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영근시인 13주기 추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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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영근시인 13주기 추모제

○ 일 시: 2019년 5월 11일(토) 16:00

○ 장 소: 인천시 부평구 신트리공원(부평구청 옆)


<박영근 시인 13주기 추모행사 및 제5회 박영근작품상 시상식 안내>


이제 막 고개를 내민 여린 잎들이 마냥 싱그러운 계절입니다.

올해로 박영근 시인 추모제가 13주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추모제와 함께 제 5회 박영근작품상 시상식도 같이 진행하고자 합니다.

바쁘시겠지만 부디 참석하시어 자리를 빛내주시기 바랍니다.


1) 일시: 2019 5 11(오후 4시부터


2) 장소인천 신트리 공원(부평구청 역 북구도서관 근처박영근 시비 앞

(우천시 근처로 장소 변경)


3) 행사 내용

1. 개회사

2. 내빈 소개

3. 회장 인사말

4. 유족 인사말

5. 축사 및 격려사

6. 사업회 활동 및 회계보고

7. 제 5회 박영근작품상 발표 및 시상

수상자조성웅 시인수상작품위험에 익숙해져갔다

심사 경위

상패 수여

수상 소감 및 수상작 낭독

8. <솔아 푸르른 솔아제창

9. 폐회사 및 기념 촬영

10. 박영근 시비 탐방 및 뒤풀이 (5 30~ )


*회비를 내실 분은 아래 계좌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1년 회비 3만원)

국민은행 047102-04-228887 박일환(박영근기념사업회)


*찾아오시는 길

지하철 7호선인천 1호선 부평구청역에서 하차 후, 5번 출구로 나오셔서 5분 거리에 위치

행사 정보

토요일 2019-05-11
인천시 부평구 신트리공원(부평구청 옆)

열사 정보

박영근

- 1958년 9월 3일 전북 부안군 산내면(현 변산면) 마포리 산기마을에서 부 박창기(朴昌基)와 모 이옥례(李玉禮)의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남.

- 1964년(6세) 부안군 산내면 마포국민학교 입학.

- 1968년(10세) 부모님의 교육에 대한 열의로 국민학교 5학년 때 전북 익산으로 전학함. 익산시 평화동 셋째이모 집에 거주.

- 1974년(16세) 익산 남성중학교를 졸업하고 전주고등학교에 입학, 전주에서 하숙생활 시작함. ‘홈룸’시간에 시국에 관한 발언으로 학교에서 요주의 인물이 됨. 학교 도서관에서 많은 책을 읽고 고향 친구와 선배 집에서 김지하 고은 황석영 이호철 최일남의 작품과 『창작과비평』 『사상계』 등을 탐독함. 더이상 억압적인 학교생활이 불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자퇴. 문학을 하겠다는 꿈을 품고 상경하여 이후 1년 동안 당시 교사로 근무하던 형 박정근의 집(성동구 능동)에서 생활함.

- 1975년(17세) 고등학생 문학써클 모임에 오봉록 등과 함께 참여하고, 전주 풍년문화원을 빌려 시화전 개최. 쏘비에뜨 혁명 등을 빗댄 창작시 때문에 경찰조사, 가택수색을 당함. 김지하의 『오적』을 소지한 혐의로 보안대에서 조사받음. 종로 보신주단을 빌려 개최한 시화전에 참여.

- 1976년(18세) 『학원』 4·5월호에 시 「눈 1」 「눈 2」가 입선작으로 수록.

- 1976~78년(18~20세) 종로에서 민청학련 관련인사 김기선을 만나 홍영표(이후 노동운동에 투신, 대우자동차에서 해고됨), 박형규(이후 하늘땅출판사 설립) 등과 함께 리영희의 『8억인과의 대화』 『우상과 이성』 등을 읽으며 민주화운동에 관한 토론모임을 가짐.

- 1977~79년(19~21세) 양천구 신정동 뚝방촌에서 생활. 인천 동일방직 노동자들과 토론 등을 통해 교류. 종로 초동교회에서 청년회 활동을 하며 교회 내 대학회지에 시와 문학비평문 등을 기고. NCC(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를 비롯해 민주화를 바라는 기독교 및 재야인사들의 모임에 참여함. 대학연합문학써클 ‘청청(靑靑)’에 참여해 시창작 활동을 하고, 시화전 등을 개최함.

- 1981년(23세) 군 제대 후 민중문화운동, 민중신학, 학생운동, 기독교계 관련인사 등 각계각층과 교류하며 신촌에서 쌀가게를 운영함. 동인지 『말과힘』을 발간. 『반시(反詩)』 6집에 시 「수유리에서」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함. 1970~80년대 노동운동을 정리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성효숙을 만남.

- 1982~83년(24~25세) 구로3공단 삼립빵공장 부근에 살면서 3공단 등지의 제본회사, 곤로회사 등에 취업. 권오광 등 학생운동, 노동운동계의 벗들과 교류함.

- 1983~85년(25~27세) 구로동과 철산리 산동네에서 생활하며 고(故) 조영관 시인 등을 만나고 노동운동가, 민중문화운동가 들과도 교류함. 마포 아현동 애오개소극장에서 미술동인 ‘두렁’을 비롯해 정희섭 김영철 김원호 등과 교류하면서 홍제동 성당, 성문밖교회 등에서 열린 각종 문화행사와 집회에 참여. 시국집회에서 현장시를 낭송하기도 함.

- 1984년(26세) 청계피복 노동자들과 교류하며 동대문 근처에서 소모임을 가짐. 민중문화운동협의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시국집회와 철야농성 등에 참여함. 신경림 임진택 정희성 김정환 이영진 하종오 등과 함께 민요연구회를 창립하고 창립간사로 일함. 첫시집 『취업공고판 앞에서』(청사 1984.6) 출간. 노동자 생활이야기를 쓴 첫번째 산문집 『공장옥상에 올라』(풀빛 1984.12) 출간. 이해 12월부터 1987년까지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재창립회원으로 김정환 김사인 김남일 고(故) 채광석 등과 함께 활동함.

- 1985년(27세) 고(故) 김도연이 설립한 공동체출판사 편집위원으로 활동함. 노동문화패들과 함께 인천 5·3항쟁에 참여함. 이해 가을 근거지를 부평으로 옮긴 ‘두렁’의 성효숙과 함께 산곡동으로 이사함.

- 1986년(28세) 강형철 김형수 이산하 안수철 등과 함께 학습소모임을 가지고 활동함.

- 1987년(29세) 인천 보르네오가구 등에 생산직으로 취업. 유월항쟁과 노동자대투쟁 관련 집회에 참여함. 두번째 시집 『대열』(풀빛) 출간.

- 1987~89년(29~31세) 민중문화운동연합 회원으로 활동. ‘두렁’과 함께 박종철 열사에 대한 영상제작에 참여함.

- 1989~90년(31~32세) 인천과 서울을 오가며 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에서 김정환 이용배 문승현 등과 함께 활동하면서 영화분과 일을 맡음. 하늘땅출판사 편집위원, 잡지 『예감』 편집위원으로 활동함.

- 1993년(35세) 부평 산곡동에서 부평4동으로 이사하여 2005년 11월까지 생활함. 세번째 시집 『김미순傳』(실천문학사) 출간.

- 1994년(36세) 노동과 현실에 투철한 문학정신을 평가받아 제12회 신동엽창작상을 수상함.

- 1995년(37세) 송성섭(풍물) 허용철(미술)과 함께 인천민예총 창립.

- 1997년(39세) 네번째 시집 『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창작과비평사) 출간.

- 1998년(40세) 12월 신현수 이경림 이세기 등과 함께 민족문학작가회의 인천지회를 창립하고 2000년까지 부회장으로 일함.

- 1999~2002년(41~44세) ‘인천문화를 열어가는 시민모임’ 창립회원으로 최원식 박우섭 이남희 김창수 등과 함께 활동함. 인천민예총 사무국장으로 일하며(2000~2001), 강광 이종구 등과 함께 활동함.

- 2002년(44세) 다섯번째 시집 『저 꽃이 불편하다』(창작과비평사) 출간, 이 시집으로 2003년 제5회 백석문학상을 수상함.

- 2002~2006년(44~48세) 인천민예총 부지회장(2002~2005), 민족문학작가회의 시분과위원장(2004~2005),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2002~2006) 역임. 산문집 『오늘, 나는 시의 숲길을 걷는다』(실천문학사 2004) 출간. 2004년 8월 몽골에서 진행된 ‘한·몽 시인대회’에 이시영 고형렬 김용락 한창훈 김형수 등과 함께 참가함. 2005년 11월 인천 용현동으로 이사함.

- 2006년(48세) 5월 11일 오후 8시 40분 결핵성 뇌수막염과 패혈증으로 타계.

- 2007년 (추모 1주기) 5월11일 인천 컬쳐팩토리극장에서 추모 행사를 가짐.

- 2008년 (2주기) 5월10일 인천 배다리 아벨서점 전시장과 배다리 삼거리에서 추모 행사.

- 2009년 (3주기) 5월9일 시선집 ‘솔아푸른솔아’(강출판사)출간. 추모 행사 1부 심포지엄, ‘한국의 노동시와 박영근’- 인천 배다리 시다락방, 2부는 개발로 인하여 ‘허물어진 삶터’에서 공연을 가짐.

- 2010년 (4주기) 5월 15일 <부안이 낳은 박영근 시인 4주기 추모문학제 '솔아 푸른 솔아'>고향 부안의 옛 마포 초등학교에서 추모문학제와 5월16일은 왕포, 적벽강, 해창, 곰소, 새만금방조제 등 답사예정

박영근 시인은 1984년 한국 최초로 노동시집 [취업공고판 앞에서]를 펴내고 80년대 노동문학의 불꽃을 피워올렸다. [대열] [김미순전] 등을 잇따라 내놓으며 민중 정서를 탁월하게 형상화한 그의 시는 민중가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로 탄생해 대중에게 널리 불려졌다. 90년대 이후 박영근은 분단과 통일, 자본주의 상품소비사회를 성찰하고 비판하면서 깊어지고 넓어진 작품 세계를 추구하였고 그 의의를 인정받아 신동엽창작상, 백석문학상을 받았다. 노동문학의 미학적 성취를 선구적으로 보여준 박영근 시인은 전환의 시대에 임해서도 온몸으로 세상과 맞서며 삶의 최후까지 고통스러운 진정의 언어를 새겨넣는 작업을 중단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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