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회소식

대만 228사건 69주년 기념식 참관기

대만 228사건 69주년 기념식 참관기

이호룡(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책임연구원)

지난 2월 28일 대만 228사건 69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타이페이에 다녀왔다.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문정수 이사장 내외분, 5・18기념재단 차명석 이사장, 노근리국제평화재단 정구도 이사장 등과 함께였다. 228사건이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대만에 주둔한 국민당 정부군이 담배 밀거래를 단속하는 과정에서 대만 노파를 살해한 사태로부터 비롯되었다. 노파가 살해되는 현장과 과정을 지켜본 대만인들이 항의하자 주둔군들은 발포하기 시작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되었다.


2.28국가기념관 건물전경 

이 날 기념식이 열린 228국가기념관에서는 지금까지 지방 정부와 공동으로 기념식을 개최해 왔는데, 올해는 독자적으로 기념관 뒷마당에서 행사를 치른다고 했다. 혹시 비가 올까 우려했지만 다행히도 날씨가 활짝 개었다. 우리는 오전에 개최하는 228국가기념관 주관의 기념식과 오후에 타이페이시가 시민단체와 공동으로 개최하는 기념식 모두에 참석했다. 오전 기념식에는 마잉쥬 총통이 참석한다고 한다. 천수이볜 민진당 정부로부터 정권을 되찾은 국민당의 마잉쥬 총통은 유족 중의 일부가 참석을 반대함에도 매년 기념식에 참가해왔다고 한다. 마잉쥬 총통의 포용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8시 30분쯤 기념관 직원이 호텔로 와서 마잉쥬 총통이 참가하는 관계로 빨리 입장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서둘러 기념관으로 갔다. 입구에는 검색대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상당히 간소하다. 초청장인 비표도 발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일반시민들도 자유롭게 참가할 수 있다. 내빈석 등 기념식장 곳곳에 경호원이 배치되고,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테러에 대비하여 행사장 뒤쪽에 경찰이 배치되었지만, 대통령이 참가하는 행사마다 삼엄한 경비가 펼쳐지는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식장에는 400~500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식전 행사로 악단이 민요를 연주하는 가운데 참가자들이 속속 입장하고, 마잉쥬 총통이 별다른 의식 없이 입장해서 앞줄에 앉았다. 묵념을 시작으로 기념식이 시작되었는데 대만에서의 묵념은 우리나라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고개를 숙이지 않고 그냥 서있다. 다음에는 228영령에 대한 마잉쥬 총통의 헌화가 이어졌다. 우리나라와 같은 국민의례는 없다. 식장 어디에도 대만 국기는 걸려 있지 않고, 국기에 대한 맹세나 애국가 제창 같은 것도 없었다. 모든 의식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애국가를 제창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달랐다. 총통의 헌화가 끝나고 치사가 이어졌다. 치사는 가족대표, 228사건기념기금회 이사장, 행정원장, 총통의 순서로 행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상급자가 제일 먼저 하는데 비하면 총통이 제일 나중에 치사를 하는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기념관장이나 마잉쥬 총통은 기본적으로 보수적 인물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진보적 인사들을 포용하고 앞장서서 민주주의의 장을 넓혀가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점은 대만 민주주의 특성 중의 하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만 민주주의는 집권세력인 국민당에 의해 진전되어 왔다고들 한다. 경쟁 상대가 없는 유일한 정치세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당은 국민들의 동향을 늘 살피고, 선거에서 낮은 지지율이 나오면 당 지도부가 총사퇴한다고 한다. 마잉쥬 총통은 228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 적극적으로 나선다고 한다. 대만의 보수주의자들은 과거사를 반성하고 국민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고있는 것이다. 대만 보수 세력의 이러한 태도에서 대만 민주주의의 미래가 매우 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대민 자세와 포용성이 상당히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념식이 끝나고 총통이 퇴장을 하는데, 갑자기 유족 석에서 한 명이 일어나 “총통!” “총통!” 하며 소리쳐 총통을 불렀다. 약간 소란한 가운데 수행원들에게 둘러싸여 퇴장하던 총통이 발길을 돌려 계속해서 소리치는 유족에게 다가갔다. 총통은 꽤 오랜 동안 유족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과정에서 유족이 메모지를 떨어뜨리자 손수 집어서 유족에게 건네주기도 했다. 그리고 유족이 말하는 도중에 손으로 총통의 어개를 짚기도 했다. 그럼에도 경호원들은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 일반시민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지도자의 모습, 부러운 마음이 절로 생겼다. 한국에서 이러한 지도자 밑에서 산다는 건 한낱 꿈이런가? 

이 유족은 228사건 때 아버님이 희생당하고, 백색테러 시에는 외삼촌을 희생당한 사람인데, 그가 총통에게 요구한 사항은 가해자인 장제스蔣介石를 기념하는 중정기념당을 철거할 것, 각 급 학교에 장제스 동상을 철거할 것 등이라 한다. 중정기념당 철거문제는 민진당 천수이볜 정권기에도 제기되었는데, 천수이볜 정권은 중정기념당을 철거하지는 못하고, 이름만 대만민주기념당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차이잉원 총통 당선자가 참석한 오후의 기념식은 오전에 비해 시민집회적 성격이 강했다. 식장 곳곳에는 “대만 독립” 등 자신들의 주장을 담은 만장이 걸렸고, “정애대만貞愛臺灣”, “계지선인繼志先人”, “사회관회社會關懷” 등의 구호가 적힌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그리고 오전의 기념식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 표준어로 거행되었으나, 오후 기념식은 종종 박수소리도 들리는 등 축제분위기가 강한 가운데 대만어로 진행되었다. 서양 신부가 사회를 보고, 신부의 집도하에 거행된 기도로 기념식이 시작된 것도 매우 특이했다.

차이잉원 총통 당선자가 많은 박수를 받으며 수수한 차림으로 입장한 이후 곧 기념식이 시작되었다. 차이잉원 총통 당선자에게 거는 기대가 상당한 듯 했다. 치사를 하는 사람들마다 총통 당선자를 거론하였으며, 총통 당선자의 치사 중에도 박수소리가 여러 차례 들렸다. 오후 기념식에서도 치사는 가족대표-귀빈대표-총통 당선자 순으로 진행되었다. 각 대표들은 치사에서 민주, 민권, 인권 등을 자주 거론하면서, 총통 당선자에게 228 가해자 색출, 학살진상 규명 등의 이행기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선거 전의 약속을 지킬 것을 부탁하였고, 총통 당선자도 그 약속을 철저히 이행하겠다고 다시 한 번 천명하였다.

오후 기념식은 타이페이 시정부가 주최하였지만, 정작 타이페이 시장은 참가하지 않았다. 손님을 초정해놓고 주인이 자리를 비운 것이다. 표면상의 불참 이유는 대만 남단까지 자전거로 종단하는 행사에 참석하기 때문이라는데, 아마도 마잉쥬 총통과의 갈등이 그 원인이 아닌가 여겨진다. 지금까지 타이페이 시장은 총통과의 만남을 적극 피해왔다고 한다. 어느 식장에서는 총통이 악수를 청하는데도 이를 거부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타이페이 시장은 대만 남단에 도착하여 오늘 눈을 흐리는(보기 싫은 사람을 만난다는 의미) 대신 땀을 흘렸다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하였다고 한다.

총통 당선자가 치사를 끝내고 퇴장을 하자, 우리도 식장을 빠져나와서 228사건을 기념하는 음악축제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축제 장소에는 각 단체들의 부스가 양 옆으로 설치되어 있었는데, 단체 관계자들은 선전책자들을 쌓아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있었다. 흑색도국청년진선黑色島國靑年陣線이라는 단체의 푯말이 눈에 띄기에, 방문해서 아나키스트단체이냐고 물어봤다. 한데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내세우는 주장은 아나키즘에 가까운 것 같았다.

하루에 세 곳의 행사에 참석하다보니 다들 피곤해 하였다. 그래서 모두 호텔로 돌아가서 좀 쉬다가 저녁 만찬에 참석하기로 하였다. 이로써 우리의 긴 228사건 69주년 기념식 참관은 끝을 맺었다. 

 


2.28국가기념관 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