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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보는 민주인권기념관 09.이수일 선생님

79년 10월 4일 내가 죽은 날

나는 1979년 10월 4일에 죽었다

죽었다는 건 감옥 안의 사람들이 나누는 말로 체포되어 수감됐다는 것을 뜻한다

이 말은 딱 맞았다. 세상으로부터 내쫓기고 밭둑 밖으로 내팽겨 진 날. 체포되던 그때 나는 죽었기 때문이다

내가 한 일이라곤, 유인물 5만 부를 뿌린 것 뿐이었다.

유인물에는 유신철폐, 긴급조치 해제, 민중생존권 확보가 적혀있었다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 온 내게 수사관들은 계속해서 물었다

조직원을 실토해라. 이름, 가족, 고향, 학교, 뭐든지 관계된 건 다 말해!

그리고 동료를 체포해 진술을 강요했다. 네 동료가 너보다 먼저 진술하면 너만 더 고문당할 것이다

양심을 지키려면 고문에 굴하지 않아야 하고, 무너지면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고문보다도 조직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더 컸습니다. 지금까지도 그 죄책감이 남아있어요

고문의 목적은 고문 대상인 인간을 파멸시키거나 최소한 그 사람 안에 뿌리 내린 저항의 열매를 파괴하는 것이다_뉴필로소퍼 vol5.73p

이수일 선생님은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혹독한 고문과 15년의 징역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에 꺾이지 않고 89년 특별사면으로 출소한 뒤 전교조를 결성해 다시 민주주의 운동에 앞장섰다

남민전 사건 이후 27년이 지난 2006년 3월 13일 국무총리 소속 민보상위는 남민전 사건과 관련해 이수일 씨 등 29명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