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시

[시대와 시] 당신과 나는 모두 사람이었다 - 이시영 시집『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당신과 나는 모두 사람이었다. 
 
-이시영 시집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글 서효인 humanlover@naver.com
 

40년을 넘게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차마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이다. 이시영 시인은 1969년 등단했고,『만월』을 비롯하여 끊임없이 시를 쓰고, 시와 함께 살고, 웃고 울었다. 그리고 2012년 새 시집을 내었다. 시집의 제목은『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이다. 다소 비(非)서정적이고, 단도직입적이며, 느와르적이기도 한 제목의 시집을 꺼내본다. 



1989년 겨울

벨기에제 수갑 차고 두 팔이 오라에 묶인 채 검찰청 조사 받으러 다닐 때 그 여자 다니던 무역회사 사무실이 바로 옆에 있었네. 호송버스가 검찰청사 어둑한 구치감으로 미끄러져들어가기 전에, 바로 그 순간, 그 여자 3층이나 4층 계단 무심히 오르다가 눈길 돌려 통유리창 밖으로 호송버스 한번 쳐다보기를 나 얼마나 바랐던가! 그러나 내 생에 그런 기적은 단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선생의 시를 보다보면 어느 순간 픽, 웃게 되고 마는데, 나는 그 웃음이 참말로 좋다. 실제 만나본 이시영 시인은 어른이라 불릴만한 경륜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새까맣게 어린 후배를 대함에 있어 스스럼이 없다. 부드럽고 온화하며 때로 재치있고 예리하다. 이러한 점은 간간히 터지는 유머에서 드러나는데, 시치미를 뚝 떼고는 경찰이 시인을 사람으로 보지 않던 군사독재시절 이야기를 할 때는 이상하게 부드럽고 따뜻한데 재미있고 아프다. 이상한 감정이다.
시인은 이상한 감정을 몸속 깊이 두고서 계속해서 꺼내보는 사람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아니, 어려운 일이다. 제 속을 뒤집고 헤집고 파내는 일은 시인을 40년을 해왔다. 강건한 양심을 유지한 채, 양심을 둘러싼 여린 감정을 지휘하면서 시인이 지어낸 시의 집은 무려 열두 채. 강건함으로 기초를 올리고 부드러움으로 마감하는 시인의 손길은 강산이 네 번 변하도록 그 부지런함을 버리지 않았다. 
부지런함은 시를 쓰는 손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의 심장이나 그의 몸, 그의 영혼 모두 바지런히 시대에 응전했다. 독재에 반대하고, 그러다 경찰서에 끌려갔으며, 그리고 나와서 다시 시를 썼다. 어쩌면 당시의 시인이 겪어야 할 악한 체험의 모두를 그는 또 다시 스스럼없이 통과해 나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거리에서, 경찰서에서, 책상머리에서 혹은 아무 곳에서나, 다.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경찰은 그들을 적으로 생각하였다. 2009년 1월 20일 오전 5시 30분, 한강로 일대 5차선 도로의 교통이 전면 통제되었다. 경찰 병력 20개 중대 1600명과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대 테러 담당 경찰특공대 49명, 그리고 살수차 4대가 배치되었다 경찰은 처음부터 철거민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중략…) 불길 속에서 뛰쳐나온 농성자 3, 4명이 연기를 피해 옥상 난간에 매달려 살려달라고 외쳤으나 아무도 그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들은 결국 매트리스도 없는 차가운 길바닥 위로 떨어졌다. 이날의 투입작전은 경찰 한 명을 포함, 여섯 구의 숯처럼 까맣게 탄 시신을 망루 안에 남긴 채 끝났으나 애초에 경찰은 철거민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철거민 또한 그들을 전혀 자신의 경찰로 여기지 않았다. 

시력이 40년이 넘은 시인이 말한다.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고. 그들 역시 경찰을 그들의 경찰로 보지 않았다. 시인의 시선에 담긴 대한민국의 40년은 크게 달라진 점이 없는 것 같다. 사람들은 애달프고, 자연은 따뜻하지만, 철거민은 사람이 아니다. 위의 시는 독재자에 의한 개발이 한창이던 70년대의 묘사가 아니다. 판타지 소설에서나 등장할 법한 극악무도한 야차들의 세계가 아니다. 2008년 새해벽두, 서울의 한가운데에서 일어난 실제 뉴스다. 
1949년에 태어난 시인이 이토록 건조하고 차가우며 동시에 날카로운 시를 쓰는 일을 우리는 환영해야 하는가. 아니면 엄숙한 반성에 고갤 숙여야 하는가. 나는 그때 학교식당에 앉아 간단한 아침밥을 먹으며 다가올 논문발표를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 곧 군대에 갈 친구 녀석과 밤새 술을 마시고 쓰린 속을 부여잡고 있었다. 나는 그때 출근 후에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인터넷 사이트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때 하릴없이 지하철에 앉아 서울 어디에서 어디로 홀로 여행 중이었다. 우리는 언제든 그렇게 우리의 삶을 살았다. 40년 동안. 
지금 시대는 경찰이 철거민을 진압하면서 그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시대다. 망루에 오른 시민을 잡기 위해서 테러진압을 위한 특공대를 투입하는 시대다. 자신의 부모 형제가 죽는 모습을 지켜본 대가를 유족에게 사법적 형벌로 전가하는 시대다. 그리고 그들이 서서히 잊혀져가는 그런 시대다. 
2011년을 마무리하면서 시인은 “아름다운 작가상”을 받았다. 상금도 없고, 출판계약도 없는 상이다. 그저 후배들이 선배를 존경하여 선사하는 상이다. 그는 상을 고맙게 받았고, 시상식 날 오랫동안 술을 마셨다. 예의 무뚝뚝한 표정으로, 하지만 부드러운 말투로 농담을 던지고, 진지한 말을 하였다. 그가 스무 살 적에도 그랬겠지. 그때도 그는 시인이었고, 시대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강산은 변하지만 시대는 변하지 않고 있다. 아직도, 경찰은 우리를 사람으로 보지 않고 있다는 문장을, 애석하게도 쓰고야 만다. 
하지만 그 시대를 버텨온 것은 결국 사람이었다. 사람이 이길 것이다. 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눈시울이 붉어지고는 하는데, 나는 그 붉음이 참말로 좋다. 가령 이런 시에서. 
 

노동

유독가스가 뿜어져나오는 해발 2700미터가 넘는 인도네시아의 한 유황광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70킬로그램이 넘는 등짐을 지고 험한 산실을 오르내릴 때 입에 재갈을 문다고 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으스러지게 이를 깨물지 않기 위해서란다. 세상엔 아직도, 이렇게, 극심한 고통 속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다. 


40년은 너무나 긴 시간이었고, 다가올 40년도 그대로일지 모른다. 비극을 인식하는 겸허함으로 시인의 시를 다시 천천히 읽는다. 우리는 이렇게 극심한 고통을 입에 물고 사는 사람이었다. 이제는 그들이 노동을 하는 모두를, 노동을 하지 못하는 모두를, 그냥 당신과 나를 모두 사람으로, 그렇게 사람으로 보기를. 시집을 덮고 고개를 드니 선량한 많은 사람이 추위에 목을 움츠리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같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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