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민주항쟁 25주년 기념’ 전국 독후감 공모대회 수상작 [대학부 최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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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민주항쟁 25주년 기념’ 전국 독후감 공모대회 수상작

 

6․10민주항쟁 25주년을 기념해 청소년들에게 한국 민주화운동 역사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개최되었던 6․10민주항쟁 25주년 기념 전국 

독후감 공모대회 수상작을 소개합니다.

 

[대학부 최우수상] 
25년 전으로 떠난 시간여행『우리는 결코 너를 빼앗길 수 없다』

김 진_숭실대학교 2학년



두 시간씩 세 번의 독서, 그렇게 여섯 시간을 꼼꼼히도 똑같은 책을 읽으면서 25년 전의 육 개월 간의 투쟁을 나는 뜬눈으로 관망하고 있었다. 유령처럼 대공분실 조사실 한켠에 서서 복부가 팽만한 채 쓰러진 박종철을 보았고, 어느 새 서울대학교 학생회관에서 무표정으로 고인의 추모식에 서 있었다. 또 책장 몇 장을 넘기면 나는 명동성당 맨 뒤에 기대어 성수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를 떨어뜨리며 김수환 추기경님의 강론을 듣기도 하였다. 뙤약볕에 목이 타는 줄도 모르고 나는 책이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87년의 6개월을 여행하다가 머리가 뜨거워져서야 비로소 책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깊은 시간여행을 하는 동안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내가 살아온 이십여 년의 세월은 이미 민주주의가 이룩된 후로, 태어났을 때부터 국민의 의사선택에 따른 선거를 치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누가 누군지도 몰랐겠지만 초등학교 때는 벽에 붙은 대통령 후보들의 벽보를 보고 누가 뽑혔으면 좋겠다느니, 누가 잘할 것 같다느니 친구들과 하루 종일 벽보에 대해 얘기하였고, 지금은 선거권이 나온 지 2년째로 집에 내 이름이 적힌 투표안내문이 날아오는 것은 아직도 조금은 신기하지만 내게 투표권이 있고, 그것을 선거에 반영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시대에 살고 있다. 나는 어쩌면 박종철 열사가, 이한열 열사가, 그리고 그들과 뜻을 함께 했던 모든 시위대가 그렇게도 갈망하던 오늘을 살고 있다. 그들이 그렇게 바라던 오늘을 나는 쉽게 살았기에,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겼기에 25년 전 폭풍전야와 같은 반년을 여행하며 나는 모든 것을 우두커니 관망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것인지도 모른다. 도저히 지금으로써는 상상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일들에 대한 물음표만이 공허한 나의 머리를 채우고 있었다. 어떻게든 일련의 사건들을 이해하고자 같은 책을 세 번씩이나 읽었나보다. 세 번을 정독하면서 나는 이 책이 내게 주는 세 개의 각기 다른 의미를 고찰하였고, 끊임없이 머릿속에 느낌표를 던지고자 했다.

가장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은 그 당시 국민들에게도 큰 충격이자 믿기 힘든 사실임과 동시에 나에게도 큰 돌덩이가 가슴에 낀 듯 무거움을 주는 사건이었다. 박종철 사건에 대한 고찰과 물음, 그 의미를 생각하는 것은 자꾸 코를 자극한다. 책 전반에 걸쳐서 ‘박종철’ 이름이 나오는데, 그의 이름이 나올 때 마다 자꾸 비리면서도 알싸한 물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고인의 나이 당시 스물한 살, 지금의 나와 비슷한 나이로 세상을 떠났기에 더욱 그의 죽음이 믿기 힘들다. 대체 정부가 그리고 경찰이 스물한 살의 청년에게 무엇을 밝혀보고자 한 것인지, 그 본질이 궁금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거짓과 변명으로 묻으면서 무엇을 얻고 싶었는지 묻고 싶었다. 그의 죽음은 분명 민주주의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민주주의는 그의 죽음이 꽃피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그가 지금 살아있다면 누군가의 아버지로써, 누군가의 멘토로써, 우리 시대 리더로써 정의를 울부짖으며 살아갔을지도 모른다는 상실감은 참으로 크다.

두 번째로 책을 읽으면서 이상하게 처음 읽었을 때 들어오지 않던 ‘최루탄’이라는 단어가 자꾸 가슴을 저몄다. 특히 무표정을 하고 방패로 울타리를 치고 있는 전경들에게 꽃을 꽂아주는 여성의 사진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 사진이 하도 인상 깊어 영상도 찾아보았다. 사실 영상 속의 전경들은 책에 수록된 사진만큼 시민들이 꽂아주는 꽃을 순순히 받지는 않았다. 전경들은 최루탄을 쏘지 말라며 안아주고, 따듯한 말을 건네며 꽃을 꽂아주는 시민에 거칠게 저항하고 있었다. 꽃 달기를 한사코 거부하며 자의든 타의든 최루탄 발사의 뜻을 완강히 했던 전경들 또한 지금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자식들에게 전하는 민주주의란 무엇일까. 민주주의를 날려버리기라도 하겠다는 듯 최루탄에 민주주의를 장착하고 사정없이 쏘던 그들에게 지금 민주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자신이 자식들에게 굉장히 부끄럽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두 번째 독서를 통해 ‘최루탄’이란 단어를 도네이며 했던 민주주의에 대한 단상을 통해 비록 나는 최루탄의 매캐한 냄새도, 파편의 위력도 모르지만 이한열 열사의 죽음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세 번째로 책을 읽다가 우연히 명동에 갈 일이 생겼다. 나는 명동거리를 걷는 것을 참 좋아했다. 물론 지금도 좋다. 그런데 책을 읽기 전과 책을 읽은 후의 좋음의 의미는 분명 다르다. 책을 읽기 전 나는 그저 명동의 활기가 좋았고, 사람 냄새가 좋았고, 풍부한 볼거리와 먹을거리로 눈과 입이 즐거워서 좋았다. 크리스마스 때는 사람에 떠밀리는 재미로 명동을 찾곤 했다. 마침 명동을 찾은 날이 현충일이어서 사람들 사이로 간간히 태극기가 보였다. 수많은 일본인, 중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이곳은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이라고 소리치듯이 펄럭이는 태극기는 나를 또 25년 전으로 떠나는 시간여행으로 이끌었다. 명동성당 주변을 빼곡히 채운 시위대들, 여기저기서 떨어지는 편지들과 성금들, 신부님의 탄식 섞인 목소리, 계성여고 학생들의 도시락 등 책의 퍼즐조각들이 내가 서있는 명동거리를 순식간에 퍼즐을 맞추듯 87년 6월을 그려내고 있었다. 명동이라는 집합소가 있었기에 87년 6월은 더욱 치열했고, 명동이라는 매개체가 있었기에 온 국민이 하나 되어 평화적으로 민주주의를 외치지 않았나 생각이 들면서 내가 서있는 명동이 새삼 고마웠다. 지금의 명동은 25년 전에 비해 훨씬 다채롭고, 다양한 국적과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책을 읽기 전의 나도 그저 이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한명이었다. 그러나 책을 읽은 후 나는 과거와 현재가 겹치는 명동 한 가운데서 외치고 싶었다. 이 곳 명동은 하나의 목적과 하나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일궈낸 민주주의의 터전이라고.

나는 비록 세 번의 시간여행을 하는 동안 실제 민주주의에 대한 뜨거운 열망과 아픔을 감히 공감할 수 없었다. 내가 상상하는 열기보다도 절망보다도 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히 시간여행을 통해 내가 사는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넝쿨째 굴러온 호박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절실히 갈망하던 내일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오늘의 민주주의는 25년 전 국민 모두가 절실히 갈망하던 결과일 것이다. 또한 오늘이라는 날은 서울대 언어학과 학생들이 바친 추모시에서의 ‘마침내 모두가 해방 춤을 추게 될 그날’일 것이다. 이렇게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갈망한 결과인 오늘날 민주주의 시대에 요즘에 “선거율 70%가 넘으면...”하며 이색 공약을 거는 것이 유행이 될 정도로 우리는 충분히 민주주의의 산고를 알지 못하고 있다. 87년 그 6개월간의 역경의 시기를 바라보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나는 이제는 투표용지 한 장이 그저 진보와 보수를 편 가름하는 한 표가 아니라 군부독재를 타도하고 대통령 직선제를 강렬히 외쳤던 결과임을 외칠 수 있다. 그리고 비로소 내가 무심코 지나다녔던 서울 곳곳에 서린 피와 땀 냄새를 맡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박종철, 이한열을 비롯한 희생자들이 절실히 갈망했던 오늘을 나는 결코 빼앗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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