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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정보

박순덕-당시 34세

박순덕-당시 34세

박순덕(당시 34세)

1963년 2월 전북 정읍 출생
1985년 6월 김창수와 결혼, 슬하에 남매
1995년 2월 전농3동철거민 대책위 가입
1997년 7월 25일 철거반대 철탑망루 농성중 철거깡패들이 폐타이어 등으로 방화를 하고 화염병을 투척하자 질식사
를 피하기 위해 저항하던 중 불길에 휩싸여 투신, 운명
1997년 7월 25일 재개발지역인 동대문구 전농3동에서 ‘대책없는 강제철거 반대와 가수용 입주’를 요구하며 철제망루에서 한 달째 농성중이던 10명의 철거민이 방화에 의해 철탑망루가 불길에 휩싸이면서 18M 높이에서 뛰어내려 박순덕 동지가 사망하고 나머지는 온몸이 골절되고 화상을 입는 등 중상을 당하였다. 이날 오전 9시 30분경부터 재벌회사인 선경건설과 재개발조합은 용역회사인 적준토건 소속 철거깡패 300여명을 동원하여 전투경찰 600여명이 출동한 가운데 강제철거를 시작하였다. 철거깡패들은 오후가 지나면서 철탑망루 주위에 옷가지와 페타이어를 태워 유독성 연기를 뿜어내 두더지잡기라도 하듯 농성중인 철거민들의 질식을 기도하였다. 그러면서 철거깡패들은 살금살금 철탑망루에 다가가서 철거반의 화염병 투척 등에 의한 화재를 막기위해 철거민들이 1층에 설치해 놓은 방벽을 커터기로 뜯어내고서 옷가지와 페타이어들을 그 안으로 집어넣었다. 오후 6시 30분이 되자 철제망루 밑에서 검은 연기를 내뿜는 불기둥이 치솟아 순식간에 철탑망루를 뒤덮었다.

자기 스스로 죽으려고 불을 질렸다니?

그런데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집단 방화범들은 이번 방화가 철거민들이 화염병을 던져 발생했다고 뒤집어 씌우고 있다. 자기가 죽을 줄 뻔히 알면서 불을 질렀다니 어디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당시 철제망루에 있었던 부상자들과 주변의 목격자들의 진술과 정황은 점차 방화살인의 전모를 밝혀주고 있다.. ‘폐타이어를 밀어넣고 불을 지르자 매캐한 연기와 타이어 타는 냄새가 올라 왔습니다. 1층에는 취사용 LPG통도 있고 위험해서 내려가 소화기로 불을 껐습니다. 그런데 다시 갑자기 불기둥이 철탑망루 꼭대기까지 치솟아 올랐습니다. 당시 철거깡패들은 신나를 담은 것으로 보이는 프라스틱 우유통을 들고 다녔고 소주병을 들고 다니며 마셨습니다. 불이 꺼지자 폐타이어에 신나를 끼얹은 것이 분명합니다’ 1층 방벽을 뜯어 폐타이어를 밀어넣어 불을 지르고 불이 꺼지자 신나까지 끼얹은 일련의 진행과정은 이번 방화가 계획적으로 치밀하게 준비되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경찰은 사건축소와 은폐조작의 총대를 맸는가?

그러면 당시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경찰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철탑망루를 향해 3번이나 최루탄을 난사하며 강제철거에 가세하였다. 놀라운 것은 철탑망루 농성자들에 의하면 1층 철제방벽을 뜯을 때도 한차례 경찰이 목격되었다고 한다. 도둑이 제발 저리는 것인가? 경찰은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방화살인을 축소은폐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건조작까지 기도하고 있다. 박순덕 열사가 안치되어 있는 경희대병원과 전농동 방화살인 현장에 대한 출입통제를 하고 피해자인 부상철거민들을 되려 방화범으로 몰며 ‘철거민들이 화염병을 투척해 불이 났다’고 진술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삶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전농동 철거민들의 끈질긴 투쟁

전농3동은 94년 재개발 고시가 떨어졌다. 그리고 95년초 대책없는 강제철거에 맞서 투쟁을 결의하며 세입자들이 전농3동 철거민대책위원회를 발족하였다. 이어 그해 9월 대대적인 강제철거에 맞서 철거깡패 500여명에게 포위된 가운데 하루 온종일 사투를 벌인 끝에 지역을 사수하였다. 이후 철탑망루를 건립해 강력한 철거반대투쟁을 전개하면서 1995년 5월 그해 9월까지 입주할 가수용 52세대를 쟁취하였다. 이는 도시재개발법에 명시된 가수용시설을 쟁취함으로써 임대주택입주를 보장받게 되는 1차 승리였다. 그런데 선경건설과 재개발조합은 법적으로 공증가시 기한 1996년 9월의 가수용 입주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리고 97년 6월 동대문구청에 의해 8세대에게만 강제철거 계고장이 발부되었다. 이와같은 불법부당한 강제철거에 맞서 8세대는 6월 23일부터 철탑망루에 올라가 농성을 시작하였고. 6월 24일 공권력에 의해 지역이 원천봉쇄되고 주민 8명이 연행 구속되었다. 이후 단전 단수 조치로 빗물을 받아먹으면서 농성을 진행하던 중 이번 방화 살인사건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민중주거권 압살하는 김영삼 정권 퇴진해야

임기 말에 접어든 김영삼 정권은 우리 민중들에게 군사정권 보다 더 삶을 고달프게 만들고 더 악랄하게 탄압한 정권이었다. 강제철거와 단속에 맞서 싸우다 잇따라 산화한 노점상 이덕인, 양승진 철거민 신연숙, 민병일, 박순덕 동지가 말해주듯 빈민에게는 씻을 수 없는 분노와 증오를 안겨주었다.

철거민들의 목숨을 건 투쟁을 통해 노태우 군사정권 시절부터 재개발지역 세입자의 주거대책으로 가수용시설과 영구임대주택 입주가 제도화되었다. 우선 영구임대주택이 사라지고 공공임대주택으로 후퇴하였다. 이번 전농동 사건에서 나타난 것처럼 재벌 건설화사가 공증도 무시하고 가수용 건립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 7월 29일 청량1동에서는 9월 1일 임대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있는 가수용단지를 철거깡패들이 주민을 감금한 가운데 기습, 불법 철거하는 일이 벌어졌다. 재개발이 지역주민의 주거환경 개선이 아니라 재벌 건설회사의 무법천지가 되고 있다. 96년 이후만 하더라도 용인수지, 서울 산천동, 신길 2-3 개발지구, 도원동, 수원 원천 등에서 방화, 테러, 감금, 성폭력 등 살인 폭력이 난무하였으며 행정관청과 경찰서는 이를 묵인, 방조했다.


<대책위 유인물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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