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식 前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상임이사 별세 - 오래도록 뜨겁게 일렁일 이름, 만파(萬波) 나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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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뜨겁게 일렁일 이름, 만파(萬波) 나병식
나병식 前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상임이사 별세

 
민주화운동에 평생을 바친 나병식 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상임이사가 향년 64세로 20일 오전 8시 28분 별세했습니다.
 
고인은 광주일고, 서울대 국사학과 출신으로 대학 재학시절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으로 사형을 언도받은 바 있고, 지금까지 이 땅의 민주화와 출판문화운동을 위해 헌신해왔습니다. 1979년 사회과학출판사 풀빛을 설립해 1천여 종의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출판했습니다. 역사서 『한국민중사』를 발간 필화사건으로 투옥(1987년)되는 등 여러 차례 옥고를 치렀으며, 광주항쟁 관련 서적 등 수많은 책을 압수, 판금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출판문화운동을 해왔습니다. 민주개혁국민연합 상임집행위원장을 지냈으며, 2001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설립과 함께 상임이사를 역임했습니다.

장례는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졌습니다. 장례식장인 신촌 세브란스병원은 높은 기개로 정의를 위해 싸우던 고인의 생전 모습을 기억하는 많은 추모객들로 북적였습니다. 12월 22일 저녁에는 ‘나병식과 나누는 마지막 만찬’이라는 이름의 추모행사가 열렸으며, 12월 23일 오전에는 장례식장에서의 영결미사를 시작으로 정동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앞에서의 노제가 이어졌습니다. 고인은 파주시 광탄면 나자렛 공원묘원에 안장되셨습니다.

아래에는 고은 시인, 이이화 역사학자, 정찬용 참여정부 인사수석 비서관, 황명걸 시인, 박승옥 한겨레두레공제조합연합회 대표가 고인을 기리며 쓴 글들을 담았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기리며 일독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만파 나병식, 굽이치다.
 
그는 일찍이 만파(萬波)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가 몸을 일으키면 필시 바람이 되고
폭풍우가 되었기 때문일까.
그의 우렁찬 말이 일파만파로 세상을 움직이게 하여서일까.
우리는 어쩌지 못하고 파도가 되어 더불어 휩쓸렸다.
한줄기 물결이 솟구쳐 만개의 파도가 되었듯,
오래토록 뜨겁게 일렁이리라.
 

* 홍성담 판화, 흐르는 물이야!

 



시로 만나는 나병식
 

나 병 식


- 고은


전봇대 키
 
도수 높은 안경이면 되었다
거기다가
숨차며 말 이어가면 되었다
서울대 사학과 학생이었다가
민청학련 사건 사형짜리
몇 차례나 감옥에서 나오면
마늘장수도 하고
아버지와 아들 사이도 속인다는
꿀장사도 하고
그러다가 양복점 풀빛도 차려보았다
그러다가
출판사 풀빛 차려
이 책
저 책을 내어
그 책더미 속에서
숨차며 말 이어가면 되었다
나병식
그는 광주가 고향이기 전에 조국이었다
황사바람 펄럭이는데 -고은 시집 〈만인보〉 11권 62쪽


 
젊은 마늘장수


- 황명걸


하늘 높고,
정기 가득한 철
벌에 황금 이삭 물결치고
마당의 고추 숯불처럼 타는데
더럽고 욕스럽기만 한 거리
 
일렁이는 황금, 물결이고자
빨갛게 타오르는 숯불이고자
떨쳐 일어나다 뒤질러진 젊음들이
다시금 꼬옥꼬옥 깍지를 낀다
배움을 빼앗기고
일자리마저 얻지 못하지만
약이 오른 독초만은 아니 되고자
억울함을 참고 분노를 누르며
우선 살아남기로 한다
어떤 학생은 공장으로 들어가고
어떤 청년은 공사판을 찾아가고
또 어떤 젊은이는 등짐장사를 떠나고
당진 서산 영덕 외성
고흥 해남 남도 천리길을
불그레한 얼굴 농립모를 눌러쓰고
큼직한 발 성큼 떼며 가는
젊고 건장한 마늘장수
빛나고 탄탄한 내일을 위해
캄캄한 오늘에는 고단한 길을 걷자고
꼬옥꼬옥 깍지 끼며 서울을 떠나온
걸음걸이는 무겁지 않다
산과 들이 새롭고
하늘과 물이 새로운
넓고 우람한 가슴에는
황금 물결 일렁인다
빨갛게 숯불이 타오른다
 
손에 손을 함께 깍지 끼던
공장에 들어간 학생이여
공사판에 찾아간 청년이여
그리고 그대 친구여
당신들은 우리의 희망
마침내는 성취를 맛볼 기쁨이구나
 


 

조시

모두 다 지나가고 역사는 남는다
- 이제 역사의 나라로 떠나는 나병식에게

박승옥
(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수석연구원, 한겨레두레공제조합연합회 대표)

모두 다 지나간다

 
정권 교체의 희열도
1987년 대통령 선거 뒤의 허탈함도
1980년 지독히도 밉살스러웠던 광주학살의 그 역설적인 따스한 햇볕도
1975년 감옥에서 나와 한복을 입고 만세를 부르던 청년 나병식도
세상을 바꾸겠노라고 골방의 담배연기 속에서 꿈틀대던 우국의 열정도
 
모두 다 지나간다
 
힘찬이와 빛나와 슬기의 재롱에 세상의 근심을 다 잊던 기쁨도
김순진의 작고 포근한 품에 안기던 거대한 즐거움도
유신독재의 부활에 대한 분노도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조롱하는 정보기관 끄나풀들에 대한 슬픔도
 
다 지나간다
 
나병식에게 흠결과 티끌과 먼지가 왜 없겠는가
다투고 싸우고 논쟁하고 서로 상처주던 그런 관계가 왜 없겠는가
그러나 그는 사람 사이의 우정과 의리가 살아 숨쉬는 공동체를 꿈꾸고
서로가 서로를 돕는 따뜻한 사람세상을 이루고자 노력한 민주화운동가이자
천상 전라도 촌놈이었다
 
민주화운동은 이제 백발 희끗희끗한 역사 속으로 희미하게 사라져 간다
그것이 세상의 변화이자 역사이다
 
역사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치유 열풍에 편승하는 고상한 개인주의자들에게 묻고 싶다
 
세상살이의 고단함에 불안하고 갈곳 몰라하는 수많은 이땅의 민중들이
밀양의 할배 할매들이
죽어가는 삼성과 쌍용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안녕하시냐고 세상의 불의를 묻고 저항하고자 나서는 젊은이들이
나병식의 부활과 재생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되묻고 싶다
 
이 광기어린 죽음과 경쟁의 돈지랄 세상을 거슬러
우애와 환대의 세상을 향해
지금 여기 이땅에서
인간다운 호혜의 공동체 세상을 향해 내 삶과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이
역사가 아니고 무엇이냐고 묻고 싶다
 
마지막으로
모두에게 평등한 죽음 앞에서
그동안의 애증 다 버리고 계급장 떼고 한 마디 배웅 말 올린다
 
병식아!
야, 이 징글징글한 놈아, 잘 가라!
저승에서 다시 만나면 안녕하냐고 묻는 젊은 벗들과 함께
또 새벽까지 술벗하자 

2013. 12. 23.


 

추모의 글

고 나병식 민주의사를 보내며

이이화(역사학자)

밤새워 술을 마시고 바둑을 두고 열띤 담론을 벌이면서도 거뜬하게 버티던 그 강골이 왜 이렇게 일찍 죽었는가? 우리 사회가 그를 버렸다고 말해야 옳은가? 이런 소박한 화두를 던지고 보니 가슴이 더욱 서늘해진다.
 
나병식 의사의 고난은 이른바 유신시절로 돌아간다. 그는 서울대 문리대 사학과 재학생 시기, 역사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접고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유신반대 투쟁의 대열에 나섰다. 마침내 유신정권은 1974년 전국의 학생 180명을 구속하고 군법회의에 회부하였다. 나병식은 반유신 주범의 혐의로 긴급조치 위반죄가 적용되어 사형 선고를 받았다. 구속된 지 10개월 만에 형집행정지로 풀려나기는 했으나 심한 고문을 받고 생사를 넘나드는 극한상황 속에서 심신이 망가졌다. 하지만 그의 기개는 결코 죽지 않았다. 그는 더욱 민주화투쟁의 대열에 나섰다.
그는 두어 가지 목적으로 풀빛출판사를 차렸다. 의미 있는 인문서적을 내겠다는 의지와 생계를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풀빛출판사에서는 한국민중사를 펴냈고 이게 신군부에게 빌미를 주어 발행인 나병식이 구속된 것이다. 그는 법정에서 발행인인 자신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필자들을 보호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는 이런 저린 일로 네 번에 걸쳐 감옥을 넘나들었다.
6월 민주항쟁 이후, 그는 두 가지 일을 벌였다. 하나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발족시키는 데 앞장서서 끝내 이루어냈고 상임이사를 맡아 고통 받던 민주인사의 권익보호와 민주화운동의 조사와 정리를 해냈다. 그에게는 평생에 걸쳐 이 직책이 유일하게 공적 월급을 받는 자리가 되었다. 다른 하나는 출판운동을 벌이면서 그 책임자 자리를 맡아 건전한 서적을 보급하고 인문학의 정리와 발굴에 나섰다. 출판사 이름 풀빛과 자녀들의 이름 힘찬 빛나 슬기에서도 그의 혼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겠다.
하나의 보기를 더 들어보자. 2010년은 한일병합 100주년, 한국전쟁발발 60주년, 4.19혁명 50주년, 광주민주항쟁 30주년이 되는 역사적인 해였다. 이를 앞두고 우리 탐방단 20여 명은 압록강 두만강 그리고 백두산 탐방단을 꾸려 민족의 혼과 국경의 역사를 뒤돌아보는 길에 나섰다. 그가 탐방단장을 맡아 아픈 역사를 찾아 나선 것이다. 젊은 날 역사학자의 꿈을 현장을 통해 확인하려는 의지였을 것이다. 우리 탐방단은 그와 함께 때로는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고 때로는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그의 성품은 한 마디로 말해 소신과 의지로 차 있었고 늘 남을 돕는 일을 벌였다. 인정이 넘쳐나고 마음이 여리면서도 강한 리더십이 있었다. 하지만 꿈을 다 이루지는 못했다. 꿈을 먹고 살던 사나이였다.
오늘날 민주질서는 유린되어 혼란에 빠져들고 있고 지역과 계층 사이의 갈등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그는 이런 시대 상황 속에서 버티다가 세상을 달리하고 말았다. 아, 절통하구나. 그래도 그는 우리 땅에서 굳은 신념을 지닌 민주의사로 역사에 이름을 올릴 것이다. 머지않아 지하에서라도 우리 사회의 민주질서가 바로 서는 날을 지켜 볼 것이리.
모든 걸 산 자에 맡기고, 뒤를 돌아보지 말고 마음 편히 가시오. 우리도 뒤따라가서 못다 한 얘기 나눌 것이니.....

 



추모의 글

장사(壯士) 나병식 형을 떠나보내며

참여정부 인사수석 비서관 정찬용

병식형, 어찌 이리 서둘러 떠나시는가? 올봄만 하더라도 그 힘들다던 항암치료를 10여 차례나 견디고서 활짝 웃으며 이제 요양만 하면 된다는 말에 역시 우리 장사가 암 따위에 넘어질 리 없다고 확신했건만, 이리 떠나시니 참으로 막막하네.
 
병식형, 지난 세월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16년 동안 항상 붙어 지내던 후배이자 친구로서 되돌아보니, 자네는 참으로 장사였네. 조선 시대 같으면 장군이라도 할 장대한 체구만이 아닐세. 자네가 걸어온 민주화운동에서의 올곧은 기개나 정신도 장사였고,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그것을 헤치어나가는 의지와 추진력 역시 장사였네. 어찌 그뿐이겠는가? 서로 적대적인 관계라 할 수도 있는 정보과 형사와도 두주불사하며 호형호제까지 할 정도로 넓은 마음이 그러했고 지인이나 동지를 만나 밤새워 술잔을 기울이며 토론하던 다정함이 그러했네. 나는 항상 그런 형의 모습을 보며 친구가 아니라 우리 시대의 진정한 장사이자 대인배라고 존경했다네. 그래서 암 또한 쉽게 떨치고 일어나 “어이 찬용이! 술잔은 3,5,7,9라네.”하면서 너털웃음을 지을 것이라 믿었네.
 
아아 병식형, 이렇게 가는 것은 정말 자네답지 않은 일이네. 대학생 시절 소위 민청학련 사건으로 우리가 함께 끌려갔을 때 중앙정보부의 그 모진 고문과 구타에 밀가루 포대처럼 너덜너덜하게 끌려왔으면서도 꿋꿋하게 일어서던 자네가 아니었는가. 저 삼엄한 전두환 군부 독재 치하에서도 ‘오월 광주’의 진실을 밝히려는 일념에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과감하게 출간했던 자네가 아닌가. 이제 누가 있어 우리 같은 소인배들과 어울려 밤새워 술 마시며 빛나는 혜안과 통찰을 보여 줄 수 있겠는가.
 
병식형, 하늘 가는 길 지금은 어디쯤 가고 계시는가? 이제 무거운 짐들은 남은 우리에게 나누어주고 부디 평안하게 가시게. 그리고 하늘에서도 언제나 당당하던 장사의 모습 그대로 남아서 우리가 주저앉거나 허튼 길로 가지 않도록 늘 눈 여겨 보시면서 보살펴주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