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포트]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과 폄훼는 왜 지속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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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과 폄훼는 왜 지속되는가?

 - 5·18민주화운동 39주년에 부쳐 -


이영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주의연구소 부소장


1. 들어가며

39년 만에 5·18 당시 신군부, 정확하게 전두환의 역할과 5·18이 어떻게 은폐, 조작되었는지에 대한 새로운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증언은 무엇보다 5·18의 왜곡과 폄훼의 출발점인 가해자를 정확히 지목하고 그 가해 행위를 명확하게 증언함으로써 지금까지도 피해자들을 규율하던 국가폭력에 기반한 조작과 왜곡의 카르텔을 붕괴시켰다는 데에서 의미가 있다. 그동안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는 역사’, 또는 심지어 아직도 피해 사실조차 숨겨야 했던 국가폭력의 악순환을 끊는 계기라는 점에서 이번 증언은 더욱 의미가 크다. 가해자를 찾아내서 응징하는 것만이 우리가 과거를 대하는 태도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가해자 없는 역사’는 진실도, 성찰과 반성도, 특히 과거를 현재와 미래로 이어주지 못하게 한다. 따라서 철저한 진상규명과 가해자를 정확하게 기록으로 남기는 역사적 작업은 ‘사법적 응징’과 ‘희생에 대한 보상과 명예회복’ 이상으로 중요하다. 이 글에서는 5·18을 중심으로 한 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과 폄훼의 원인과 양상을 살펴보고 그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2. 왜곡의 원인: 역사적 처벌의 불철저성

5·18 민주화운동은 일상적인 왜곡과 폄훼에 시달려 왔다. 그 원인은 가해 당사자들에 의한 사건기록의 인멸과 증거조작, 정치권에 의한 끊임없는 왜곡의 동원, 온라인과 SNS의 발전에 따른 익명성과 편향적 자료를 맞춤형으로 끊임없이 제공하는 협송(narrowcasting)의 강화,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따른 사회적 불만의 증대 등 다양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것을 반복하게 만드는 것은 ‘가해자에 대한 역사적 처벌’의 불철저성이다. 진상규명은 사법적 처벌이나 역사적 처벌에서 공히 해결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수형 기간의 만료나 사면으로 그 처벌이 종료되는 사법적 처벌과 달리 역사적 처벌에서는 가해자의 반성에 기초한 화해조치가 취해진다고 하더라도 그 역사적 기록과 평가는 현재와 미래로 지속해서 전승된다는 점에서 무한한 처벌의 성격을 지닌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가해에 대한 철저한 규명과 가해자의 사과 없이 피해자와 희생자, 민주화운동 관련자 등에 대한 보상과 기념·계승이라는 화해조치를 진행해 왔다. 1990년 노태우 정권에서 민자당이 단독으로 처리한 ‘광주보상법’의 사례에서와 같은 철저한 진상규명과 가해자의 사과 없는 보상 위주의 급속한 화해조치는 ‘가해자 없는 역사’를 만든 것이다. 가해자 없는 역사는 첫째, 5·18의 사례에서와같이 사건의 진실규명을 어렵게 하고 목숨을 걸고 항거한 시민들이 ‘간첩’ 또는 ‘폭도’로 왜곡하거나 희생자가 반인륜적 폄훼의 대상이 되는 2차 가해의 단초를 마련했다. 둘째, ‘건국-산업화-민주화론’과 같이 희생의 불가피성 내지 공과의 산술적 합계를 명분으로 ‘반성 없는 화해의 대상’으로 만들거나 ‘논쟁거리’의 대상으로 인식되도록 하였다. 셋째, ‘6·29민주화선언’이라는 용어가 전두환·노태우 등 가해자를 민주화의 주체로 만드는 것처럼 또 다른 역사 왜곡으로 이어졌다. 첫 번째 사례의 경우 명시적이고, 직접적이고 범죄적인 성격을 지닌다는 점에서 다양한 대응이 진행되고 있지만, 세 번째 사례의 경우는 사법적 처벌 대상에서 벗어나 있고, 일정 부문 실제 사건에 접목해 있다는 점에서 왜곡 여부를 인식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3. ‘가해자 없는 역사’와 왜곡의 악순환: 양상과 문제점

1) 불완전한 화해조치에 따른 가해자의 익명화와 피해의 일방화
모든 사건에 대해 가해자가 명확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국가’ 또는 ‘사회’와 같이 추상성이 높거나 직접적인 대상을 특정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국가폭력 사건의 경우 국가의 책임 인정과 현재 책임자로서 대통령이 사과는 문제해결의 새로운 출발점이 된다. 국가폭력의 진상을 규명하고 가해자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통해 2차 가해의 고리를 끊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해자들의 반성과 철저한 진상규명 없는 ‘위로부터의 화해조치’는 국가폭력 가해자들이 ‘국가책임’과 ‘대통령의 사과’라는 ‘추상성’과 ‘익명성’으로 숨어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특히 국가폭력에 대한 국가의 책임성은 정권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였고 국가폭력에 대한 기록은 희생자, 피해자에 대한 기록으로 채워졌다. 이것은 희생자와 피해자에 대한 왜곡과 폄훼, 또 다른 왜곡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즉 피해자는 있으나 가해자는 없는 ‘피해의 일방화’라는 반쪽의 화해로 귀결된 것이다.

2) ‘가해의 과거화’와 ‘희생의 선택지화’
철저한 진상규명과 가해자에 대한 기록의 부재라는 ‘반성 없는 화해’는 국가폭력을 이미 과거의 문제로 제한하게 만듦으로써 현재와 미래와의 역사적 단절을 초래했다. 이미 진행된 화해조치는 그 현재까지 피해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 행위가 이미 역사적·사법적으로 종결된 과거의 사건으로 인식되도록 하였다. 가해의 과거화와 ‘피해세력’의 집권 등 정치적 보상에 따라 이들 사건에 대한 현재의 ‘진상규명’은 지난 일을 또 들추어내는 소위 ‘우려먹기’라는 왜곡과 폄훼의 빌미가 되었다.
동시에 ‘가해자의 반성 없는 역사’의 문제는 당시 희생이 불가피했거나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로 왜곡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내포하게 되었다. 즉, 가해는 경제발전이나 국가안보를 위한 선택지 중의 하나로 당시 상황에서는 또는 전체의 시각에서는 불가피했다는 왜곡으로 이어진다.

3) 가해 사실의 인멸: 역사 지우기
가해자에 가해 공간에 대한 철저한 기록의 부재는 과거는 물론 현재와 미래의 국가폭력에 대한 증거인멸로 이어지고 있다. 앞의 왜곡과 폄훼의 사례가 가시적이고 직접적이라면 역사 지우기는 가해가 벌어진 공간적, 행정적 증거 자체를 없앤다는 점에서 더욱 근본적인 역사 왜곡이라 볼 수 있다. 수십 년간 국가폭력의 심장이었던 중앙정보부는 그 과거를 알 수 없는 유스호스텔과 공원으로 변한 지 오래되었다. 경찰의 남영동 대공분실은 ‘경찰청 인권센터’라는 세탁과정을 거쳐 최근에서야 이미 알려져 조작할 수 없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발생한 509호를 제외하고는 빈 껍데기 상태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이관되었다. 전국에 산재한 국가폭력의 가해 공간에 대한 멸실과 자료의 파기는 국가폭력 가해의 역사가 현재, 그리고 미래와 만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역사도 동시에 지운다는 점에서 역사적 범죄행위이다.

4) 가해자와 피해자의 전도: 민주화의 주체 바꾸기


자신이 민주화의 주인공이라며 진행한 전두환·노태우의 6·29 선언 주도 논쟁은 이제 ‘6·29선언’이 민주화의 출발점이라는 ‘6·29 민주화선언’으로 왜곡되어 확산되고 있다. ‘6·29민주화선언’이란 용어에서 민주화의 출발점은 6월 항쟁과 항쟁에 참여한 다수 시민이 아니라 전두환 또는 노태우의 결단이 된다. 즉, 광주학살과 고문치사 등 국가폭력으로 정권을 유지하고,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뒤로한 채 ‘위수령’을 검토하면서까지 정권을 연장하려 했던 신군부는 ‘6·29민주화선언’을 통해 독재자에서 민주화의 주역으로 탈바꿈한다. 이처럼 가해자에 대한 철저한 기록 없는 저항의 역사에 대한 기록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바꾸거나 독재자를 민주화의 주역으로 바꾸는 왜곡으로 이어질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이것은 비단 6·29선언에 국한되지 않는다. 경찰 역사 속 올바른 경찰 정신을 되새기겠다며 신임 경찰관들에게 필수적으로 진행하는 ‘경찰 역사 순례길’ 팸플릿에서는 “한 경찰관의 정의로운 내부고발, 6월 민주항쟁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박종철 군 고문치사와 그것에 대한 왜곡·조작에 대한 분노가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진 것에 대한 반성과 성찰 대신 고문 조작에 가담한 경찰을 민주화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4. 가해자에 대한 철저한 기록과 민주화 가치의 보편화가 대안

1) 가해자에 대한 철저한 기록이 해결의 출발점
앞서 이야기했듯이 5·18에 대한 새로운 증언은 그동안 5·18의 왜곡과 폄훼의 핵심적 문제였던 가해자를 정확히 지목함으로써 5·18 왜곡과 폄훼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가해자에 대한 철저한 기록, 가해 공간과 시설·행정서류 등에 대한 보전은 왜곡의 출발점이 되는 ‘가해자 없는 역사’의 문제점을 상당 부분 보완할 수 있다. 사법적 처벌을 마친 가해자들이 자신의 행위에 대한 반성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가해자를 현재와 미래로 이어주는 가해 기록과 공간의 보존·복원을 통해 역사적 처벌의 대상으로 지속시킬 수는 있다. ‘친일인명사전’의 사례에서와같이 가해자에 대한 기록은 단지 가시적 역사 왜곡과 폄훼뿐만 아니라 은밀하게 진행되는 역사 지우기와 민주화 대상을 주체로 바꾸는 등 다양한 왜곡을 막는 버팀목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국가폭력 관련 기록 등 보존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서라도 국가의 국가폭력의 공간과 관련 자료들에 대한 보존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멸실과 조작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진행해야 한다.

2) 국가폭력 장소의 기념박물관화
전국에 산재해 있는 경찰청 대공분실 등 국가폭력의 공간을 가해자의 공간에서 시민의 공간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이러한 공간들은 그 기능에 따라 역사성을 살리되, 국가폭력 관련 아카이빙이나 치유공간, 시민교육 등으로 활용되도록 함으로써 과거가 끊임없이 현재, 그리고 미래와 만나도록 해야 한다. 현재 국가폭력의 공간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는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은 이러한 기념박물관들을 대표하는 한국 민주주의 상징적 공간이자 센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의 역할은 성대하고 장엄한 기념식이나 대표적 기념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살아있는 가해세력의 역사적 장소 훼손과 역사 지우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포함하여 시민의 일상을 규율하고 통제했던 국가폭력 시설이 시민의 일상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교육의 장이자 공론의 장이 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3) 보편적 가치를 지닌 현재의 운동으로의 발전
무엇보다 민주화운동 관련 왜곡과 폄훼를 막기 위해서는 피해자와 가해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참여자와 일반 시민들, 그리고 현재 세대와 미래세대까지 그 화해대상의 범위를 확장해야 한다. 즉, 왜곡과 폄훼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인 특정 지역과 세대, 세력적 한계를 넘기 위해서는 해당 민주화운동이 갖고있는 적극적 가치를 연결하고 확대함으로써 보편적인 가치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5·18은 전국에서 진행하는 기념행사가 아닌 현재 학살이 진행되고 있는 전 세계 국가들의 피해 대중과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국제적으로 목소리를 냄으로써 전국화를 넘어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남영동에서 추진 중인 민주인권기념관은 과거 국가폭력의 문제를 넘어 현재와 미래, 국내외의 다양한 민주주의·인권문제와 손잡음으로써 보편성과 지지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5. 민주인권가치의 보편화와 현재화가 필요하다.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과 폄훼를 막기 위한 입법이 추진 중이다. 그 심각성과 파급력 등을 고려할 때 법률적 처벌이 불가피할 수 있겠으나, 그것이 왜곡과 폄훼를 막기 위한 버팀목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특히 그것은 권위주의적 방식과 유사할 뿐만 아니라 SNS 등 사적인 공간을 통한 왜곡과 국가폭력 공간의 멸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전도와 같은 왜곡의 형태에 대해서는 해법이 될 수 없다는 한계를 지닌다. 왜곡과 폄훼는 지속적으로 법률적 제도적 틈 사이에서 반복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는 가해자에 대한 기록과 유실되고 있는 국가폭력 공간에 대한 적극적 보존과 시민교육의 장으로서 기념박물관화, 과거의 민주화운동을 보편적 가치를 지난 현재와 미래의 운동으로 발전시키는 등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즉, 현재의 법률적 처벌을 넘어 영구적인 역사적 처벌의 기반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이 점에서 ‘촛불의 산물’이자 민주화 이후 지난 30여 년간 지속된 ‘기억 투쟁’의 작지만 소중한 결실인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은 민주화 세력의 승전물이나 당사자들의 자기 기념적(self memorial) 시설이 아닌 한국 국가폭력의 역사적 처벌의 장이자 과거, 현재, 미래 그리고 세계 민주주의와 연대하는 살아있는 현재의 민주주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과거의 역사가 현재와 미래의 민주주의와 적극적으로 만나고 소통한다면 왜곡과 폄훼의 문제는 굳이 법률적 강제에 의존하지 않아도 시민적 상식 수준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전락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