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남산 ~ 남영동 길을 걷다` 탐방 후기

카카오스토리


<2018년 6월 9일, 1987을 기억하며 남산 ~ 남영동 길을 걸었습니다.
지금은 아름답게 조성된 길들인데, 그 뒤로는 참혹하고 어두운 역사가 있었죠.
다른 분들도 함께 걸어보세요 :) 각각 장소에 대한설명이 담긴 자료집을 첨부합니다.


<남산골 한옥마을>

지금은 예쁜 전통마을이지만 이전에는 악명 높은 조선헌병대사령부가 있었던 곳입니다.
일본군 헌병대는 1896년 1월, 을미 의병의 공격에서 군용 전선을 지키기 위해 임시로 파견되었다가
그 이후 그대로 주둔하였으며 주 목적은 의병을 진압하는 것이었습니다.


<서울특별시청 남산1별관>

남산에 중앙정보부가 있던 시절, 당시 제5별관(국)이라고 불렸어요.
주로 고문으로 간첩을 '만들어' 내던 곳으로 남산에서 가장 악명 높은 공간이었습니다.


<옛 중앙정보부장 공관>

지금 '문학의집'인 이곳은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의 용의자였던 김재규,
5.16 군사쿠데타 공신이었지만 이후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김형욱 등
중앙정보부장이 사용하던 공간이었습니다.


<주자파출소 터>

중앙정보부에 잡혀간 자녀들의 소재를 확인하기 위해 부모들이 모여 시위하던 곳입니다.
아주 일부의 사람들은 운 좋게 자녀를 면회할 수도 있었다고 해요.
여기에 있던 부모님들은 얼마나 마음이 찢어지게 아팠을까요? 그 마음에 숙연해지는 곳입니다.



<백범광장(조선신궁 터, 이승만 동상 터)>

일제강점기 시절 이곳은 일본이 신사 참배를 강요하기 위해 만든 조선신궁이었어요.
일본의 지배를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공간이었는데,
안타깝게도 광복 이후 우리 국민들의 손으로 부수지 못하고 일본인들이 자체적으로 해체해버립니다. 

그 이후 이곳에 들어선 건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이었어요. (어떤 의도인지 짐작이 가시죠?)
1960년 4.19 혁명 당시 성난 군중들은 파고다 공원의 이승만 대통령을 쓰러뜨려 끌고 다녔는데,
이곳의 이승만 동상은 워낙 커서 쓰러뜨리지 못했다고 해요. 대신 4.19 이후 중장비를 끌고 와 해체했죠. 

이승만 동상이 해체된 이후 이승만과 대척점에 서있던 백범 김구의 동상이 들어섰습니다.



<경찰청 인권센터(남영동 대공분실)>

남산 중앙정보부와 마찬가지로 여기 역시 잔인한 고문으로 악명이 높았던 곳이예요.
게다가 이곳은 당시 가장 유명한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이기도 합니다.
취조실이 모여있던 5층의 창문은 다른 층에 비해 유난히 폭이 좁은데,
고문 받다가 투신할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박종철 열사가 이곳에서 고문 받다가 사망했었어요.
김근태 의장이 이근안 공안경찰에게 참혹한 고문을 받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1987 남산 ~ 남영동 길 역사탐방 전체 코스>

<공통코스>
① 남산골 한옥마을
② 서울특별시청 남산 1별관
③ 남산창작센터와 소릿길 터널
④ 서울유스호스텔과 서울종합방재센터
⑤ 문학의 집 서울·산림문학관
⑥ 중앙정보부 6국 터
⑦ 통감관저 터
⑧ TBS교통방송사와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⑨ 주자파출소 터
⑩ 통감부 / 총독부 터, 김익상 의거지
⑪ 리라초등학교, 숭의여자대학교(노기신사 터, 경성신사 터)
⑫ 백범 광장(조선신궁, 이승만 동상 터)

<서울역 코스>
백범광장 → 서울로7017 → 서울역과 광장 / 강우규 동상 → 옛 남영동 대공분실

<후암동 코스>
백범광장 → 김상옥 의사 → 후암동 문화주택 → 용산미군기지 → 옛 남영동 대공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