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민주주의 배움터 2강 후기> 시민적 자유를 위해 참여하고 연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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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민주주의 배움터 두 번째 강좌 후기 - 시민적 자유를 위해 참여하고 연대하라

 

2014 민주주의 배움터 “민주주의, 공화주의와 만나다” 두 번째 강좌가 지난 12월 4일(목) 오후 7시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민주누리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스물 다섯 명의 참가자들이 자리를 채운 가운데 조승래 청주대학교 인문학부 교수님이 지난 첫 번째 강좌에 이어 두 번째 강좌를 맡아 ‘공화주의의 형성과정과 핵심사상’이란 제목으로 강의를 해 주셨어요.  

 

참여적 공화주의와 경연적 공화주의 

오늘날 학자들이 말하는 공화주의에는 두 갈래가 있습니다. 먼저 ‘참여적(participatory) 공화주의’를 주장하는 역사가 포콕과 철학자 아렌트가 있는데요. 이분들은 ‘공화국이라는 것이  공공의 것이니깐 공동이 결정해야 한다. 공공의 일에 참여하는 것이 인간의 ‘덕’(virtue)이다.‘라고 주장합니다. 다른 한 편 철학자 필립 페티트와 역사가 스키너와 같이 ’경연적(contestatroy) 공화주의‘를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는데요. 그들에 따르면 인간이 인간답다라고 하는 것을 꼭 공공의 일에 참여할 때라고만 못박으면 일원주의, 나아가 전체주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이 다원주의 삶 속에서는 서로의 이해관계, 세계관, 인생관이 다른 다양한 시민들이 서로 경쟁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한 부분이 다른 부분을 지배하지 않게 하는 ’비지배의 원리‘를 구현할 때만이 공공의 것이라는 원리가 구현된다고 합니다. 조승래 교수는 이 두 진영의 공통점은 공화주의는 자유주의와 다르다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지난 시간 이야기한 공화주의의 자유와 자유주의의 자유를 간략하게 요약 설명하고 공화주의는 자유주의와의 길항적인 이념이었다는 것을 재차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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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주의의 핵심 사상 

자, 그러면 조승래 교수의 공화주의의 형성과정과 핵심사상에 대한 설명을 잠시 들여다 볼까요? 조승래 교수에 의하면 공화주의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공화주의가 서양사상의 흐름에서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17~8세기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자유주의에게 밀려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잊혀졌던 공화주의를 다시 발굴해 내야 하는 지점에 와 있는데, 왜냐하면 공화주의가 자유주의보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데 더 담론적인 힘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죠.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좋은 삶’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죠. 이걸 그리스 말로는 ‘아레테’(arete)라고 하고, 로마 말로는 덕(virtu)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인간다움은 곧 덕을 실천하는 것인데요. 그러기 위해서는 공공의 일에 참여해서 자기 몫을 다해야 합니다. 이렇게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된 공화주의가 서양 사상사에서는 세 개의 부분에 녹아있게 됩니다. 하나는 혼합 정체론(Mixt, mixed constitution), 또 하나는 시민군제(militia), 마지막으로는 토지 균분제입니다. 어떤 나라가 공동의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그 정치 체제는 혼합정치체제이어야 하고, 어떤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인 시민단이 자유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무장하고 있으면서 다른 시민들과 평등한 구성원임을 보여주어야 하며, 공동체의 부가 한쪽으로 독점, 과점되어서는 실질적 평등이 구현될 수 없으니 토지가 구성원들에게 골고루 나뉘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혼합정체 - 견제와 균형의 원리 

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시 아테네에 있었던 여러 나라 폴리스들을 돌아다니면서 각 폴리스마다 그 폴리스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특징은 뭔지 등을 샅샅히 조사했다고 합니다. 그 내용을 축약한 내용이 그의 <정치론>을 통해 전해지고 있는데요. 그는 모든 나라는 한 사람, 소수, 다수가 지배하는 나라가 있다고 보고, 그 나라를 다시 좋은 나라와 나쁜 나라로 구분했습니다. 그 구분 기준은 공익을 위해 지배하는 나라인가, 사익을 위해 지배하는 나라인가였습니다.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일인 지배의 경우 좋은 정체는 군주정(monarchy), 나쁜 정체는 ’폭군정(tyranny)‘, 소수가 지배하는 경우 귀족정(aristocracy) / 과두정(oligarchy),  다수가 지배하는 나라에서는 폴리테이아(politeia) / 중우정, 폭민정(democracy)으로 나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문제는 이 정체가 자꾸 악순환된다는 것인데요. 그는 이 정체의 악순환을 끊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데, 그러려면 일인, 소수, 다수 지배체제를 혼합해서 혼합정을 해야 서로 견제와 균형이 잡힐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스의 폴리비우스(BC200~118)라는 역사가는 <역사>라는 저술에서 로마가 어떻게 지중해 세계를 통합할 수 있었는지 그 원인을 찾으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혼합정이 구현되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로마는 콘솔(consol)이라 부르는 두 명의 집정관이 있었고, 엘리트들이 모여 원로원(senatus)을 구성하여 로마의 권위를 대변하였으며, 또 나머지 로마 시민 전체가 회의하는 민회(comitia)가 있었습니다. 원로원이 누가 최고의 통치권자가 되어야 하는 지 추천하면, 민회에서 결의해서 콘솔이 되었습니다. 콘솔은 원로원에서 심의되고 민회에서 결의된 법을 가지고서만 통치권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원로원은 콘솔과 부하 관리들에 대한 감독권 및 청문권이 있었으며, 민회에서는 호민관을 뽑아서 원로원에서 심의된 법안에 대해서 거부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세 요소가 절묘하게 혼합되어 있어서 견제와 균형 속에서 정체의 악순환이라는 불안정한 역사의 비극을 로마공화국은 방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 폴리비우스의 설명입니다. 폴리비우스의 이 책은 서양의 지식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서양사람들은 좋은 나라라고 하면 당연히 ‘혼합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승래 교수는 오늘날 공화주의가 제도적으로 살아남은 것은 바로 이 혼합정이라고 합니다. 서양의 거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혼합정을 취하고 있는데, 혼합정의 핵심은 ‘양원제’입니다. 우리나라도 4.19 혁명 이후 민주당 정부에서 양원제를 실시하여 원로원을 참의원, 하원을 민의원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양원제를 하면 국가 운영을 함에 있어 사안마다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양원에서 다 심의하고, 충돌하면 다시 심의하고를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조승래 교수는 하나의 파이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예를 들어 양원제를 쉽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 파이를 우리 사회에 어떻게 분배해야 할 것인가? 공화주의의 입장에서는 공공의 일에 참여한 공적에 따라 파이를 나누어야 하는데, 이 때 나누는 사람과 고르는 사람을 분리하면 해결이 됩니다. 이게 제도적으로 분리되어 있으면 나누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고르는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판단해서 선택할 만한 선에서 나눈다는 것이죠. 이게 양원제, 혼합정체의 원칙이라는 겁니다. 조승래 교수는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 중에서 혼합정체를 택하지 않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대만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우리나라도 이후 개헌을 통해 양원제로 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처럼 공화주의자들은 혼합정을 통해서만이 부분의 이익이 아니라 공동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봤습니다. 

 

시민군제 - 전인(全人)적 인간을 위하여 

공화주의의 두 번째 핵심 사상은 시민군제에 있습니다. 한 마디로 어중이 떠중이인 다수가 잘난 소수, 뛰어난 지도자에게 밀리지 않으려면 무장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요. 그리스 폴리스에서 시민단을 조직할 때 시민단 자격심사에 있어서 가장 큰 조건이 자기 스스로를 무장할 수 있는지의 여부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시민군이 제일 문제가 된 것은 18세기 아메리카 대륙 정복에 본격적으로 나선 유럽 국가들의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면서였습니다. 당시 프랑스는 일찌감치 국민개병제, 즉 징집제를 통해서 국가의 상비군을 만들었지만 섬나라였던 영국은 상비군이 매우 적었습니다. 영국은 평소 생업을 하다가 전쟁이 일어나면 편재되어 싸움터에 나가는 시민군제를 택하고 있었죠. 이러한 시민군제가 바로 공화주의 전통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프랑스, 합스부르크 왕국, 프러시아 등 외국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영국의 대부분의 기득권층은 이제는 상비군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영국의 공화주의자들은 이에 대해 끝까지 반대합니다. 국가의 상비군이 권력의 하수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이유였죠. 그들은 다수가, 즉 시민이 무장하고 있어야지 권력이 시민을 얕보지 못할 것이다, 무장 해제된 시민들은 늘 권력의 먹이가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렇듯 상비군/시민군 논쟁은 전쟁의 효율성만이 아니라 보다 더 심원한 인간관과 결부되어 있었습니다. 시민군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인간다움은 공공의 일에 참여해서 공동선이 지켜질 수 있게끔 자기 자신을 헌신하는’ 전인(全人)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럴 때 공동의 이익이 지켜진다고 보았죠. 그러나 자본주의에 적합한 상비군은 전인(全人)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인(professional)을 요구했습니다. 전쟁도 프로가 해야지 아마추어가 하면 안된다는 것이 자본주의의 논리였죠. 공화주의자들은 분업의 프로페셔널리즘이 부분의 이익만 추구하게 하고, 그 부분의 이익이 충돌되었을 때 해결 방법은 결국 권력 또는 로비 둘 중 하나밖에 없는 게 자본주의의 자유라고 비판했습니다. 시민군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전인적 인간, 즉 공익을 추구해야 하는 인간을 추구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공화주의적인 인간을 말하는 것이죠. 이걸 공민적 인간(Homo Civicus)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에 비에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은 자기의 전문적 지식과 기술을 발휘해서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을 말합니다. 자유주의자인 아담스미스나 하이에크는 자생적 질서가 있어서 상충되는 이해관계가 다 조정된다고 주장합니다. 조승래 교수는 공화주의 인간관에서는 전인적 인간 대 부분적 인간, 공민적 인간 대 경제적 인간으로 나뉜다고 설명합니다. 결국 시민군제는 18~19세기를 거치면서 국민개병제 형태로 시민군제와 상비군제를 혼합하는 체제를 갖게 됩니다. 우리나라 국군도 일정 정도 시민군의 원칙이 적용됩니다. 인생의 일정한 기간을 상비군으로서 봉사하는 체제이죠. 조승래 교수는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 모병제 논의가 일고 있는데, 이러한 공화주의적인 측면을 고민해 봐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토지 균분제 - 시민적 평등의 물질적 담보를 위한 제도

마지막으로 공화주의의 핵심사상은 토지 균분제에 담겨 있습니다. 그리스에서는 원래 평등하게 분배했던 토지가 두 세대 이상 시간이 지남에 토지 비옥도, 상속 인원 등에 따라 불평등이 발생했기 때문에 다시 균형을 갖게 하기 위해 어떤 사람이 토지를 많이 소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를 둬야 한다고 보았고, 이러한 생각이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 이후 계속 공유되어 왔습니다. 토지소유 상한제를 만들어 상한을 넘어서는 토지는 국가가 회수하여 토지 없는 사람들에게 빌려주거나 분배하는 방식으로 토지를 균분해 줘야지만 시민들이 실질적 평등을 담보해 낼 수 있다고 본 것이죠. 공화주의자들은 ‘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데 어떻게 평등이 구현되겠는가?’라고 묻습니다.  

조승래 교수는 토지 균분제에 담긴 공화주의의 핵심 사상을 이야기하기 위해 17~8세기 영국에서 있었던 인클로져 운동 이야기를 꺼냅니다. 당시 농업이 자본주의화되면서 토지에서 식량을 생산하는 것보다 양을 키워 양모를 생산하는 게 더 이윤이 나니까 울타리를 치기 시작하면서 인클로져 운동이 발생했습니다. 서양에서는 도덕 경제(moral economy)라고 해서 시장기능을 억제해서 지주나 국가가 하층민들에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생활할 수 있는 물질적 기반을 마련해주는 최소한의 토지 균분 전통이 있었습니다. 공유지가 그것인데요. 공유지라는 게 어떤 지주의 사유지임에도 불구하고 옛날부터 누가 들어가 거기서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키워도 용납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인클로저 운동이 일어나 공유지가 사라지면서 농민들이 도시로 몰려들고 도시의 단순 육체노동자로 생활하게 되고, 그럴수록 노동자 임금은 더 낮아지는 식으로 도덕 경제가 완전히 붕괴되었습니다. 당시 공화주의자들은 그걸 막기 위해서 토지 제도의 상한선을 정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서양의 지식인들은 이 토지 균분제가 시민적 평등을 물질적으로 담보하는 제도로 본 것입니다. 특히 영국 공화주의자들이 제일 반대한 것이 바로 이 토지의 사유화였다고 조승래 교수는 강조합니다. 토지를 사적 소유의 개념이 아닌 공적 소유의 개념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죠. 적어도 사회의 어떤 한 부분이 재산을 과점하는 것을 막아야지만 공동의 이익이 실현되는 공화국을 세울 수 있다고 봤습니다. 조승래 교수는 이러한 토지 균분론에 담긴 공화주의적 사상은 오늘날 기본소득제 논의에서 그 맥을 찾아볼 수 있다고 진단합니다.   

 

과연 좋은 일 안할 자유도 있는가? 

조승래 교수는 공화주의의 핵심사상을 위의 세 갈래로 설명한 후,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자유주의 가치가 다 내면화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공화주의 사상이 생소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는 자유주의 사회니깐 좋은 일 안할 자유도 있지 않냐?’고 거리낌 없이 말합니다. 간섭하지 말라는 거죠. 양극화가 심화되고, 부분의 이익이 전체의 이익이 되는 것마냥 둔갑하여 선전되고 있는 것이 오늘날 현실입니다. 양극화 문제의 책임을 공동체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개인의 문제로 몰아갑니다. 에쿠스 자유가 소나타 자유보다 크고, 소나타 자유가 티코 자유보다 크다는 이런 자유주의 자유의 논리가 오늘날 횡행합니다. 조승래 교수는 이러한 논리에 반대하는 것이 공화주의라고 주장합니다. 참여하고 연대해야지만 공동의 이익, 공동의 복지, 공동선을 구현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해서 부분의 이익이 전체의 이익으로 둔갑한다는 것이지요. 조승래 교수는 ‘공화주의는 정책을 제시하는 정책학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내면화되어 있는 자유주의와 맞설수 있는 담론적 힘을 기르기 위해서 필요한 담론이다.’라고 강조합니다. 

끝으로 조승래 교수는 우리나라는 근현대사 속에서 동학 농민운동, 4월 혁명, 5.18 민중항쟁, 6.10민주화운동과 같이 투쟁으로 살아온 힘이 사회적 유전자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그 어느 나라보다도 공화주의를 구현할 수 있는 시민적 자유를 더 많이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공공의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연대할 것을 당부하며 강의를 마쳤습니다.    


2014 민주주의 배움터 세 번째 강좌는 오는 12월 11일(목) 오후 7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 ‘민주누리’에서 열립니다. 박찬승 한양대학교 사학과 교수님이 ‘대한민국만 민주공화국’이라는 제목으로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문구가 들어가게 된 역사적 배경을 설명해 주실 예정입니다. 관심있는 많은 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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