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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책 저런책] 제임스 하워드 쿤슬러 <장기 비상 시대>-석유 없는 세상 그리고 우리 세대에 닥칠 여러 위기들

제임스 하워드 쿤슬러 <장기 비상 시대>
-석유 없는 세상 그리고 우리 세대에 닥칠 여러 위기들 

글/ 김락희 (한의사, koocoo87@live.co.kr)

오늘날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것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보다 다른 것에 대한 욕망이다. -루돌프 바로


<장기 비상 시대>는 ‘석유생산정점(peak oil)’ 이후 인류가 겪게 될 상황을, 풍부한 자료와 작가의 해박한 지식으로 생생하고 설득력 있게 그려내고 있다.

먼저, 현대 산업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석유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

나는 석유(石油)가 광물이 변화되서 만들어지고,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끊임없이 솟아 나오는 줄 알았다. 부끄럽다. 3억년 전부터 3000만년 전 사이에, 바다에 번성했던 식물(조류)의 퇴적층이 지각변동으로 땅속에 묻혀, 고온 고압에 의해 오랜 세월동안 만들어진 탄소와 수소의 결합체가 석유라고 한다. (석탄, 천연가스도 비슷한 과정으로 만들어지는데 탄소와 수소의 결합방식이 다르다.) 이렇게 수억 년에 걸쳐 만들어진 석유는 불과 지난 100여년 동안 전세계 매장량의 절반정도를 써버렸다. 절반 정도의 석유가 남은 이 시기를 ‘석유생산정점’이라고 한다. 석유산업의 선두국인 미국은 1970년에 생산 정점을 찍어 현재는 절반정도까지 생산량이 떨어졌다.

작가가 제시하는 자료를 보면 앞으로 30년 뒤면 석유가 고갈될 것이라 예상한다. 석유로 유지되는 현대문명의 위기는 고갈된 뒤에야 오는 것이 아니라, 생산정점을 지난 현시점부터 시작되고 있다.

앞으로 석유 값은 무섭게 올라갈 것이다. 수요에 비해 부족한 공급, 점점 커지는 석유생산 비용 때문이다. 땅만 조금 파면 펑펑 나오던 석유는 고갈되고, 이제는 북극이나 심해에서 찾고 있다. 1916년에 1통의 석유를 사용하면 28통의 석유를 생산했는데, 2004년에는 겨우 2통을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작가의 표현대로, 지난 50년간 산업사회에 살던 사람들은 하위계층이라도, ‘100명의 종을 거느린 왕족생활’을 누렸다. 계절에 상관없이, 생산지역에 상관없이 언제나 싸고 풍부한 먹을거리, 냉난방된 집, 가볍고 질긴 옷가지들, 사람과 상품을 어디든 데려다 주는 운송수단,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가공 음식들, 싸고 편리한 생활용품, 장거리 통신수단 등 100년 전 임금들도 누리지 못한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다. 다 석유 덕분이다. 공장의 기계를 돌리는 연료와 상품의 원료, 수송 연료로서, 석유는 산업사회를 만들어낸 마법의 물질이었다. 이런 석유를 앞으로는 쉽게 구하지 못한다.

그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모든 종류의 사회, 경제, 정치 시스템이 붕괴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공장식 대량생산체제의 몰락으로 지난 반세기 동안 익숙해진 수많은 상품들 없이 살아야 한다. 농업, 축산업, 목수일 등 몸 기술을 요구하는 직업의 지위가 높아질 것이다. 전력과 가스공급의 어려움으로 고층건물이 밀집한 대도시는 살기가 힘들어진다. 석유로 만든 제초제와 살충제, 천연가스로 만든 비료, 기계에 의존하던 공장식 농업은 폐기될 것이다. 거기에 기후변화위기와 겹쳐 식량생산 감소로 많은 사람이 굶어 죽을 수 있을 것이다. 소련의 석유와 비료지원이 끊긴 이후 수백만의 아사자가 나왔던 북한이 이러한 경우이리라. 이런 혼란은 나치나 스탈린식의 전체주의 정부가 나올 토양이 될 수도 있어, 인류가 지금껏 쌓아온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또한 2차대전 때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남은 석유를 얻기 위한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작가는 혹독한 장기비상시대를 거치며 바뀔 세상을 ‘세계화가 아닌 지역화로’, ‘자본 위주가 아닌 공동체 위주로’, ‘거대산업기술에서 지속가능한 전래지식으로’ 이렇게 전망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작가가 이 글을 쓴 목적은 이러한 객관적인 전망을 하기 위함이 아니다. 작가는 “내가 이 책 속에서 바라는 것이 있다면, 많은 이들이 몽유병 행진에서 깨어나 인간 문명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인간 문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현재의 물질적 풍요로움이 영원하리라는 몽유병에서 깨어나자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를 대신해 한 걸음 더 나간 질문을 해보고 싶다. 만약 석유가 고갈되지 않든지, 또는 다른 대체 에너지가 개발이 된다면(책에서는 대체에너지는 석유를 대체할 수 없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물질적 풍요는 계속될 수 있을까? 그리고 물질적 풍요가 계속된다면 인간 문명은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예수는 왜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고 했을까? 부처는 왜 탐심이 열반을 막는다고 했을까? 공자와 맹자는 왜 늘 재물과 이익을 경계했을까? 이런 질문에 아래와 같은 답은 어떨까?

우리 사회가 이처럼 미래가 불투명한 절망적인 사회로 전락해 버린 것은, 그동안의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경제성장’ 바로 그것 때문이라는 것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김종철, 『녹색당 선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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