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2012 민주주의 배움터> 후기

스위스에 사는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스위스는 시계, 관광지 등도 유명하지만 그 중 하나가 강한 군대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 젊은이는 군대가기가 싫었습니다. 이중국적이 허용되는 나라라서 유럽의 다른 나라로 국적을 옮기면 될 터이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는 스위스에 있는 '직접 민주주의 제도'를 이용하여 군대의무화를 폐지하자는 발의를 하였습니다. 

이 사람이 Guide to Direct Democracy 를 집필한 저자 중 한 사람인 부르노 카우프만(Bruno Kaufmann)입니다.



지난 5월 23일(수)에 열린 <2012 민주주의 배움터> 세 번째 강좌에서, 위의 책을 <직접 민주주의로의 초대>라는 책으로 번역한 이정옥 대구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가 참가자들에게 스위스 직접 민주주의의 사례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정옥 교수는 스위스 직접민주주의의 요체는 국민발의권에 있다고 강조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법안발의권은 국회의원들만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발의권의 정족수인 20명을 채워야 합니다. 그런데 스위스는 국민이 어떤 한 발의사안에 대해 8개월동안 5만명 이상의 지지를 얻으면 발의권이 성립합니다. 스위스에는 이러한 발의권에 대한 투표가 3개월마다 한 번씩 있는데요. 이 투표에는 마을 사안에서부터 시작하여 주 차원, 국가 차원의 사안들이 모두 들어 있다고 합니다. 

또 하나 스위스의 직접민주주의 제도 안에는 국회의원들이 결정한 법안도 국민이 반대할 경우 비토권, 즉 역제의를 할 수 있습니다. 국민들의 역제안을 받아 국회는 다시 또 그 사안에 대해 다시 논의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지요. 가령 우리나라 국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승인이 이뤄졌는데, 국민의 상당수가 반대하는 입장이면 국민들이 반대의견을 내서 국회에서 재논의를 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정옥 교수는 흔히 직접민주주의 하면 대의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쉬운데, 스위스의 직접 민주주의 역시 대의민주주의 제도와 보완적 관계에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아직 국가 차원으로 전체가 직접 민주주의를 하고 있는 나라는 현재까지 없습니다. 

최근에 미국의 몇몇 주에서도 이러한 스위스의 직접민주주의를 채택하여 주민발의권을 인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미국에서는 부작용이 심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시민의식이 충분히 성숙되지 않은 상황에서 법안 발의권이 생기니까 개인이 아닌 이익집단들이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지요. 줄기세포 배양 문제를 합법화시켜달라는 발의를 생명공학 회사가 중심이 되어 사람들을 매수해서 발의를 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각 집집마다 한 평씩 마리화나 재배를 합법화해달라, 인디언 보호 구역이라 금지되어 있는 땅에 카지노를 만들게 해달라고 하는 등 실제로 법안 발의를 대신해주는 전문 회사가 생겨서 이에 대한 홍보와 캠페인을 담당하고 있기까지 한다고 합니다. 

스위스의 경우 무엇보다 정치광고는 법으로 철저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모든 텔레비전은 황금시간대에 직접민주주의 발의 사안에 대해 일정 시간을 할애하도록 해 놓고 있습니다. 역대 미국 대선 후보 모금액 중 최고를 자랑했던 오바마 캠프에서 선거 일주일을 남겨 두고 그 돈의 대부분을 텔레비전 광고에 쏟아부었던 미국의 상황과는 확실하게 구분이 되는 지점이기도 하지요. 돈없이는 선거를 나갈 수 없는 상황은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다를 바가 없지요. 

또한 스위스 언론은 선거와 관련하여 각 언론사 기자들이 모두 모여 선거에서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를 직접 논의하고 그 논의 내용과 결과를 언론에 그대로 여과없이 내보낸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 결정된 입장에 따라 기사를 작성한다고 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스위스는 투표기간이 무려 한 달 동안 이루어집니다.  그 한 달 동안 직장, 신문, 찻집 등 모든 공적공간에서 투표와 관련된 활발한 토론이 이뤄지기도 하지요. 이정옥 교수는 제도 이전에 이러한 자발적인 시민의식이 형성될 수 있는 조건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정옥 교수는 한국의 촛불집회를 경험했던, 지금은 고인이 된 미국의 마이클 그뤠벨 의원의 말을 빌어 한국의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첫째, 한국은 문맹률이 없다, 즉 민도가 높다. 둘째, 장기간에 걸친 촛불시위를 통해 봤을 때 한국 국민들은 공공성에 대한 관심도가 매우 높다. 셋째, 한국의 헌법은 다른 여러나라 헌법과 비교해봤을 때 민주주의 기본 원칙에 굉장히 충실하게 되어있다'는 것이지요. 

이정옥 교수는 우리도 충분히 가능한 여건을 가지고 있다. 위에서 설명한 조건들을 조성하면 우리에게도 마을에서, 지역에서, 국가에서 직접 민주주의가 활짝 필 날이 올것이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민주시민교육이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한편, 지난 5월 30일에는 ‘트위터 이후의 민주주의’라는 제목으로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와 함께 보이지 않는 개인들을 급격하게 연결해주고 정보를 전파하는 강력한 미디어로 등장한 트위터가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장덕진 교수는 선거 기간 중 트위터의 영향력이 특히 강력해지는 최근 현상을 ‘소셜 선거’라고 이름붙이고, 옛날 같으면 중요하지 않았던 평범하고 흩어져 있는 보통사람들이 트위터를 통해 수없이 만이 같이 참여해서 큰 변화를 만드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87년 이후 정치가 보수정치에 의해 독점되는 과정에서 정치의 비대칭성이 점차로 커져 자신의 뜻과 바람이 정치에서 반영되지 않게 됨에 따라 투표 자체에 무관심한 경향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었는데, 소셜선거가 등장한 이후인 2010년 이후에는 투표율이 점점 올라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장덕진 교수는 이후 대선 때도 분명 트위터가 선거결과에 큰 영향을 줄 거라고 조심스레 내다봤습니다.  

민주주의 배움터 마지막 강좌는 6월 13일에 ‘실천하는 민주주의, 비폭력 직접행동’이라는 제목으로 하승우 풀뿌리자친연구소 ‘이음’ 연구위원이 직접행동과 시민불복종운동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하승우 연구위원은 일제시기 독립운동부터 최근의 장애인 인동권을 인정받기 위한 철로에 몸을 사슬로 묶는 행동까지 여러 사례를 설명하면서 비폭력 직접행동은 국가에서 지정해서 내려주는 주권이 아니라, 존엄을 찾기 위해 스스로 자기 자신의 권리를 찾아나가는 행동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굳이 직접행동이다, 시민불복종운동이다 이름 붙이지는 않았지만 우리 역사 속에서는 서로의 일상에서 상부상조하는 전통조직들이 자생적으로 많이 있었으며 그 조직들이 중심이 되어 일제에 저항하였고, 그 결과 독재 정권 시절까지 무수한 핍박을 받아왔습니다. 하승우 연구위원은 이러한 역사 속 공동체를 엮어갔던 사례들을 살펴보면서 우리 스스로 상부상조의 힘, 연대의 힘을 키워나갈 때에만 무기력한 민주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민주주의 배움터 6강_단체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