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회소식

<2013 민주주의 현장체험 탐방기> ‘원주 지역 민주화 운동과 협동조합’

‘원주 지역 민주화 운동과 협동조합’ 탐방기

글  마포 우리동네청년회

 

 ‘우리동네 청년회’는 마포지역을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는 2030 지역 청년들의 모임입니다.
※ 본 글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주관하는 "대학생 민주주의 현장탐방"의 일환으로 `청년 민주주의 현장탐방단`에 선정되어 
    원주 지역 탐방을 다녀온 마포 우리동네청년회의 탐방기입니다.

 
 2012년 대선은 실망스런 결과로 끝나고 말았지만,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였다. 대선 기간 동안 오고 간 이야기들은 이제까지 이야기하던 담론들과는 다른 삶의 대안들을 제시하는 것 같았다. 경제민주화, 사회적 경제, 협업, 협동조합, 지역 공동체와 같이 새롭게 제기되는 주제들은 이제 우리 사회가 또 다른 변곡점에 서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2013년, 한국사회는 서툴지만 ‘더불어 사는 삶’이라는 주제로 새롭게 고민을 시작하고 있다.

 

 협동조합은 그 새로운 물결의 가장 중심에 서 있는 흐름이다. 2012년, 협동조합법이 발의된 이후로 참으로 다양하고 많은 수의 협동조합이 생겨났다. 마포지역에서 지역활동을 고민하고 있던 우리동네 청년회에서도 회원들의 출자를 통해 협동조합 방식으로 홍대에 작은 카페를 내게 되었다. 이즈음 우리에게는 협동조합운동에 대한 이해와 운영에 관한 조언이 필요한 시기였다. 또한 지역에서 공동체를 형성하고 다양한 단체들 간에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좋은 모델이 필요하였다. 그 와중에 우리의 레이더망에 걸린 것이 바로 원주 지역이었다.
 


원주, 한국을 대표하는 협동조합의 도시. 과거 70~80년대에는 지학순 주교를 중심으로 한국 민주화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준 천주교 원주교구가 있는 곳이다. 우리가 이곳을 주목하게 된 것은 ‘민주화’라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거대한 전선운동에서 지역 밀착형 협동조합 운동으로 이어지는 흐름 때문이었다. 거대한 담론을 기반으로 한 변혁운동에 그치지 않고 대안을 모색하여 지역 내 협동사회경제를 실현하는 원주의 역사와 현재는 지금 우리가 주목해 볼만한 훌륭한 모범사례이다.


 우리동네 청년회 회원들과 협동조합에 관심이 있는 다른 청년들을 모아 원주 기행팀을 꾸렸다. 기행일정에 대해 작은 조언을 얻기 위해 연락한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에서는 예상 외로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셨다. 원주에서 활동하시는 협동조합 관계자 분들께서도 ‘원주지역의 민주화 운동과 협동조합운동’이라는 주제에 흥미를 느끼신 것 같다는 귀뜸이 있었다. 네크워크쪽에서 답사 일정과 강연을 섭외해주신 덕분에 한층 내실 있는 답사 준비가 가능하였다

 

 원주에 도착해 처음으로 찾은 곳은 원주시 중앙동에 위치한 ‘밝음 신협’이었다. 71년 창립된 밝음 신협은 원주 협동조합운동의 산실이라 불릴만한 곳이다. 이 신협건물에는 실로 다양한 협동조합관련 단체들이 빼곡하게 입주해 있었다. 특히 3층에 위치한 밝음 의원, 한의원의 경우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에서 만든 ‘의료생협’이라고 한다. 건물에 위치한 다양한 협동조합들을 살펴보니 우리가 ‘협동조합 도시’에 왔다는 것이 실감 났다

 


무위당 기념관에서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에 대한 소개를 들었다. 60년대, 지학순 주교와 장일순 선생이 닦아놓은 원주 협동조합운동의 씨앗은 2003년 8개 협동조합 관련 단체들의 모임인 ‘원주협동조합운동협의회’라는 작은 열매를 맺었다. 2009년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로 발전하였고 지금 현재는 24개의 가입단체, 3만 5천명의 회원이라는 규모로 성장하였다. 단순 수치로만 보자면 원주 인구의 1/10이 협동조합이나 관련 단체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조합원들은 네트워크내에서 아이들을 기르고, 먹거리를 구입하고, 금융서비스를 이용하고, 치료도 받는 등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


 강연을 들으면서 내내 감탄한 점은 원주 지역의 협동조합은 그 뿌리가 매우 깊고 튼튼하다는 것이다. 역사도 오래되었거니와 처음부터 지역민들의 현실적인 고충과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협동조합이 설립되었다. 그 과정에서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협동조합에 대한 교육이  또한 매우 충실하게 이루어졌다. 지역민들의 이익에 기초하고, 교육을 바탕으로 한 협동조합에 대한 높은 이해는 원주 지역에서 협동조합운동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또한 방대하게 구축되어 있는 네트워크 조직은 새로운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들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토양이다. 네트워크는 새롭게 조직되는 협동조합에 대하여 초기 출자부터 시작해서 정보교환, 원자재 공급, 안정된 소비망까지 다양한 차원에서 도움을 주고 있다. 개별 사업장으로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겠지만, 원주에서는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지역공동체를 이용하여 현실적인 어려움들을 훌륭하게 극복하고 있었다.
 

첫 일정이 끝나고 점심을 먹기 위해 이동한 곳은 원동성당 앞에 위치한 원주 가톨릭 센터였다. 68년 7월에 세워진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카톨릭 센터로 지역 주민들의 문화공간으로서 제공되었다. 또한 어려운 시기에는 지역 내 의식 있는 청년들이 모이는 운동의 거점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70~80년대 당시 당국의 탄압을 피해 원주교구로 피신 온 운동가들 대부분이 가톨릭센터에 몸을 숨기고 꾸준히 민주화 운동 관련 활동을 진행하였다고 한다. 

  가톨릭 센터에서 진행된 강연은 원주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인 지학순 주교에 대한 내용이었다. 1965년 원주 교구가 신생 교구로 창설되고, 비교적 젊은 나이의 지학순 신부가 주교자리에 오른 것은 1962년에 있었던 ‘제 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가져다 준 작은 선물이었다. 교회의 쇄신과 사회적 역할에 대한 로마교황청의 의지는 한국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새로운 교회운동의 흐름 속에서 바티칸은 지학순 주교를 원주교구장에 임명하였다.

 

 1960년대, 다른 지역에 비해 강원도는 상대적으로 매우 낙후되고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었다. 지역 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탄광노동자들과 농민들은 고리채에 허덕이고 있었다. 고리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학순 주교는 장일순 선생과 함께 신용협동조합을 설립하였다. 70년대에 들어서는 유신 체제를 정면으로 비판하는‘양심선언’을 하였고, 기도회를 통해서 각종 시국사건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였다. 지학순 주교의 활동 이 후로 종교 세력들이 민주화운동 전면에 나서게 되었고,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출범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시기 원주는 민주화 운동의 새로운 거점이자 피난처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강연을 마친 뒤에 가톨릭 센터 맞은편에 위치한 원동성당을 찾았다. 원동성당은 원주교구 주교좌성당으로 1913년 건축된 성당건물은 한국전쟁 때 전소되어 복원된 것이라고 한다. 한 가운데 높이 솟은 종탑이 인상적인 원동성당은 1976년 한국의 민주주의와 평화통일 원칙을 천명한 ‘원주선언’이 있었던 역사적인 장소이다. 이 선언문에 기초하여 ‘3.1민주구국선언’ 선언문이 쓰여 졌다. 1976년 3월 1일, 명동에서 있었던 ‘3.1 구국선언’은 70년대 민주화운동사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사건이다. 밝은 회색빛으로 단단하게 서 있는 건물을 바라보니 그 때의 역사적 사건이 연상되어 감회가 새롭다.

 

마지막 일정은 무위당 기념관에서 가진‘장일순 선생과 생명사상’에 대한 내용의 강연이었다. 장일순 선생의 작품과 유품들로 채워진 아담한 기념관 안에서 이루어진 강연에서 황도근 상지대 교수는‘기어라! 모셔라! 늘 함께하라!’라는 말로 선생의 사상을 요약하였다. 늘 겸손한 마음으로 생명을 중시하면서 지역공동체 운동에 힘써야 된다는 장일순 선생의 주장은 “한살림”조합운동에서 잘 드러난다. 80년대 중반, 기존 변혁운동에 대한 반성과 함께 대안으로서 ’생명사상‘을 제시한 장일순 선생의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좋은 화두를 던져 주었다.

 

다음 날 치악산 언저리에 모여 어제의 기행을 조별로 갈무리하였다. 강연 중에 오간 내용을 가지고 각자의 입장에서 다양한 의견들을 나누었다. 원주지역의 협동조합 운동이 성공적이었던 것은 처음부터 지역주민들의 현실에 기초를 두고 시작된 운동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지역공동체가 공고해 졌고, 이는 민주화운동시기 원주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나타났다. 모순적인 사회현실에 대한 대항은 민주화운동으로 분출되었고, 그 대안은 지역기반의 협동조합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동전의 앞뒷면처럼, 원주지역의 민주화운동과 협동조합운동은 같은 지점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에 시기마다 흐름이 매끄럽게 이어질 수 있었다.


 참가한 사람들이 새로운 사회경제체제로 협동조합을 고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원주 기행에서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된 계기가 된 듯하였다. 강연자 분들이 누차 이야기한 것처럼 협동조합운동이 우리 시대의 문제를 해결한 완벽한 답은 아니다. 다만 원주지역 사례는 대안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뿐이다. 토론에 참여한 누구나 다 원주지역의 협동조합들이 이루어 낸 네트워크에 주목하였다. 대안적인 생산과 소비를 가능하게 만드는 지역 네트워크에 대한 기대. 앞으로 각자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원주와 같은 네트워크를 어떻게 구축해 낼 것인가는 참가하였던 우리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