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민주주의

민주주의 역사의 궤적과 현황

 
길고도 짧은 민주주의 역사
 

민주주의의 역사는 길고도 짧다. 우선 민주주의의 역사가 길다는 것은 민주주의가 이미 기원 전 5세기경 그리스 도시국가, 특히 아테네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로부터 민주주의 역사를 계산하면 그것은 무려 2,5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역사가 당시의 시작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던 것은 아니다. 기원 전 그리스시대에 민주정(democracy)의 모습으로 그리고 로마시대에 공화정(republic) 의 모습으로 등장했던 민주주의는 이후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역사가 이렇게 길다 할지라도,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민주주의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민주주의에서 직접 기원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직접적인 기원은 17~18세기 시민혁명을 통한 근대 민주주의의 등장이다. 따라서 근대 민주주의의 역사는 길게 잡아도 3~4백년을 넘지 않는다. 물론 이 같은 민주주의 역사도 시민혁명을 통해 근대 민주주의가 일찍 시작되었던 경우에 해당된다. 오히려 다수의 국가들은 자신들이 처한 역사적 환경 속에서 뒤늦게 민주주의를 수용했는데, 그 경우 민주주의의 역사는 더욱 짧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근대 민주주의 역사는 매우 짧은 편이다.
여하튼, 현재 민주주의는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그것은 시민혁명 이후 자유민주주의의 형태로 꾸준히 발전해왔던 민주주의가 특히 20세기에 들어 자신의 경쟁 체제였던 파시즘과 국가사회주의를 극복함으로써 유일한 대안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뒤늦은 근대화 속에서 혁명적 민족주의나 군사독재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제 3세계 여러 나라들의 경우 근래에 들어 그 다수가 민주화되고 있다. 따라서 현재 민주주의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그 전성기를 맞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길고도 짧은 이 같은 민주주의의 역사와 관련, 이 글은 근대 이전, 즉 주로 고대 시기에 전개되었던 민주주의의 역사와 그 특징 그리고 근대 민주주의의 역사와 그 특징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근대 민주주의 발전 결과 현재 상태에 이른 현대 민주주의의 현황과, 민주주의 역사가 일천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발전을 이룬 한국 민주주의의 현황을 간단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고대 민주주의
 
근대 이전의 민주주의와 관련하여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은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와 로마 공화정이다. 민주주의의 가장 원형적인 형태로 등장했던 전자는 시민들의 직접적인 참여에 의한 민주정의 모습을 보여준 바 있었고, 공화정의 형태로 그 모습을 보여주었던 후자는 이를 통해 정치공동체 운영에 있어 평민 참여의 길을 열어놓았기 때문이다.우선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는 아테네의 경우 시민들은 직접 민회에 참여하여 다수결로 아테네 정치 공동체의 주요 정책들을 결정했다. 뿐만 아니라 아테네 시민들은 민회 개최를 준비하고 그 의제를 결정했던 평의회와 시민법정의 배심원으로 참여하여 그들의 영향력을 행사했다. 한편 로마의 경우 공화정 시민권을 가진 평민들 (Plebs)은 귀족에 대항하여 민회를 통해, 또한 그들을 이익을 대표하고 보호했던 호민관을 통해 공화정 운영에 참여하는 한편 이를 통해 그들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물론 이와 같은 고대 민주주의가 일정 자격을 갖춘 모든 사람들에게 시민권을 보장했던 것은 아니다. 아테네 민주주의의 경우 여자와 노예 그리고 외국인은 시민이 아니었고, 로마 공화정의 경우에도 로마가 정복한 지역의 모든 사람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 시기 정치 공동체의 운영에 있어 시민들이나 평민들에 비해 명문가문의 유력자나 귀족들의 영향도 매우 컸다. 그런 점에서 고대 민주주의는 근대 이후의 그것에 비해 제한적인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원 전 먼 고대 시기에 시민적 덕성을 갖춘 시민 또는 평민들이 정치 공동체의 운영에 참여하고 그 공적 결정에 그들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매우 주목할 만한 일이다. 물론 당시 시민들과 평민들의 영향력이 커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역할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시민들이나 평민들은 전쟁에서 대다수 병사들을 제공했고, 따라서 그들은 이 같은 역할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영향력을 증대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튼, 정치공동체의 운영이나 그 고적 결정에 있어 시민 또는 평민들이 참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 아닐 수 없었다.
 
근대 이후의 민주주의
 
고대 이후 민주주의는 오랫동안 그 모습을 감췄다. 물론 기원 후 11세기 이후 이탈리아 중북부의 도시국가들에서 공화정들이 등장 하기도 했지만, 그것을 온전한 민주주의 정체라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근대 민주주의는 17세기 청교도 혁명과 명예혁명의 영국 혁명, 18세기 프랑스대혁명과 미국 독립전쟁 등을 통해 그 모습을드러냈다. 그리고 그것은 이후 유럽을 비롯하여 점차 전 세계로 확산되어 갔다.
 
 
시민혁명을 통해 등장했던 근대 민주주의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는 시민혁명 과정에서 모든 인간은 자유, 생명, 재산 등 남에게 양도할 수 없는 천부인권을 가졌다는 사실이 선언되었다는 점이다. 즉 고대 민주주의에서처럼 시민이나 평민들의 역할에 상응한 그들의 영향력 확대가 아니라, 그 권리들이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기본적으로 향유해야 할권리로서 천명되었던 것이다. 둘째는 시민들에 의해 군주나 귀족들의 권력이 제한되거나 (입헌군주정) 전복되기(공화정) 시작했고, 이에 따른 민주주의 제도들이 등장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시민혁명을 통한 민주주의의 이 같은 등장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으로 그 자유와 권리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향유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을 주로 향유했던 세력은 자본주의사회의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등장했던 부르주아들이었다. 따라서 19세기에서는 한편으로 자본주의의 발전 속에서 이 같은 부르주아들의 지배권이 강화되고 다른 한편으로 대중들의 부상에 따라 기본권, 특히 보통선거권이 일반 대중들에게 확산되었던 시기였다. 그 결과 19세기 민주주의는 부르주아의 지배와 대중들의 정치 참여가 타협된 자유민주주의 형태로 나타났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 자본주의에 바탕을 둔 자유민주주의는 위기와 도전에 직면했다.
우선 그것은 강대국들의 제국주의적 전쟁이었던 제 1차 세계대전과 1920년대 말 발생했던대공황 위기에 직면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제 1차 대전 중 러시아에서 발생했던 사회주의혁명과 1930년대에 들어 이탈리아와 독일을 중심으로 등장했던 파시즘의 도전에도 직면했다. 그런 점에서 20세기 전반기는 자유민주주의의 위기와 도전에 처한 시기였다.
이 같은 위기는 제 2차 세계대전에서 파시즘에 대한 연합국의 승리를 통해 그리고 제 2 차 세계대전 이후 이룩된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의 발전에 의해 상당 정도 극복될 수 있었다. 그러나 위기와 도전을 극복한 민주주의는 과거 자유민주주의와는 상당히 다른 민주주의였다. 즉 선진국에서 복지국가의 형태로 나타났던 그것은 케인즈주의에 따른 국가 경제개입과 복지정책을 통해 평등을 강화시킨 민주주의, 즉 자유와 더불어 평등이 강화된 민주주의였다.
그러나 위기와 도전 극복의 이 같은 민주주의 발전이 지구상 모든 국가들에게 해당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주로 선진국에 해당되었을 뿐, 20세기에 들어 강대국들의 식민지배에서 비로소 독립했거나 근대화의 발전이 뒤늦었던 나라들의 경우에는 민주주의 기반이 매우 취약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이들 국가에서 주로 등장했던 체제는 혁명적 민족주의 또는 군부독재의 권위주의체제였다.
 
현대 민주주의의 현황
이상과 같은 발전의 궤적을 보여주었던 20세기의 민주주의는 그 4사분기 이후 또 다른 환경과 변화에 직면해 있다. 이와 관련하여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복지국가에 대한 반발과 비판 그리고 세계화의 추세 속에서 등장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이다. 그 영향은 대체적으로 국내적인 차원에서 복지정책의 축소와 사회적 양극화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그것은 현대 민주주의의 경제적 평등 기반을 매우 약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20세기의 민주주의는 그 4사분기에 들어 급속히 확산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권이 붕괴함으로써 국가사회주의 체제의 민주화가 이루어졌고, 제 3세계의 다수 나라들에서도 군부독재의 민주화가 야기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파시즘과 국가사회주의 등 대안적 체제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한 가운데 현재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20세기의 민주주의는 향후 사회 발전의 유일한 대안으로까지 언급되고 있다. 민주주의가 그 외부적 도전과 경쟁을 극복했다 할지라도, 오히려 그것은 내부 갈등에 직면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자유와 평등의 복지국가적 민주주의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영향으로 인해 그 경제적 평등이 매우 약화되고 있는 최근의 현상이 보여주듯, 현대의민주주의는 그 내부에서 자유와 평등 사이 균형을 상실함으로써 상호 갈등의 가능성을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의 이 같은 현황과 관련하여 한국 민주주의의 현황은 어떠한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한국 민주주의는 일제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 이후에야 비로소 시작될 수 있었고, 그것도 이승만 반공독재와 박정희 개발독재에 의해 상당 기간 동안 지체되었다. 그러나 독재정권에 대한 민주화운동의 저항을 통해 한국 민주주의는 그 기반을 강화할 수 있었고, 그것은 마침내 1987년 6월민주 항쟁에 따른 권위주의 체제의 민주화를가능케만들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는 적어도 절차적, 정치적 민주주의의 측면에서는 상당 정도 발전을 이룩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그 한계를 보이고 있다.
첫째는 민주화 이후에도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강력히 구축되었던 보수 세력의 영향력이 강하게 남아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서구의 민주주의와 달리, 복지국가적 경험을 갖지 못한 한국의 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영향 속에서 그 평등적 측면이 매우 결핍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그것이 짧은 기간 내에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다 할지라도, 현대 민주주의의 일반적 한계를 공유하는 한편 한국 특유의 한계 역시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이번 호로‘기획연재-민주주의의 역사’는 끝을 맺습니다.

 

 

글 정해구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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