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멀리멀리

<통일행진곡>과 <민족해방가 2>

<통일행진곡>과 <민족해방가 2>

이영미

벌써 6월항쟁이 16년 전 일이 되었다. 넥타이부대와 함께 한 6월항쟁의 한복판에서는 무슨 노래를 불렀을까? 잘 생각이 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이런 큰 사건들은 늘 예상치 않게 터져 나오기 때문에 그 상황에 꼭 맞는 새 노래가 나올 수가 없다. 새로운 노래를 창작자들이 준비해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뿐더러, 설사 새 노래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 새 노래가 갑작스레 모인 수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불려질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6월항쟁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학생들은 그냥 <임을 위한 행진곡>이었고 시민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아침이슬>이나 <아리랑> 정도였던 것 같다. <아침이슬>이나 <아리랑> 두 곡 모두 축축 처지는 노래여서 함께 부를 만한 힘찬 행진곡 한 편이 없다는 것이 매우 아쉽게 느껴지곤 했다.

사실 그 시기에 시민과 함께 할 가능성이 있는 노래가 있긴 했다. 그러나 이 노래는 시민과 함께 불려지질 않았고, 학생들도 시민과 함께 부르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던 노래이다. 다름 아닌 <민족해방가2>이다. 혹시 “반미적 색채가 이렇게 강한 노래를 함께 부를 만한 노래라고 하다니!” 하는 생각을 하는 독자가 있으실 수 있다. ‘쪽바리 양키놈이 남북을 갈라 매판파쇼 앞세운 수탈의 나라’, ‘손잡고 광화문에 해방기 날리자’ 같은 대목을 보면, 당시 일반 시민들의 정치의식 수준에 비하자면 꽤나 과격하고, 6월항쟁의 주요 이슈와도 유리되어 있다. 하지만 이 노래는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를 주장했던 학생운동의 경향이 강해지고 있었던 때였고, 이러한 반외세 주장을 담은 노래가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이 노래는 막 상승세를 타고 많이 불리고 있었다.


통일행진곡의 노가바인 민족해방가 2

그런데 이 노래는 새로운 창작곡이 아니다. 적어도 1940,50년대 생들에게 이 노래는 전혀 낯선 노래가 아닐 것이다. 1950년대까지 교과서에도 실려 있던 <통일행진곡>이란 노래를 가사만 약간 바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개사곡이 다 그렇듯이 누가 이런 ‘노가바’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통일행진곡>은 시인 김광섭이 가사를 쓰고, 전국취주악연맹에서 작곡했다고 알려져 있다. 1950년대에 유명한 문인과 작곡자들이 <3․1절 노래>, <개천절 노래>, <제헌절 노래>, <6․25 노래> 등 이러한 계몽적인 노래, 의식의 노래를 만들 때 함께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통일행진곡>과 <민족해방가 2>를 비교해 보자. 가사의 구조가 꼭 같고 상당 부분 구절까지 일치한다. 맨 앞의 두 소절은 <민족해방가 2>에 ‘또’가 첨가되어 있고 ‘찾은’이 ‘세운’으로 바뀐 것을 제외하고는 꼭 같다. 이 정도의 변개(變改)는 구전 과정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 다음 소절은 ‘공산 오랑캐’가 맡은 악역을 ‘쪽바리 양키놈’으로 바꾸어 놓았고, 마지막 소절에서는 ‘손잡고 백두산에 태극기 날리자’의 북진통일론에서 ‘손잡고 광화문에 해방기 날리자’로 타도의 대상이 바뀌어 있다. 악곡도 거의 같다. 그러나 가사의 변화가 의도의 소산이라면, 악곡의 변화는 의도되지 않은 것이라 보인다. 원곡인 <통일행진곡>의 음악적 흐름이 훨씬 매끈하고 균형감 있는데, 그에 비해 <민족해방가 2>의 악곡은 고음부(高音部)가 제거되어 있고 불필요한 반복도 있어 영 어설프다. 쉽게 이야기해서 <통일행진곡>을 제대로 못 부른 형태의 악곡이 <민족해방가 2>의 악곡인 셈이다.

어설프게 변형된 민족해방가 2

가사가 바뀌어서까지 노래가 오래 살아남아 있는 경우, 특히 이 노래처럼 그 정치적 입장이 완전히 뒤집혀지면서까지 살아남은 경우는, 원 작품이 나름의 감동을 가진 좋은 노래로 오랜 생명력을 지닌 작품이기 때문이다. 노래가 좋기 때문에 오래 살아남아 있고, 그러다 보니 가사를 바꾸면서까지 부르고 싶은 것이다. 1980년대 <사나이 한 목숨>에서 ‘전우여 이 몸 바쳐 통일이 된다면’을 ‘학우여 이 몸 바쳐 해방이 된다면’으로 바꾸어 부르거나, <전우야 잘 자라>를 ‘전태일 동지의 흘린 피를 헛되어 하지마라’로 바꾸어 부른 경우가 다 그러하다. 민주화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정치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가사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큰 정서적 울림이 있는 잘 만들어진 작품이기 때문에 이렇게 개사가 되는 것이다. <통일행진곡>도 그러하다. 첫 구절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된 민족’이 매우 강렬하고 오랜 식민지시대의 고생살이가 절절하게 느껴진다. ‘자유의 인민들 피를 흘린다’도 꽤 평범하지만 비장하며(1950년대까지만 해도 ‘인민’이란 단어를 이렇게 썼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놀라웠다), 후반부의 고음으로 치닫는 부분도 힘차다.

정서적 울림이 큰 원작이 개사돼

그런데 개사되고 구전되는 과정에서 (의도된 것은 아니었지만) 음악적 소양이 별로 없는 사람이 개입된 듯 악곡이 개악(改惡)되었다. 무엇보다도 아쉬운 것은 이 노래의 악곡만이라도 제대로 살아 있었으면, 그리고 당시 이 노래를 즐겨 부르던 학생이 노래가 예전의 <통일행진곡>이란 것만 알고 있었더라면 6월항쟁의 시민들과 함께 부를 행진곡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그러나 그 생각도 그때의 것일 뿐, 이제 이 노래 역시 역사 속으로 묻혀가고 있다.

 

글_이영미
1961년 서울 출생

한국종합예술학교 한국예술연구소 책임연구원
저서 『민족예술운동의 역사와 이론』, 『노래이야기 주머니』, 『재미있는 연극 길라잡이』 등


<2003년 06월호 희망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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