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멀리멀리

박정희의 노래들, <나의 조국>과 <새마을노래>


박정희의 노래들, <나의 조국>과 <새마을노래>


10월 유신이 벌써 31년 전의 일이지만 내 세대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일 것이다. 1973년에 중학교에 들어가서 1979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6년 동안 오직 유신헌법만 배웠고, 체력장의 던지기 종목을 공이 아니라 모조리 수류탄으로 사용했으며, 여학생에게도 사격을 권장한다는 정책에 따라 칼빈 소총으로 사격을 배웠던 세대였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노래는 <나의 조국>, <새마을 노래>, <학도호국단가>, <좋아졌네> 같은 것들이다. 그 중 앞의 두 곡은 박정희가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로 거의 <애국가>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았다. 텔레비전 방송이 시작하면 먼저 <애국가>가 나오고, <나의 조국>과 <새마을 노래>가 뒤이어 나오고 나서야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노래의 중요성을 잘 알았던 박정희  
박정희야말로 우리나라 대통령 중 노래의 중요성을 매우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을 잘 활용한 사람이었다. 그것은 아마 그가 군인이고 교사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군대와 학교는 모두 노래를 많이 쓰는 집단으로 노래의 역할이 큰 곳이다. 군가가 없는 군대, 교가나 응원가가 없는 학교를 생각할 수 없지 않은가. 군가나 교가는 그저 의식에서 불려지는 것만이 아니라, 정서적 통일감을 형성하여 집단성을 고양하며, 때로는 단순한 인식적 내용을 반복을 통해 인식시키는 데에 매우 효율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종교집단의 찬송가나 운동조직에서 부르는 데모노래 등도 노래의 이러한 기능을 잘 살리는 경우라 할 수 있다. 박정희는 유신 이후 온 국민이 함께 부르는 노래를 만들어 틈만 나면 반복적으로 들려주고 노래 부르게 함으로써, 우리 사회 전체를 마치 군대나 학교(이 역시 매우 군대처럼 일사분란하게 운영되는) 움직이고 싶어 했다고 보인다. 그가 꿈꾸는 병영국가에서 노래란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박정희가 지은 두 노래를 잘 살펴보면, 정확하게 그의 군대와 학교 체험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아주 흥미롭다. 말하자면 <나의 조국>은 전형적인 일본 군가풍이고, <새마을 노래>는 일제시대 학교창가풍인 것이다. 

 


전형적인 일제 군가풍과 학교창가풍

<새마을 노래>는 ‘도레미솔라’를 쓰는 장조 5음계의 노래이다. 그런데 서양의 장조 5음계 노래보다 ‘라’의 비중이 높다는 점 등은 우리나라와 일본의 노래들이 갖는 특징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종류의 노래는 대한제국 시절 일본 창가로부터 배워옴으로써 시작되었다. 일본 철도가의 선율로 된 <학도가> 같은 노래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러한 창가는 일제시대 내내 계몽적인 노래의 기본 틀을 형성하였다. 특히 학교에서 가르쳐지는 계몽성 짙은 창가들은, 가사가 늘‘합시다’나 ‘하자’, ‘하세’ 등의 청유형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며, 이렇게 함으로써 아주 행복하고 이상적인 상황에 도달할 수 있다는 식으로 가사가 되어 있다. 교육이 학생의 다양한 가능성을 계발해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은 늘 무언가를 주입해야 하는 대상이고, 그들에게는 공부 잘하자, 효도하자, 나라에 충성하자, 부지런히 일하자 같은 내용을 반복적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새마을 노래>가 꼭 그런 모습이다. 나는 아직도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하는 가사를 보면, 고속도로변에서 보이는 절반의 지붕만 슬레이트로 바꿨다는 가난하고 불쌍한 농촌마을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나의 조국>은 한 술 더 뜬다. 이 노래는 선율만 보자면 전형적인 단조 트로트이다. ‘레’와 ‘솔’을 뺀 ‘라시도미파’의 단조 5음계인 것이다.(혹시 이해가 잘 안된다면, <나의 조국>을 가사를 빼고 아주 느리게 불러보라. 그러면서 트로트를 부를 때처럼 손뼉을 치거나 젓가락을 두드려 보라. 영락  없는 트로트일 것이다.) 두루 아다시피, 이러한 단조 트로트의 선율은 1920년대 일본으로부터 건너와 우리나라의 일제시대 대중가요의 대표적 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흔히 ‘왜색가요’라고 지탄받는 노래들이 바로 이러한 선율로 된 노래들인 것이다. 
이러한 트로트의 선율은 단지 대중가요에만 썼던 것이 아니라, 일본 군가에 널리 쓰였다 해방 후 우리나라의 군가에서는 ‘레’와 ‘솔’의 비중을 높여 점차 7음계로 나아가면서 일본 색을 줄여나갔는데, 난데없이 대통령이 지은 노래에서 ‘정통왜색’이 떡 하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박정희 시대에 그 유명한 <동백 아가씨>의 왜색 판정이 있었음을 생각하면 이 노래의 왜색성이란 정말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나는 <동백 아가씨>가 왜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동백 아가씨>가 왜색이라는 이유로 금지된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동백 아가씨>만 왜색인 것이 아니라, <황성옛터>를 비롯하여 일제시대 이래 수많은 대중가요가 왜색인데 하필 <동백 아가씨>만 문제 삼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사건은  한일수교에 반대하는 국민여론을 의식하여 스스로 민족주의적임을 과시하려는 제스추어의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박정희가 지은 노래가 하필 왜색이라니, 웃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일본 군인의 감수성을 지닌 박정희 
그러나 이는 웃고 끝날 일만은 아니다. 결국 박정희의 감수성 밑바닥이 이 노래를 통해서 드러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 군인의 감수성을 여전히 지니고 있었던 것이고(그것이 박정희 뿐이었으랴. 그 시대 중노년 층의 대부분이 그랬을 것이다), 유신체제는 이를 현실정치로 구현한 것이었다. 
이런 시대에도 학생들은 어떻게든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어 <나의 조국>을 개사곡으로 만들어 불렀다.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로 시작하여 ‘10월 유신 없었으면 이 나라 망했겠네’라는 야유를 거쳐 ‘길이길이 보전하여 큰딸에게 물려주세’로 끝나는 노래이다. 씁쓸한 기억들이다.

글_이영미
1961년 서울 출생
한국종합예술학교 한국예술연구소 책임연구원
저서 『민족예술운동의 역사와 이론』, 『노래이야기 주머니』, 『재미있는 연극 길라잡이』 등  
 
<2003년 10월 희망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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