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시

[시대와 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우리는 아직도 -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

글 /서효인(시인, humanlover@naver.com)
 

여기 선거로 뽑은 대표자가 있다. 여기 선거로 뽑힌 자들이 나라를 대표해 모이는 건물이 있다. 지붕이 둥그런 건물에 모여 의사결정을 하는 자들이 있다. 의사봉을 두드리는 사내가 있고 그것을 막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결정에 의해서 혹은 욕망에 의해서 우리가 사는 이 땅의 시스템은 결정된다. 시스템은 우리의 삶을 결정할 것이다.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방법은 다시 돌아오는 선거에서 한 표 던지는 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두고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어떤 측에서는 자유민주주의라고도 하고, 어떤 측에서는 대의민주주의라고도 한다. 어쨌든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음에 큰 의심을 품고 있진 않다. 이쯤에서 김지하의 대표적인 시 한 편을 읽는다.
 

타는 목마름으로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러가던 벗들의 피 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백묵으로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김지하 시인은 1941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다. 1964년 한일회담에 반대 운동을 하다 체포․투옥 되었다. 1970년 <오적>필화사건으로 반공법 위반으로 체포되기도 했다. 급기야 1974년에는 전국민주학생총연맹(민청학련)사건의 연루자로 지목되어 사형을 선고받기도 한다.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해에 인혁당 사건으로 다시 투옥된다. 그리고 1980년 12월 전두환 정권 출범 후에 다시 석방된다. 


비교적 간단하게 풀어낸 시인의 이력만 보아도 그가 현대사의 정중앙을 온몸으로 통과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오적>을 통해 사회지도층과 정권의 핵심인사를 가감 없이 비판한 그가 절실히 원했던 것은 ‘민주주의’였다. 사람이 주인이 되고, 시민이 자유로운 국가를 그는 꿈꾸었다. 시인이 시를 통해 노래한 민주주의는 그 형태는 비록 구체적 형상을 보이지는 않지만, 그는 민주주의에 대한 논문이 아닌 시를 썼다. 그리고 그가 쓴 시는 우리의 의식을 일깨우는 데 충분했다. 실제 현대사의 틈바구니에서 민초들은 가뭄 속의 쓴 풀처럼 ‘타는 목마름’에 오래 시달렸기 때문이리라.

그렇다. 이는 모두 민주주의 때문이다. 김지하 시인이 사형선고를 받은 것도 민주주의를 옥죄고 있던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때문이었다. “외마디 길고 긴 비명소리”도,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또한 민주주의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숨죽이며 흐느끼며” 써야만 했던 것이다. 백묵으로,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적듯, 소망과 기원을 담아. 민주주의여, 만세.


들녘

무엇이 여기서
무너지고 있느냐
무엇이 저렇게 소리치고 있느냐
아름다운 바람의 저 흰 물결은 밀려와
뜨거운 흙을 적시는 한탄리 들녘
무엇이 조금씩 조금씩
무너져가고 있느냐

참혹한 옛 싸움터의 꿈인 듯
햇살은 부르르 떨리고
하얗게 빛 바랜 돌무더기 위를
이윽고 몇 발의 총소리가 울려간 뒤
바람의 나직이 속살거린다
그것은
늙은 산맥이 찢어지는 소리
그것은 허물어진 옛 성터에
미친 듯이 타오르는 붉은 산딸기와
꽃들의 외침소리
그것은 그리고
시드는 힘과 새로 피어오르는 모든 힘의
기인 싸움을 알리는 쇠나팔소리
내 귓속에서
또 내 가슴속에서 울리는
피 끓는 소리

잔잔하게
저녁물살처럼 잔잔하게
붓꽃이 타오르는 빈 들녘에 서면
무엇인가 자꾸만 무너지는 소리
무엇인가 조금씩 조금씩
무너져내리는 소리.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는 1982년 창작과비평사에서 간행되었다. 1982년에 나온 시집이지만 시집 가장 나중 페이지에서 시인은 1961년부터 1975년 사이에 쓰거나 발표한 시라고 밝힌다. 군부의 쿠데타로 짓밟힌 4․19 그리고 삼엄한 군사독재와 유신헌법이 이 땅을 가물게 만들던 시기였다.

시인이 석방된 1980년대에도 군사정권은 그 간판만을 바꾼 채 계속되고 있었다. 전두환 정권 하에서 시인은 군사정부에 즉각적인 항거를 하던 이전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생명존중사상을 수용한다. 생명운동을 펼친 시인은 1991년 노태우 정권에 저항하는 대학생들의 분신자살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이는 군사정권의 연장이었던 노태우 정권을 결과적으로 비호하는 결과를 낳아 민주인사의 비난을 받게 된다.

끝내 시대는 시인의 몸에 생채기를 내고, 시인과 살을 맞대었다. 그것이 찬양이든 비난이든 상관없이 시를 쓰는 자는 시대의 심장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시인이 그토록 흐느끼며 적었던 민주주의가 완전히 도래할 때까지 시인을 둘러싼 평가와 독해는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시인이 백묵으로 쓴 민주주의를 단단한 반석 위에 올려놓는 일이리라.


여기 민주주의라 불리는 제도가 있다. 우리는 분명 지난 선거로 이번 정권을 탄생시켰으며, 여당과 야당을 구분지어 놓았다. 그들은 국민의 대표이며 행정부를 이끌고, 법을 통과시키기도 한다. 김지하 시인을 비롯한 여러 선배들의 희생으로 우리는 이러한 제도를 구축할 수 있었고, 이는 세상에 유래가 없는 발전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발전의 증거 앞에서 어떤 이는 풍자를 하고 어떤 이는 자살을 한다.

지금의 민주주의는 무슨 얼굴을 한 녀석인가. “정부와 입법부를 매수하고, 자체의 무장 공권력을 갖추고, 제도적인 사기를 저지르고, 국고와 생태계를 약탈하는 체제(나오미 울프)”는 아닌가. 절차로서 완성되었다고 우리가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 지금의 민주주의가 당신을 혹은 우리를 절망케 하고 있지는 않은가. 선거일에 표를 던지고(혹은 휴가를 가고) 뒤로 물러나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당신과 나는 이제 흐느끼지도, 분노하지도 않은 죽어버린 시민이지 않은가.

다시 쓴다. 다시 부른다. 너의 이름을. 민주주의여, 다시 오라. 그때 진짜 만세를 불러줄 테니. 그러니 지금은, 그 무엇도 아니다. 우리는 아직도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