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회소식

민주인권기념관 3차 워크숍을 마치고

2018년 8월 8일 수요일, 구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민주인권기념관 건립을 위한 제 3차 워크숍이 열렸습니다. 이재승 교수님께서 <이행기 정의- 국가폭력을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 주제로 강연해주셨어요. 아래는 강연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본 글에서는 제주4·3사건을 이재승 교수님의 논문 「이행기 정의와 크로노토프」 을 따라 '제주4·3항쟁'으로 표기합니다.)

20세기를 흔히들 ‘폭력의 세기’라고 부르곤 합니다. 전세계적으로 제 2차 세계전쟁, 유태인 학살 등이 자행됐고, 우리나라에서도 제주4·3항쟁, 광주5·18민주항쟁 등 여러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났었죠. 20세기를 점철한 학살과 폭력의 역사는 20세기 말, 사죄의 흐름으로 바뀌었습니다. 한나 아렌트가 그 유명한 ‘악의 평범성’을 말했던 건, 유태인 업무 책임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 때문이었죠. 이와 같이 20세기 일어났던 폭력들을 ‘청산’하는 흐름들은 책임자를 재판에 회부하고, 법적인 처벌과 판결을 내리고, 희생자와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법적/행정적인 처분에 따라 이루어졌었죠.

이러한 것들을 우리는 ‘과거사 청산’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사청산에 대한 요구와 운동들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주4·3항쟁은 2000년에 ‘국가공권력에 의한 인권 유린’ 사건으로 정의되어 드디어 4·3특별법이 만들어졌고, 2003년 10월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4·3항쟁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를 했습니다. 2007년에는 희생자의 대상에 수형자를 추가하였고, 유족의 범위를 확대하며, 4·3평화재단을 설립하는 등의 내용을 담아 특별법이 개정되었습니다. 2014년에는 제주4·3항쟁이 국가 공식 기념일로 지정되었지요. 그리고 올해 2018년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원칙적으로 국가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고, 배·보상에 대해 약속했습니다.

영화 <1987> 중

이렇게 보았을 때 제주4·3항쟁은 과거사 청산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을 다루기 위해 이재승 교수님이 제안하신 개념은 바흐친의 ‘크로노토프’입니다.

‘크로노토프’는 시간을 뜻하는 ‘크로노스(cronos)’와 공간을 뜻하는 ‘토포스(topos)’가 결합된 개념입니다. 본래 수학에서 쓰이던 용어였지만, 바흐친이 문학 영역으로 이를 끌고 들어와, “시간-공간적 관계들의 본질적 연결성”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합니다. 문학 작품 안에서는 등장인물이 언제 어디를 가는지에 따라 이야기 전개가 달라지기도 하고, 독자들이 그것을 이야기의 방향성을 예측하기도 하잖아요? 영화 <1987>을 예로 들면, 신문기자가 박종철 열사 소식을 들은 직후 검사를 만나러 법원에 갔을 때라던가 말이죠. 바흐친은 이런 시공간의 연결성을 ‘크로노토프’라고 부르고, 이러한 ‘크로노토프’는 작품 안에서 딱 한 개만 있는게 아니라 매우 많이 존재하며, 크로노토프 간의 연결성을 구성하여 또 더 큰 크로노토프로 성장할 수도 있게 되죠. 이 때문에 “크로노토프의 가장 큰 특성은, 상대적이고 관계적이며 대화적이고 유기적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재승 교수님은 ‘크로노토프’를 과거청산 국면에 대입합니다. 다양한 시공간의 연결성으로 사건을 바라볼 때에, 제주4·3항쟁은 단지 1947년 3월 1일 경찰 발포 사건 때문에만 촉발된 건 아니라는 사실에 다가가게 됩니다. 1945년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우리나라에 미군이 들어왔는데, 미국은 한국에서 공산당을 불법화하고, 정당 등록 규칙을 만드는 등 우리나라 국민들이 민주적인 정부를 구성할 권리를 침해했습니다. 미국이 점령한 나라 가운데 공산당을 불법화한 곳은 오로지 한국밖에 없다고 합니다.

결국 미국의 점령 체제 자체가 이미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폭력적으로 응수하고 있었고, 제주4·3항쟁은 이러한 체제 하에 응축된 민중항쟁의 발화점인 것이죠. 이러한 크로노토프를 이해해야 우리는 과거사 청산에 있어 단순히 시행법 차원의 청산뿐만 아니라, 나아가 미래에 반복될 수 있는 폭력의 구조를 끊어낼 수 있다고 이재승 교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