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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 한 자락 들춰내. 그마저 아쉬워.
-고문피해자 치유모임과 재단법인 진실의 힘

 

글·김양기

 

 

저는 전남 여수시에 살고 있는 김양기입니다. 86년 2월 21일 보안대 지하실에 끌려가 간첩으로 조작되어 7년형을 선고받고 징역을 살았습니다. 43일 동안 불법 감금 되어 있었으며, 고문을 당한지 24년이 지났습니다.

2008년 광주고등법원에 재심청구를 하고 개시되기만을 기다리는 중에 고문피해자 치유 모임에 참여 해보지 않겠는가 하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그동안의 진실을 밝히려던 나의 노력이, 말로는 다 표현되지 않는 모든 억울함과 고통들이 과거사위원회의 종이 몇 장의 조사보고서로 끝나는 것인가... 끝이 보이지 않는 허탈감속으로 깊이 끌려내려갈 무렵이었습니다. 막연히 모임 장소인 서울 삼성동 봉은사로 찾아갔습니다.

고문피해자 치유 모임, 봉은사 운하당에서 첫모임을 하다.

사찰의 중후한 분위기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게 하는 것을 느끼면서 다섯 분의 고문피해자 선생님들과 네 분의 정신과 의사선생님, 두 분의 심리 전문가 선생님 그리고 내과, 가정의학과 선생님, 인권활동가들과 변호사 등 약 열 일곱 명의 인원이 봉은사내 운하당에서 만났습니다. 인사와 각자 소개를 마치고 고문피해자 선생님들이 자신의 사건을 소개하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긴장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말문이 열릴 것 같지 않았습니다.

내 사건 소개를 시작하자 어느 사이에 저는 24년 전 보안대 지하실 속에, 군복으로 갈아 입혀져 있었습니다. 24년전 일이지만 고문의 기억은 항상 생생합니다. 사냥개가 사냥감을 잡아 놓고 희롱하듯 발가벗겨놓고 농락할 때의 치욕과 굴욕감, 물고문, 전기고문을 당할 때의 두려움과 공포,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비굴하게 무너지는 자신에 대한 모멸감, 고문 수사관들에 대한 치떨리는 분노, 이러한 것들이 24년이 지난 순간에도 단 한 걸음 단 한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가슴 깊은 곳에 또아리를 틀고 있으면서 시도 때도 없이 그때 고문을 당하며 고통을 받던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도록 만듭니다.

그동안 그 고통을 어느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가 없었습니다. 친척이나 친구, 가족인 집사람이나 자식들에게도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 보안대에 끌려가서 물고문 당하고 전기고문 당했다는 이야기 정도는 들어서 알고 있었겠지만 그것이 어떤 고통인지는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말을 한다고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아무에게도 말 못했던 고통이 나만의 고통만은 아니었다
뜻밖에도 그 모임에 참석하신 고문 피해자 선생님들 역시 제가 겪고 있는 고통과 저와 동일한 상처를 간직한 채 어느 누구에게도 말을 못하고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첫모임이 끝날 즈음에는 나 혼자만 고문을 당한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깊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아무에게도 말 못했던 고통이 나만의 고통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그렇게 시작하여 모임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가슴속 한 모퉁이 한 자락을 살포시 열고 밑바닥 깊은 곳에 숨겨 두고 있었던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못하고 말할 수 없었던 일들을 2~30년 만에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조금씩 토해내게 되었습니다.

어느 분이 개 맞듯이 두들겨 맞았다고 하면 나 역시 몽둥이로 두들겨 맞아 온몸이 피멍이 들어 있었던 그때로 돌아가 있었고, 어느 분이 물고문을 당했노라고 하면 나 역시 발가벗겨져 물고문, 전기 고문을 받고 있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 끓어오르는 분노를 되씹으면서 그때의 굴욕감과 수모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임에 참가한 모두는 서로의 아픔과 고통을 자연스레 내 아픔과 고통으로 나누면서 위로하고 달래 주고 있었습니다.

설명을 잘한다고 한들 고문을 당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 수가 없는 이야기를 당신도 나와 같이 고문을 당했었군요. 그 마음 제가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며 막연한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12주가 지나 치유 모임이 끝나갈 즘에는 저에게 조그만 변화가 있었습니다. 무언지 막연하게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항상 돌덩어리처럼 굳어 있던 얼굴에 웃음도 생기고, 불빛이 번쩍이던 두 눈에도 시선이 부드러워지고, 말투도 순해졌다고 합니다.

1주일에 한번씩, 12주의 치유모임을 통해 지난날의 나의 고통과 상처가 말끔하게 치유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겨우 마음속 한 모퉁이, 한 자락 살며시 들춰 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고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만나는 고문 피해자 선생님들에게 "당신의 고통을 세상에 말 하십시오.", "당신의 억울한 사정을 말을 해보십시오."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고문치유모임을 통해 깊고 깊은 고문의 상처를 말끔히 지워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문 피해자들이 치유모임에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간절하게 바랍니다.

고문피해자 부인들을 대상으로 한 고문치유모임
고문치유모임은 현재 4기 모임을 마치고 5기를 준비중입니다.(저는 1기에 참가했습니다.) 특히 지난 4기 모임은 고문피해자의 부인들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고문이 어떤 고통인지 상상할 수 없던 가족들은 집으로 돌아온 저를 이해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수많은 밤을 악몽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고, 일상생활이 정보기관에 감시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피해의식 속에 살았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기피하고 호의를 베푸는 사람도 경찰의 앞잡이가 아닌가 의심하는 등 사람을 믿지 못하고, 세상에 대한 불신과 원망이 가득한 채로 살았습니다. 그것이 고문의 후유증이라는 것을 저 조차 치유모임 이후에 이해했으니 가족들은 그런 저를 이해하기가 더 어려웠을 것입니다.

온몸에 가시가 돋친 듯 늘 날카롭게 곤두서 있었으니 제 의도와 상관없이 저의 가시에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들이 다치지 않았을 리가 없었습니다. 아내와 자식들은 가장이 갑자기 사라진 것도 황망한데 간첩 가족이라고 친척들 조차 왕래를 끊어버리고 손가락질과 냉대를 받으며 벼랑 끝 같은 세월을 살았습니다. 그런 가족들도 고문의 피해자라는 생각에 고문피해자 부인들의 모임을 진행한 것입니다.

고문피해자 치유, 국가의 지원과 사회의 배려 필요


권위주의 정권에서 불법적으로 납치되듯이 끌려가서 부당하게 감금되고, 수많은 고문을 당한 뒤 조작된 사건의 피해자가 되어 인생을 송두리째 망처 버린 많은 고문피해자들이 지금도 여전히 공포와 두려움 안에 놓여있습니다. 고문피해자 치유는 국가적 지원과 꾸준한 사회의 배려를 바탕으로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고문은 피해자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고, 그 고통은 개인적으로 해결하거나 운명으로 받아들일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정부가 고문의 상처를 치료해 주고 피해자의 생활을 지원해야 합니다. 고문피해자들이 세상에 나와 얼마나 가혹한 고문을 당했는지, 자신의 공포와 두려움이 무엇인지 말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현 정부가 수많은 왜곡된 과거사들의 진실 규명의 기회를 막아버린 채, 과거 군사정권에서 있을법한 일들을 서슴지 않는 것을 볼 때, 공권력에 의한 고문피해자인 저로서는 역사가 거꾸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 하고, 굉장히 불안하고,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정부에 고문에 의해 조작된 사건들의 진실 규명과 고문 후유증 치료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촉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문피해자들은 국가권력이 저질러 놓은 역사적 멍에이기 때문입니다. 조작된 사건들의 진실규명과 고문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서는 민주화된 역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과거사위원회의 진상규명조사보고서와 법원의 무죄 판결문이 저를 고문을 받던 날 이전으로 돌아가게 할 수는 없습니다. 수억의 국가배상금도 단란했던 24년전 우리 가정을 되돌려 놓을 수는 없습니다. 국가가 혼신의 힘을 다해 사과를 하고, 반성을 하고, 역사를 기록한다 할 지라도 저는 고문당하던 하루 전날로 되돌아 갈 수 없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의문입니다. 이것으로 끝인가...

보다 많은 분들과 사회단체가 고문 피해자들의 고통과 아픔에 관심을 가져 주실 것을 호소 드리면서 이만 두서없는 저의 맘을 접으렵니다. 감사합니다.
 

김양기 씨는 1986년 보안대에 체포돼 고문 끝에 재일공작지도원 김철주로부터 지령을 받고 국가기밀을 수집하고 북한을 찬양.고무하였다 자백,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1991년 가석방 되었다. 2008년 11월 국방부과거사위는 "수사 당국이 갖은 구타와 가혹행위로 허위 자백을 받아냈을 개연성이 높다"고 결론냈고, 진실화해위원회도 이를 존중해 법원에 재심을 권고했다. 2009년 7월 30일 광주고법 제1형사부(부장판사 장병우)는 재심에서 "간첩이라는 혐의를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국가 배상금의 일부를 기증하여 재단법인 진실의힘 설립에 참여하였고 현재 <진실의힘> 이사로 다른 피해자들의 고문치유와 진상규명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글·김양기 재단법인 진실의힘 이사, 조직간첩사건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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