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시

[시대와 시] 사평역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 곽재구 `사평역에서`

곽재구 시집, "沙平驛에서"

 

글 서효인 (시인, humanlov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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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청년은 시대에 물드는 리트머스다. 청년은 어리둥절한 표정이며, 대합실 구석에 서 있는 객()이다. 그곳은 아마도 사평역. 곽재구 시인에 의해 세상에 나온 사평역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다. 곽재구 시인의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사평역은 같은 이유로 세상 모든 청년이 발붙이고 있어야 할 쓸쓸하고 눈 시린 공간이 되었다. 사평역은 어디에도 없다. 아니다. 사평역은 어디에든 있다.

곽재구 시인은 1981沙平驛에서로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보통 신춘문예 마감일을 따져보면, 시인이 시 원고를 우편함에 넣은 시기는 대략 전해 11월 정도일 것이다. 1980년 겨울이었다는 말이다. 1980, 시인이 다니던 학교(전남대학교) 정문에서 시작된 공수부대의 폭력은 광주의 오월을 통째 피로 물들였다. 누군가는 죽었고, 누군가는 몸을 피했다. 아마도 시인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폭력과 거짓의 행태가 분명해지는 시간을 견디고 있었을 것이다. 시인은 청년이었다.

70~80년대 청년의 문화는 청바지와 통기타, 디스코와 불량스러운 패싸움 같은 것으로 그려진다. 보기 좋게 그려진 이러한 그림은 미디어에 의해 재생산되고, 대중에 의해 다시 소비된다. 어느덧 중년이 된 사평역의 청년들은 그 시절을 가볍게 추억한다. 이 시대 청년들에게 지나간 시간은 가벼움으로 그려지고, 소비적으로 덧칠된다. 우리에게 시간이라는 기차는 이미 지나갔다.

다시 올 기차를 기다리며 한 편의 시를 읽는다.

 

沙平驛에서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이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사평역의 청년들은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들은 다방에서 음악을 신청할 수도 있고, 디스코텍에서 몸을 흔들 수도 있었겠지만, ‘낯설음뼈아픔은 어쩌지 못했다.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려도 지엄한 현실은 시인 앞에 서 있었다. 80년대 청년 모두는 시인이 되어야만 했다. 그들은 요즈음 텔레비전에서 비춰지는 것처럼 건들거리는 자세로 시대를 살지 않았다. 청년 모두는 싸워야 했고, 좌절해야 했으며, 다시 일어서야 했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고, 그들은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질 뿐이었다. 그들은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군사정권의 서슬은 청년을 옥죄었다. 어떤 이는 어깨를 두르고 주먹에 힘을 주었다. 어떤 이는 서울로, 서울로 무작정 상경했다. 어떤 이는 다시 고향으로 가는 기차를 붙잡지 못하고 가난 속으로 가부좌를 틀었다. 어떤 이는 서로 두른 어깨를 풀어야 했다. 그곳이 어디든, 무엇이라 불리든, 시인이 그려낸 사평역과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 슬픔은 80년대 청년들을 지배하는 감정이었고, 누구도 거기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대인동 부르스

 

추석달이 밝은데

비인 거리에 너는 그림자를 띄었느냐

콜타르 먹인 전신주 아래

다리 꼬고 턱 바치고 꼭 그렇게

눈물나는 모습으로 서서 너는 다시

이 거리의 슬픔으로 가을 달맞이꽃이 되려느냐

부평에서 반월에서 구로동에서

이름도 얼굴도 때묻은 젖 큰 가시내들은

고향이라고 명절이라고 다들 밀려오는데

전세버스의 차창마다 깨꽃 같은 그리움을 피었는데

네가 설 땅이 꼭 한 곳뿐이라고

너는 그 전주 아래 슬픔의 뿌리를 내리고 굳었느냐

그 무슨 한맺힌 기다림의 씨앗이라도 뿌렸느냐

어색하게 스타킹을 신고 원피스를 입고

사과광주리 설탕 한 포 입어보지 못한

어머니의 겨울내복을 사들고

아버지의 소주와 동생의 운동화와 그림물감을 사들고

저렇듯 돌아오는 때절은

가시내의 웃음소리가 그리웁지 않느냐

추석 달빛은 찬데

대인동 골목마다 찬 달빛은 출렁이는데

굳어버린 너의 몸 위에 누가

창녀라고 낙인을 찍겠느냐

누가 한 오리 저주의 그림자를 드리우겠느냐

가까운 고향도 눈에 두고 갈 수 없어서

마음만은 언제나 고향 식구들 생각이 뜨거워서

홀로 들이켠 수면제 가슴 젖어오는데

추석 달빛은 차고 어머니는 웃고

너는 뜬 두 눈으로 달맞이꽃으로

대인동 골목마다 죽어서 살아 있는 눈물이 되었구나.

 

오월시 동인인 곽재구 시인은 동인지에 많은 시를 발표했다. 대인동 연작의 시작이 된 대인동 블루스가 대표적이다. 집장촌이며, 삶터이기도 했던 대인동에서 시인은 젊은이들의 슬픔을 본다. 그곳에 몸을 파는 젊은 여자들의 것으로 슬픔은 국한되지 않는다. “골목마다 죽어서 살아 있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부평에서 고향을 찾은 여자부터 대인동에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여자까지 모두의 눈물일 것이다. 곽재구의 沙平驛에서 겹겹이 등장하는 청년은 모두 눈물을 보이고 있다. 펑펑 쏟거나, 가슴 속에서 고이거나, 상관없이 눈물은 모두에게 있어 동일하게 짠 맛이다.

1980년대 청년에 비해 지금의 청년은 키와 몸짓이 부풀었다. 공장의 소음보다 캠퍼스의 잔디에 익숙한 몸이다. 하지만 그들 정신의 피곤함은 여전한 듯 보인다. 군사정권의 독재가 끝난 자리에는 얼마 있지 않아 자본의 독재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자본에게 몸을 기대고 편안함과 안락함을 즐기는 자, 자본에게 버림받아 한지에서 몸이 뒤틀린 자가 뒤섞인 곳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곳을 다시 사평역이라 불러도 될까.

공약을 지킬 것을 요구하며 광장에서 어깨를 두른 대학생들은 물대포에 온몸이 젖어야했다. 비싼 등록금은 청년들이 보낼 시간을 앗아가고 지낼 공간을 뺏어간다.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 좁은 고시원과 자취방을 전전해야 한다. 슬픔을 느낄 시간도 공간도 그들은 주지 않으려고 한다. 모이면 물대포를 쏘고, 홀로 있으면 스펙의 압박을 준다. 나는 너보다 나은가? 나는 세상에 적합한 사람인가?

沙平驛에서를 다시 읽는다.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줌의 톱밥처럼 한줌의 눈물을 던져야 함을 알고 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사평역이고, 사평역은 실제로는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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