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회소식

[기억×공간 포럼] 기억의 공간, 트라우마의 공간, 희망의 공간

기억×공간 포럼이 2회차를 맞았습니다. 앞으로 민주인권기념관을 만들어야 하는 우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이 공간에 어떤 기억을 담을 것인지, 그리고 어떤 의미로서 공간을 창작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며, 『역사가 기억을 말하다』, 『상상의 아테네, 베를린, 도쿄, 서울-기억과 건축이 빚어낸 불협화음의 문화사』 등을 저술하신 부산교육대 전진성 교수님을 모셨습니다. 이번 2회차에서 전진성 교수님께서는 <기억의 공간, 트라우마의 공간, 희망의 공간>을 주제로 강의해주셨습니다.


근대 철학에서 공간은 멈춰있는 정태의 물질입니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가변적인 ‘시간’ 개념을 공간과 만나게 하는 작업들을 많이 했었지요. 하지만 정말 공간은 그저 멈춰있는 것일까요? 전진성 교수님은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같은 공간이더라도 의미는 계속해서 바뀌고, 그 공간이 상징하는 바도 늘 같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간 역시 사회적인 구성물이기 때문입니다. 지리학자 이푸 투안(Yi-Fu Tuan)은 ‘장소애(topophilia)’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공간을 비단 ‘화석’인 것이 아니라 주관적 체험과 감정의 문제라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과거’조차도 멈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를 재현하는 것에도 늘 재현에 대한 해석과 권력이 개입되지요. 따라서 우리가 과거를 기억한다고 할 때의 그 과거 역시도 정태적이거나 고정적이며 절대적인 과거가 아닙니다. 대표적인 예로 교수님이 들어주신 공간은 Neue Wach(노이에 바헤)의 ‘피에타’입니다. 베를린에 있는 이 ‘피에타’ 상은 독일인들이 자신의 전쟁을 기억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성모에게 안겨있는 것은 남성 독일 군인이라고 합니다. 본래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지어졌으나 1931년부터는 전쟁 희생자를 추모하는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전쟁 희생자를 기념한다고는 하나 그 표현 대상이 ‘남성 독일군’이어야 했는지 등에 대하여 많은 비판이 있었다고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파시즘에 대한 향수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렇듯 우리가 과거를 기억한다는 건 늘 논쟁적일 수밖에 없고, 어느 하나의 관점으로 과거를 정리하려는 순간 과거는 그 상태로 ‘고착화’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강연해주신 전진성 교수님

이러한 것을 염두에 두었을 때 ‘기억의 공간’이란, 특정한 가치 체계와 이념에 기반하여 기억을 재현해낸 공간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전진성 교수님이 제안하시는 것은 ‘트라우마의 공간’입니다. ‘트라우마의 공간’이란 피해자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공간을 말합니다. 기념관을 위시한 ‘기억의 공간’보다 훨씬 낯설고 이질적이죠. 역사의 재구성이 아니라 역사의 ‘민낯’을 보여주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관객들이 받아들이고 해석할 수 있게 두는 거죠. ‘다크투어리즘’도 ‘트라우마의 공간’을 잘 보여주는 한 사례로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특히 베를린에 있는 Topographie des terrors 는 그저 ‘나치의 잔학성’이라고만 표현될 수 없는 충격을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베를린, Topographie des terrors

하지만 우리가 더 나아가야 할 공간상은 ‘희망의 공간’입니다.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는 투쟁으로서의 민주주의와 과거의 민주주의가 만나기 위하여 우리는 오히려 더 미래의, 더 불온한 상상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대한 훌륭한 사례로 말씀해주신 것은 <윤동주 문학관>과 <부천아트벙커 B39>입니다. <윤동주 문학관>의 경우,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다보면 예전에 있던 물탱크의 천장을 벗겨내어 관객들에게 네모난 하늘을 만나게 하는 공터가 나온다고 하는데요. 그 공터에서 우리는 윤동주가 보았던 ‘별 헤는 밤’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부천아트벙커 B39>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불온한 공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는 이전의 쓰레기 처리 시설이었던 곳을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했는데, 안에 들어가보면 이전의 쓰레기 처리 시설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고 합니다. 거대한 쓰레기들을 쌓고 누르고 배출하던 공간의 모습을 그대로 마주하면서 관객들은 어떤 생각에 사로잡힐까요? 그 느낌들이 바로 새로운 정치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해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