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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6·10민주항쟁의 기록을 일지로 만난다!

6·10민주항쟁의 기록을 일지로 만난다!

6·10민주항쟁의 기록을 일지로 만난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6․10민주항쟁 32주년 맞아 명동성당 농성 상황일지 공개…
6․10민주항쟁의 서막이 된 명동성당의 투쟁내용 생생히 기록되어 있어

- 시민의 구호품 접수 내역, 응원 메모 등 담겨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지선)는‘6·10민주항쟁’관련 사료 중 6·10민주항쟁의 서막을 장식한 ‘명동성당 농성투쟁 상황일지’를 공개했다.

▢ 1987년 6월 10일부터 15일까지 5박 6일간의 명동성당 농성투쟁과 명동 인근 시민들(일명 넥타이 부대)의 지지 시위는 1987년 6월 10일 열린 ‘박종철군 고문치사 조작, 은폐 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약칭 6·10 국민대회)가 6·10 민주항쟁으로 진전되는 중요한 계기가 된 사건으로, 이번 공개되는 자료는 명동성당 내외부의 농성투쟁 현황, 부상자 현황, 지원물품 현황 등을 정리한 상황일지, 명동성당에 반입된 유인물, 각 대학 및 시내 상황, 시위 상황에 대한 보도 내용 정리, 시민들의 지지 발언 소개 등 74쪽으로 구성되어 있다.

 □ 뜻밖의 농성투쟁이 시작되자, 서울 명동성당 청년단체가 사제관 양아무개 신부 방에 상황실을 설치하고, 신학생 등이 가톨릭 서울대교구 용지에 작성한 상황일지는 시간, 제목(또는 송화자), 내용, 비고로 나누어 작성되어 있으며 1987년 6월 10일 오후 4시 성당 마당에서 시작된 상계동 철거민 출정식과 오후 5시 서울시내 시위대가 골목을 통해 성당으로 진입하는 내용으로 시작해 14일 밤 12시 경찰병력 완전철수라는 내용으로 마무리되었다.

□ 12일부터 상황일지는 시민, 학생의 제보와 지원 물품과 방법에 대한 내용, 명동 인근 시민의 지지 시위 참가자 수의 급속한 증가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어, 6·10국민대회가 명동성당 농성투쟁을 통해 시민항쟁으로 발전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별지에 수록된 상황실 자료를 통해서도 잘 드러나는데 시위가 끝난 15일 10시 모금된 성금이 당시 금액으로2000여 만원에 이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6월 15일 10:00 현재
성금 접수 현황
현금: 20,399,690원, 미화 48$, 일화 1,000엔
기타: 토큰 6, 회수권 6장
접수자별 분류: 단체 28백 단체, 개인 1,680명
물품 접수
단체: 45개 단체, 개인: 350명

<12일 일지 中 성금 접수 현황 등><※ 첨부 PDF 56p 참조>

□ 상황일지는 명당성당 구내에 퍼부은 최루탄 수까지 기록하고 있는데, 경찰이 난사한 최루탄과 물리적 충돌로 인해 부상자가 속출하자, 환자 치료를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내용도 상황일지의 주요한 내용을 이루고 있다. (시위가 종료된 후 최종 부상자는 별첨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부상자별 분포도까지 세세히 기록되어 있다.)

6월 15일 10:00 현재
부상자 현황
중상: 27명, 경상 224명 총 251명
부상 내용별 현황
수포 환자: 130명, 파편 부상: 5명, 찰과상: 27명
눈 부상: 5명 (그 중 1명은 실명함 임아무개-숭실대)
창상(절상): 3명, 골절상: 8명, 기타 부상: 73명(타박상, 화상, 설사, 두통 등)

<15일 일지 中 부상자 현황 기록> <※ 첨부 PDF 56p 참조>

□ 13일 새벽부터는 사제단과 시위대 대표와 협의 내용, 사제단과 시경국장과 대화 내용, 청와대의 강경한 입장, 경찰의 진입에 대응해 신부들, 가톨릭 청년들이 학생들과 함께 하겠다는 입장 등이 적혀 있으며, 혼배 미사가 진행 중이라 명동성당 출입 가능하다는 내용도 있다.

특히 눈에 띄는 “쌀 1가마, 돼지고기 30근. 김치 외 반찬 다수”의 지원 물품 등을 포함하여 시민들의 성금과 지지 내용의 계속 이어지고 있다.

<13일 일지 中 나타난 시민의 지원 내역> <※ 첨부 PDF 27p 참조>


□ 14일에 0시부터는 신부 40여 명, 수녀 200여 명이 학생들과 함께하겠다는 “민주화를 위한 철야 기도회”가 진행되었고, “바리케이드 철거 후 수녀들이 인의 장벽이 되겠다.”는 사제단의 제안을 시위대가 수용하여 바리케이드를 철거하는 내용이 적혀있다. 또한 명동성당 농성투쟁 참가들의 토론 내용과 신자들의 시위 동참 등의 내용이 적혀있고, 마지막 24:00에 경찰 병력 완전철수로 마무리 되었다. 

□ 이번 상황일지의 재미있는 내용은 명동성당 농성투쟁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발언 내용을 마지막 11쪽에 걸쳐 기록하고 있는데, 미국 뉴욕 교포, 인근 샐러리맨과 식당 주인, 여고생들의 지지문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상황 일지 中 마지막에 첨부된 시민의 메모 기록><※ 첨부 PDF 64p부터 참조>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지선 이사장은 “이번에 소개되는 ‘6·10 민주항쟁 명동성당 투쟁일지’는 민주화운동사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기록물”이라며“오늘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그 날의 뜨거운 열기가 생생히 전달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보도자료 끝. 붙임자료 있음.)

 

■붙임자료 PDF 다운로드: https://www.kdemo.or.kr/dn?src=0610_kdemo_mydong.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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