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한겨레가 만난 사람] 정성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한겨레가 만난 사람 정성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인터뷰/이인우 기획위원 iwlee21@hani.co.kr


» 정성헌 이사장은 백발에 검은 눈썹, 청년 같은 맑은 피부가 인상적이다. 30대 중반인 1979년부터 머리가 세기 시작했다는 그는 “고생해서가 아니라 외탁을 해서”라고 말한다. 위암 수술을 받은 뒤 오히려 건강이 더 좋아졌다는 그의 건강 비결은 육체노동 하기. “일주일에 한번 이상 서너시간만이라도 밭에서 일에 몰두한다.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이 균형을 이루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잔머리를 안 굴리게 된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내년 6월항쟁 25돌 기념행사 통합 추진
특히 대선후보 토론회 해보려고 해
삶에 대한 통찰·현장 함께 다뤄야 좋은운동

정성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평생을 ‘운동’으로 일관해온 사람이다. 80년대 민주화 이후에는 “새로운 비판과 대안으로서의 운동”을 주창하며 우리밀 살리기 운동, 생명농업 운동 등을 펼쳐왔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그가 맡은 최초의 공공기관장 자리이다. 정치와는 일정한 선을 그었던 그가 이명박 정부에서 정부 기관장이 된 건 뜻밖이지만 저간의 사정을 알고 보면 그의 성향을 반영한 인사였다. 이를테면 이명박 정부와 민주화운동 진영 간의 ‘합의된 중립지대’라고 할까. 정 이사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고려대 후배로 6·3시위를 함께 한 인연이 있다.

아무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2012년 1월로 창립 10돌이 되는 것이 계기가 되어 만났지만, 민주화운동 진영의 대표적인 ‘쓴소리꾼’인 그로부터 듣고 싶은 이야기는 좀더 넓은 범위의 화제였다. 정 이사장은 “앞으로의 10년은 우리나라와 민족의 진로를 좌우할 아주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며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을 뛰어넘어 통일된 새로운 문명국가를 지향할 때”라고 역설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내년 1월로 창립 10년이 된다. 이사장께서는 취임 1년이 되고.

“우리나라가 6월항쟁 이후 정치적 민주화를 진전시켜오고 있지만, 경제·사회적 민주화는 아직 많이 취약하다. 지금까지 기념사업회가 과거의 운동을 기념하는 데 치중했다면, 앞으로는 우리의 민주주의 토대를 튼튼히 하는 데 일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하고, 그런 쪽으로 준비를 하려 한다. 또 하나는 인간사회의 민주화를 넘어서 생명사회의 민주화까지를 아우르고 싶고 사업회가 그런 일도 했으면 좋겠다.”

 

-이명박 정부와는 사이가 좋은 편인가?

“내가 임명장 받으면서 행안부 차관한테, 이명박 대통령을 매일 욕하진 않겠다. 대신 우리가 하는 일도 좋게 받아들여라, 그랬다. 정부가 뭘 간섭하겠어? 그런 거 없고, 내년에도 그럴 거라고 본다. 정부보다는 오히려 학계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사업회에 와서 보니 빠듯한 예산으로 사업을 제대로 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 점을 교수님들이나 연구자들이 이해해줬으면 한다. 외국에서는 대학교수들이 외부 공공기관이나 사회단체가 하는 연구나 토론, 출판 사업에 최소한의 실비만 받고 참여한다고 들었다. 지식인으로서 지식의 사회환원인 셈인데, 우리는 그런 의식이 좀 부족한 거 같아 아쉽다.”



-내년 사업 계획은?

“2012년은 6월항쟁 25주년이다. 총선과 대선도 있다. 앞으로의 10년은 우리나라의 장래를 좌우하는 10년이 될 거다. 중요한 시기인 만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도 일조를 하려고 이사진도 폭을 넓혀 한나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람 다 들어와 있다. 따로 하던 기념행사도 내년엔 통합해 하려고 한다. 특히 대선 후보 토론회를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해보려 한다. 대통령 뽑는 일 아닌가? 애국심을 가지고 정파성 싹 배제한 대선후보 평가 기회를 만들어보고 싶다. 국민들에게 공정한 검증의 기회를 빨리 주는 게 맞다.”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 꼭 잘되길 바란다. 그럼 그쪽 얘기를 좀 해보자. 최근 박원순 시장이 시민운동가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했고, 많은 시민운동가들이 정치 진입을 준비하거나 희망하고 있다. 이제 시민운동도 새로운 단계에 접어드는 것 같다. 평생을 운동가로 일관해 왔는데, 새로운 세대들에게 맞는 시민운동의 방법론이나 가치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운동에는 근본적인 영역, 기본적인 영역, 그리고 현실적인 영역이 있다. 좋은 운동은 이 세가지가 잘 조화될 때이다. 자연과 인간,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이 근본적인 영역이라면, 인간 대 인간, 자본 대 노동 같은 모순 문제가 운동의 기본 영역인데, 이 둘이 구체적인 현장에서 함께 다뤄질 때 사람을 위한 운동이 된다. 그동안 우리 운동은 이런 점에 대한 인식이 모자랐다.”

 

-운동이 이념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될까?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게 꼭 여유 있는 사람이 아닌 이치와 비슷하다. 어쩌면 어려운 사람은 같은 어려운 사람이 도울 수 있는 거다. 증오나 대립에 휩싸이지 않으면서도 제도 투쟁을 뜨겁게 할 수 있는 마음은 여기서 나온다. 이를테면 운동가들이 자본가보다 공부도 더 많이 하고 인격이 더 고매해져야 그 운동이 이기는 거다. 운동은 잘하는데 사람이 틀려먹었다 그러면 이건 좋은 운동이 아니다. 50년 가까운 세월을 운동판에서 보냈는데, 그 세월의 두께 속에서 내가 느낀 바다.”

 

-시민사회운동의 정치참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 세대 선후배들도 정치 쪽으로 많이 갔다. 가서 뭔가 기여한 사람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봐서는 별로 기여한 것이 없다. 그래도 굳이 정치를 해보겠다고 한다면, 기존 정치인들하고는 다르길 바란다. 아, 저 사람들은 역시 정직하구나, 표에 휘둘리지 않고 전체를 보고 미래까지 걱정하는구나, 이런 소리를 듣기 바란다. 그냥 너 틀려먹었으니까 내가 해야겠다, 이런 거라면 곤란하다. 틀려먹었는지는 국민들이 더 잘 알아. 그러니 ‘저 사람 틀려먹었소’보다는 ‘나는 이렇게 하겠소’ 해야 하는데, 그건 심심하고 표도 안 돼서 재미없겠지?(웃음)”

 

-이런 질문도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안철수 교수는 직접 정치를 하는 게 (국민 입장에서) 좋은가, 아닌가?(인터뷰를 한 뒤인 11월30일 안 교수는 신당 창당과 강남 출마설을 일축했지만, 대선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해도 맞고 안 해도 맞겠지. 그러나 뭘 하든 이쯤에서는 자신이 직접 그 문제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는 게 도리다. 정치를 하겠으니 도와달라거나, 정치는 관심이 없으니 더이상 거명을 말아달라거나, 어느 쪽이든 딱 부러지게 해야 할 때다. 아직도 뭘 계산을 하는 중이라면 좋은 자세가 아니다.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적어도 올해 안에는 가부간에 정리를 해서 국민들이 새해를 맞도록 하는 게 도리다.”

 

-그게 정도이긴 한데, 일부에서는 안철수 교수가 굳이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느냐는 시각도 있다.

“그게 잔 계산이라는 거지. 원래 어려울 때일수록 큰 계산이 필요한 거다.”

 

-이사장께서는 과거에 종종 민주화운동 세력과 산업화 세력의 역사적 화해도 말씀하신 적이 있다. 내년 선거에서도 심판론과 함께 또 하나의 화두가 될 수 있을 것도 같다. 정치 현실만 보면 요원한 희망사항 같기도 하고.

“나는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나아가려면 빨리 두 세력의 역사적 화해가 이뤄져야 한다고 보는 사람이다. 그래서 도덕적인 면에서 우월한 민주화운동 진영한테 먼저 손을 내밀라고 촉구했던 거다. 사실 산업화라는 게 뭐냐, 가난한 사람 입장에서 보면 ‘밥 좀 먹고 살자’는 거다. 반면 민주화는 ‘말 좀 하고 살자’는 거다. 그런데 살아가는 과정에선 밥과 말이 따로가 아냐. 밥은 들어오는 거고 말은 나가는 거. 민중의 입장에서는 다 하나다. 민주화의 주체도 산업화의 주체도 결국은 다 민중이란 말씀이다. 두 세력이 서로 손가락질하며 싸워도 민중의 생활사란 입장에서 보면 두 측면이 서로 순기능을 했기에 우리나라가 이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거다. 이런 말을 20년 전부터 떠들어 왔는데 내가 유명한 사람이 아니다 보니 별로 귀담아듣는 사람이 없었다. 내년이 6월항쟁 25주년이다. 그만큼 세월도 갔다. 이제는 민주화와 산업화가 한 물줄기로 만나 통일된 새로운 문명국가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 민족이 갈 길이다.”

 

-통일된 새로운 문명국가상을 그려 본다면?

“우리 한반도의 통일은 단순히 한 민족의 재통합이나 동북아시아 평화의 틀을 넘어 인류문명의 대전환이란 문명사적 사업으로 이뤄져야 할 일이다. 통일이 우리 민족의 대업이라면 문명의 대전환은 우리 민족이 이룰 인류사의 위업이다. 적어도 우리 민족은 이런 정도의 큰 꿈을 꾸어야 한다. 두 세력의 역사적 화해도 바로 그런 큰 꿈의 출발인 셈이다.”

 

-새로운 문명이란 뭘 말하는가?

“김지하 시인이 80년대 오랜 감옥생활 끝에 생명운동을 획기적으로 제안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욕하고 그랬지만, 난 지하 형 얘기가 맞다고 봤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평화와 생명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나도 욕 많이 먹었지만, 운동 현장에서 생명과 평화라는 말을 공식적으로 쓴 건 내가 처음일 거다. 새로운 문명은 거대자본에 의한 독점과 차단의 사회구조를 공존과 순환의 구조로 바꾸자는 거다. 작년에 토종벌이 97% 죽었다. 구제역으로 소, 돼지들이 죽어나가고. 다음은 사람이 아니라고 누가 보장하나? 우리의 과제는 생명과 살림의 문명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대량생산·대량소비·폐기 중심의 거대문명에서 적정문명으로 전환하고, 그다음 작은 문명으로 이전해 가야 사람이 산다. 거대문명에서 작은 문명으로. 나는 이걸 인간의 절체절명의 과제로 본다.”

 

-정치인들은 그런 이야기를 공허하게 느끼지 않을까?

“대통령선거라는 것은 사실 큰 이야기를 해야 하는 큰판이다. 복지가 중요하지만 국회나 정부에서 일을 잘하면 되는 거고, 대통령을 뽑는 거라면 뭔가 주제부터 달라야 하는 게 아닌가? 한국 사람들이 원래 큰 사람들인데 큰 ‘썰’을 풀어야지, ‘대설’을. 그 트위터란 용어가 딱 적합하던데, 참새들의 지지배배. 작은 잡설들이 당장 표를 얻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민중의 삶이나 민족사의 활로 같은 것과는 별 상관도 없고 도움도 안 돼. 앞으로 10년, 20년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데….”

 

-미래 한국의 모습을 현실적인 그림 속에서 구체적으로 그려본다면?

“세계적인 경제강국이되 그것을 넘어선 생명의 나라! 4대 강국의 틈바구니에서 한반도 평화를 지킬 수 있는 군사력을 가지되 그것을 넘어선 평화의 나라! 물질적으로 부족하지 않되 물질주의를 넘어선 문화의 나라! 통일한반도의 새 문명국가는 생명과 평화와 문화가 살아있는 나라이다. 이걸 공허한 꿈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요즘 세대들은 선배 세대 때와 같은 시대정신이 없어 불행하다고들 하는데, 젊은 세대들에게 이런 정도의 큰 꿈을 품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디엠제트(DMZ)평화생명동산에서 대학생들에게 강연을 할 때가 있는데, 이런 얘기를 들려주면 금세 눈들이 반짝반짝해진다.”

 

새 문명은 소통과 공존의 구조로 바꾸는 것
남북 분단 3세대 가기전에 통일해야
그 시기마저 지나면…어렵지 않을까

-현실적으로 우리는 어떻게 통일을 준비하고 또 이뤄가야 할까?

“나는 통일을 내부통일-소통일-대통일의 과정으로 상정한다. 내부통일이란 예를 들어 과거 금강산 관광한다고 설악산 상인들이 피해를 보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통일을 다수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준비하는 과정이 바로 내부통일이다. 소통일은 남북이 꾸준히 교류하는 거다. 그러다가 통일의 기회가 오면, 그때 상황과 조건에 맞는 방식으로 재빨리 해치우는 거다. 어떤 틀에 묶여 거기에 집착하다 보면 정작 기회가 왔을 때 잡지 못할 수 있다. 특히 4대 강국에 둘러싸인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를 생각하면 특정한 통일방식이나 국가 형태를 고집해선 안 된다. 대통일은 전 지구촌에 흩어져 있는 우리 동포들까지 다 아우르는 한민족 지구촌 네트워크의 구축이다. 영어로 하면 ‘코리안 글로벌 네트워크’. 통일은 그렇게 얼개를 크게 짜놓고 차근차근 해나가는 거다. 다만 걱정은 시간이다. 갈라진 지가 60년이 넘었다. 3세대가 가기 전에 해야 한다. 그 시기마저 지나면 글쎄, 난 좀 어렵지 않을까 싶다.”

정성헌은
90년대부터 운동 질적전환 주장 ‘생명평화 운동’

정성헌(66)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농부 집안에서 태어나 춘천고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1964년 한일회담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의 6·3시위 때 구속된 뒤 운동가의 길로 들어섰다. <사상계>와 민족학교 등에서 일했으며, 노동운동을 통해 김지하 시인과 교유를 맺었다. 고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기도 했다. 1977년 가톨릭농민회(가농)에 들어가 본격적인 농민운동을 전개했다. 80년대 민주화투쟁기에는 가농을 기반으로 민통련, 전민련 등의 상임집행위원을 맡는 등 6월항쟁의 중심에서 활약했다. 민주화가 진척되기 시작한 90년대에는 운동의 질적 전환을 주장하며 생명평화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식량자급률의 저하 속에서 우리밀이 절멸 위기에 놓이자 ‘우리밀 살리기 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당시 강원도 김진선 지사 등의 지원 아래 인제군에 ‘한국디엠제트(DMZ)평화생명동산’(2008)을 세워 내외국인을 상대로 자신의 생명평화 사상을 전파하고 있다. 현재 남북강원도협력협회 이사장, 한국디엠제트평화생명동산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7~8년 전 위암에 걸려 수술을 받기 전까지는 약 1만㎡(3000평)의 농토에 직접 유기농사를 지었다. 부인은 초등학교 교장이며 95살 노모와 두 아들 평과 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