학과 입학
1971.10 위수령시 시위혐의로 1차 제적
1973. 10. 교내에서 유신 철폐 시위 주도
1974~75 수배 중 명동성당에 피신
1975 전국대학생연맹 가입 및 2차 제적
1980.03 복교 및 어용 학도호국단을 철폐, 재건 총학생회 1기 부회장
1980.05.08 박정희 유신잔당(전두환, 노태우, 신현확) 장례식 주도
1980.05.15 ‘서울의 봄’ 때 의혈중앙 4천 인 한강 도하 주도
1980.05.17 군부 계엄 확대 조치로 기숙사에서 계엄군에 체포
1980.07.30 중앙대학교 퇴학 처분(3차 제적)
1980.08.20. 계엄 포고령 위반으로 징역 2년 선고
1981.03.03 3‧1절 특사로 가석방
1981. 고향 보성으로 귀향(수도작, 낙농업 등)
1986~1987 가톨릭농민회 가입 및 보성,고흥협의회 회장
1989~1993 가톨릭농민회 전남연합회장, 전국부회장
1994~2015 우리밀살리기운동 광주‧전남본부 공동의장 및 자문위원
2014~2015 전남가농동지회 회장
2015. 11. 14 민중총궐기 대회 중 광화문 앞에서 폭력 경찰의 살인적인 물대포에 의해 쓰러진 후 의식불명, 서울대학교병원에서 317일간 사투
2016. 9.25 서울대병원에서 선종. 사인 은폐 조작을 위한 강제 부검 시도에 맞서 <백남기투쟁본부>차원의 집행 저지
2016. 11. 5 장례 미사(명동성당), 영결식(광화문 광장), 노제(보성)
2016. 11. 6 노제(광주 금남로), 안장(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
부인 박경숙(율리아나)과 슬하에 1남(두산) 2녀(도라지, 민주화)를 둠

백남기 동지의 삶과 죽음

백남기 동지는 1968년 중앙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하여 박정희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다 수배, 제적, 복교를 반복하며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 1980년 ‘서울의 봄’ 때 복교하여 총학생회 1기 부회장, 의혈중앙 4천인 한강도하 주도 등 민주화운동을 이끌다 전두환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조치로 계엄군에 체포되어 징역2년을 선고받았다. 출소 후 고향 보성으로 귀향하여 평생을 농민으로 살면서 가톨릭농민회에 가입하여 전남연합회장과 전국부회장을 역임하였다. 우리밀을 살리고자 마지막까지 우리밀밭을 조성하는 등 농업, 농촌 민주화, 생명 평화의 일꾼으로 살아왔다.
2015년 11월 14일 박근혜 정권을 규탄하는 민중총궐기대회 참석 중 경찰이 정조준한 직사물대포에 맞아 쓰러져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317일간의 사투 끝에 2016년 9월 25일 우리 곁을 떠나갔다. 운명 후 사인을 은폐조작하려는 강제부검, 시신탈취 시도를 막아내어 41일 만에 장례를 치렀고, 11.5 광화문 광장 영결식과 보성, 광주 금남로 노제를 거쳐 그의 유해는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하였다.
백남기 동지의 사고와 죽음으로 우리는 비극적인 한국 현대사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음을 가슴 아프게 확인했지만, 그의 죽음과 투쟁은 수천만의 촛불항쟁과 시민혁명으로 타올라 2017년 3월 10일, 결국 박근혜정권이 탄핵되었고 19대 대선을 통해 새로운 대한민국의 시작을 열었다.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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