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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정보

이정순-당시 39세

이정순-당시 39세

이정순(당시 39세)

1952년 3월19일 전라남도 순천 출생
1964년 2월 순천 남국민학교 졸업
1991년 5월 18일 연세대 정문앞 철교위에서 분신후 투신
이정순 동지는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순천 남국민학교를 졸업했다. 중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운 집안에서 7남매의 장녀인 그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동지는 버스안내양, 가발공장 공원 등으로 일하다 부평 작전동 한독산업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가정살림과 동생들 학비를 뒷바라지 해주었다. 그 후 결혼을 하게 되었지만 가정형편이 매우 힘들었고 계속되는 어려움속에서도 1남 3녀를 뒷바라지하며 꿋꿋이 버텨나갔다.

그러나 불행은 연이어 닥쳐왔다. 그는 최선을 다해 시댁과 자식들을 뒷바라지했지만 세상은 그런 그에게 시련만을 안겨주었다. 그는 남편과 이혼한 뒤 식당 일을 하면서도 틈틈히 학원에 나가 한식, 중식, 일식 조리사 자격증까지 땄다. 그는 평소에 공부를 하려고 무척이나 노력했는데 동지의 그런 탐구력과 생활력은 어려운 시련에서도 그를 끊임없이 공부하게 했다. 그는 평소에 노트같은데다 많은 글과 시를 썼는데 분신 뒤 그의 방에서 그런 노트가 3권이나 나왔다고 한다.

그 뒤 이정순 동지는 성당에 열심히 다녔다고 한다. 그는 독실한 신앙생활 속에서 예수의 희생정신에 대해 깊이 감화받았던 듯하며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91년 5월18일 오전 11시30분 경 강경대의 장례행렬이 지나가는 연세대 정문앞 철교에서 온몸에 신나를 뿌리고 “공안통치 종식, 노태우 퇴진”을 외치며 불덩어리가 되어 투신하였던 것이다.



<b>유 서</b>


“나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자랑스런 아들·딸들에게 이몸을 바칩니다.
하나님 아버지!
모두를 하나님 뜻대로 바치니 받아주소서.
광명과 사랑의 평화통일 이루어지소서.
백골단 해체, 군사독재 물러가시오.
서로 아끼며 살아갑시다.
모든 국민에게 부탁합니다.
분쟁은 악이다.”



<b>시</b>


내 인생의 허허 벌판에


내 인생의 허허 벌판에 홀로 웅크리고
있노니 낮에는 햇볕이 지겹도록
쬐이고 밤은 무섭도록 길고
내 영혼 무엇과 있노란 말인가
하얀백지에 무얼 그리려고


내 나라 안위를 걱정하라
이런 생각에 잠겼나이다
내 나라가 통일하면 어느 자들도
침략에 대한 핑계를 일삼지
않을 것이라는 뜻과 글을 모아 보았나이다
통일의 길을 찾아 보았나이다
작은 보석이 신기하듯이 내 나라
앞서는 나라 신기한 나라
슬기와 지혜있는 국민이 되고
힘이 있는 국민이 되어야 하나이다
이 나라는 자유의 충령님들이
지키고 일으켜 줄 것입니다
순리 따라 가리라


이 나라는 어느 곳으로 가느메뇨
혼란이 올 적에는 욕심을 부리지 말고
진리에 속하는 곳에 모이기 바라오
이 아픔이 전신에 솟구치는 분수처럼
내 어찌 이다지도 저려온단 말인가
이 나라 국민이라면
순리 따라 가리라



<b>추모글</b>


글1.

아, 언니 당신은 영원한 불꽃이었소.
그토록 붉은 장미를 좋아하더니 5월에 장미가 되었군요.
온몸과 마음을 불태워
민중의 영원한 횃불이 되어 민주화의 영원한 어머니가 되었소.
언니, 사랑하오. 당신이 바친 주님의 사랑과 민주화의 열풍은 언제나 언제까지 민주화의 봉화가 되어 영원히 영원히 타오르리라.


아. 언니, 당신은 오월에 여왕이었소.
청순하고 고결한 당신은 작은 여자였지만 태산보다 큰 사랑이었소.
모든 여성의 대변자이자, 세상의 모든 어머니였소.
지금은 슬프지만 내일은 웃으리라.
언니, 꿈속에서 하얀 장미화관을 쓴 언니모습은 아름답고 평화로웠소.
언니, 영원히 영원히 사랑하리
<이옥자 아가다 씀>


글2.

“제도 언론이 또다시 국민의 눈과 귀를 속이고 있다”

마땅히 국민의 편에서 공권력의 폭행만행을 규탄하고 근원적 재발장치에 힘써야 할 언론이 축소·왜곡보도로 고 강경대 동지에 대한 제 2의 살인을 감행하고, 민주세력에 대한 무장해제를 기도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권력에 유리한 보도는 가능한 크고 과장된 화려한 미사여구로 나열하고 독재권력에 조금이라도 불리한 보도는 왜곡·축소 보도하는 제도언론의 마술을 익히 보아왔다. 89년 5월 3일 부산 동의대에서 7명의 전경이 과잉진압과정에서 죽었을 때 별다른 신중함없이 연일 머리기사로 학생시위에 대해 공격의 화살을 퍼부었던 언론은 백골단의 쇠파이프 구타로 숨진 고 강경대 동지의 사건에 대해서는 유난한「신중함」과 사태의 조기진화라는 정부측 입장에 발맞추는 듯한 보도를 보여 국민을 분노케 했다. 특히 MBC 뉴스의 경우 강경대 동지의 쇠파이프 살인 만행후 강경대 동지의 죽음의 근원적 원인이 마치 잘못된 시위문화에 있는 양 사실을 왜곡하고, 학생도 전경도 모두 문제라는 식의 “양비론”이 국민의 노태우 폭력정권에 대한 분노를 희석화시키고 있다. 또한 18일 분신한 이정순 동지의 조국에 대한 깊은 사랑을 정신분열증으로 왜곡보도하였다. (18일 MBC 9시 뉴스) 우리는 강경대 동지, 이정순 동지의 죽음을 욕되게 하며 스스로 권력의 파수꾼을 자처하는 제도언론의 편파·왜곡의 축소보도를 강력히 규탄한다.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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