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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행사

고 표정두열사 24주기 추모제

고 표정두열사 24주기 추모제


○ 일 시 : 2011년 3월 6일(일) 12:00 


○ 장 소 :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 


○ 담당자 및 연락처: 김석민 사무국장


○ 열사약력


- 1963년 4월 1일 전남 신안군 암태도 출생


- 1979년 송정 중학교 졸업


- 1979년 광주 대동고 입학. 독서회 활동 5.18 당시 정학처분


- 1982년 광주 대동고 졸업


- 1983년 호남대 무역학과 입학


- 1986년 호남대 자퇴, 야학 교사로 활동


- 1987년 2월 하남공단 신흥 금속에 입사


- 1987년 3월 6일 세종로 미대사관 앞에서 내각제 개헌 반대, 장기집권 음모 분쇄. 박종철을 살려내라, 광주사태 책임지라고 외치며 분신


- 1987년 3월 8일 운명


송정리 미군부대에서 방위 생활을 하면서 미군에 대한 깊은 저항의식을 가지게 됨. 제대 후 호남대의 비민주적 학사운영 및 가정형편 때문에 자퇴.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무등교회 내 무등터 야학에서 교사 활동. 87년 3월 6일 세종로 미대사관 앞에서 분신. 8일 운명


제 26차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 인정자


동지는 80년 당시 대동고학생으로 5.18항쟁에 참여하여 정학처분을 받았다. 이후 호남대에 입학하였으나 가정환경이 어려워 학교를 자퇴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야학교사로 활동하며 운동을 지속하였다. 이후 하남공단에 있던 신흥금속에 입사해 활동하면서 미국과 군부독재가 저지른 광주항쟁의 만행을 알리는데 주력했다. 그러던 87년 3월 6일 동지는 서울 세종문화회관 근처 하적장 부근에서 캐로신을 몸에 끼얹고 불을 붙인 후 "내각제 개헌 반대" "장기집권 음모 분쇄" "박종철을 살려내라" "광주사태 책임지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주한미대사관 앞으로 달리다 쓰러졌다. 이때 행인이 발견하고 불을 끄려고 했으나 못 끄고, 교통경찰이 불을 껐다. 이후 병원으로 이송되어 의사에게 "나는 광주 사람이다. 광주호남대학을 다니다가 돈이 없어서 그만두고 하남공단에 있는 신흥금속에서 근무 중인 노동자다."라고 말하며 집 전화번호와 유서를 인근 다방에 놓아두었다고 밝혔다고 한다. 분신당시 가방 속에는 "내각제 반대" "장기집권반대"라는 쪽지와 슐츠의 방한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신문뭉치 등이 들어 있었다.


 

행사 정보

일요일 2011-03-06
지도보기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 지도에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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