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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호 복합지배민주주의를 향하여

12호 복합지배민주주의를 향하여


12호 복합지배민주주의를 향하여

정치실패와 협치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퇴행적인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독점된 통치를 개방된 협치로 바꾸는 정치의 대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협치는 다양한 차원에서 시도될 수 있다. 즉 정부와 의회, 집권당과 야당, 대표와 시민, 중앙과 지방 차원에서 활발한 의제공유와 정책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협치는 융합(convergence) 패러다임을 필요로 한다. 즉 아와 타를 대립적으로 구분하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수용하며 견제와 협력을 추구하는 패러다임이다. 융합을 통해서 대의민주주의와 참여민주주의는 서로를 보완하며 새로운 민주주의를 창안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오늘의 현실에서 융합은 적폐청산과 국민통합의 두 수레바퀴를 지혜롭게 굴리는 보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민주주의는 언제까지나 진행형이라는 점에서, 한국 민주주의 30년은 그 공과를 거울삼아 새로운 전환의 계곡을 건너야 할 시점이다. 

융합패러다임

  대의민주주의의 문제점에 대한 대안으로 ICT를 매개한 경쟁적 민주주의 모델이 논의되어왔으나 궁극적인 처방전이 되지는 못하였다. 대표적으로 직접민주주의 모델은 온라인에서도 여전히 물리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할 뿐더러, 실행 범위를 좁힐 경우 국민투표제 민주주의(plebiscitary democracy)와 다를 바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ICT 발전과 시민 권능의 신장을 배경으로 참여민주주의가 진일보하였으나, 여전히 대표와 이원적 경계를 형성하고 통치보다는 감시·비판 기능에 경도되어 있다. 현실적으로 대표를 배제한 민주주의 모델은 상정하기 어려우며, 그것은 책임정치의 부정으로 나타나기 십상이다. 따라서 대의민주주의의 대체재 또는 보완재의 성격을 넘어 융합재로서의 모델을 궁구할 필요가 있다. 

복합지배민주주의

   이러한 면에서 임혁백(2015)은 복합지배민주주의(heterarchial democracy) 모델을 시론적으로 제안한다. 이는 대표 대 위임의 경계를 초월한 융합 기반의 민주주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복합지배의 구조는 위계(hierarchy)와 연계(network)를 효율적으로 조합한 혼계(heterarchy)이다. 즉 대의민주주의가 공급자 중심의 위계형 모델이라면, 복합지배민주주의는 수요자를 통합한 혼계형 모델이라 할 수 있다. 복합지배민주주의는 정치적 책임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수평적 연계와 수직적 위계 원리를 배합한다. 참고로 이와 유사한 기제로 거버넌스가 확대되어왔으나, 주체 간의 권한이 균점되지 않고 숙의와 토론이 결핍되었으며 정책과정에 한정된 관 주도의 위계적 파트너십이 주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거버넌스를 질적으로 혁신하고 정치과정으로 확대해야 하는 과제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서 복합지배민주주의를 촉진할 수 있는 조건으로 사회적 측면에서 개방적 참여, 숙의, 사회자본(social capital), 시민의 권능, 협력적 경쟁시스템이 강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술적 측면에서는 유비쿼터스 ICT와 빅데이터(big data), 및 풍부한 식견을 가진 시민(fully informed citizens)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우리가 주권자

   복합지배민주주의는 개념적으로 제도적으로 완성된 민주주의가 아니다. 아직 그것은 추상적이고 논쟁적이며 동시에 미래지향적인 잠재적 모델이다. 따라서 복합지배민주주의는 창의적으로 실현해야 할 민주주의이며, 무엇보다 성숙한 시민 없이 도달할 수 없는 민주주의이다 따라서 이 전인미답의 민주주의 여정에 어떻게 나서야 할 것인지 사회정치적인 논의와 합의를 모색해야 한다. 그것이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이며 민주화 30년을 넘어 훨씬 더 가파른 전환의 계곡을 건너야 하는 21세기 민주공화국의 정언명령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게 나라냐”는 외침을 넘어 “우리가 주권자다”라는 울림으로 공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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