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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정보

오범근

오범근

오범근

1973년 후지카 대원전기 입사
1976년 프레스공으로 작업중 왼손 엄지를 제외한 4손가락이 잘리는 산재를 당함. 당시 40만원의 보상금을 받았
을 뿐이며 이후 수위로 근무
1988년 3월 10일 의문의 죽음을 당함
오범근 동지는 산재 이후 호봉도 인정받지 못하였으며, 야간 경비근무 중 옥상에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다 힘을 지탱하지 못하고 떨어져 골수염으로 무릎뼈를 깎는 수술을 하는 등 노동력을 상실하였으며, 산재노동자의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는 자각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부인 또한 생활비를 보태려고 대원전기에서 쓰레기를 수거하다 결핵에 걸리는 등 어려움이 겹쳤지만 항상 웃음과 자상함을 잃지 않았으며 극진한 효성으로 주위에 소문이 날 정도였다고 이웃과 동료들은 말한다.

그러던 1988년 3월7일 “사직강요, 해고 위협, 어용노조 물러가라”, “25% 임금인상, 학자금, 가족수당 쟁취하자”는 요구를 내걸고 파업농성을 벌이던 노동자들이 구사대의 잔인한 폭력으로 해산되자 동지는 10일 새벽 회사로 출근해 같이 근무하는 수위들을 만나 폭력해산의 부당함을 얘기하고 있는데 회사측의 호출을 받고, 항의라도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4층 관리자실로 올라갔다가 음독으로 병원에 옮겨졌다. 파업농성에 적극적으로 지지표명을 해온 오범근 동지는 의문의 죽음으로 이날 10시 20분경에 사망했다.

노조민주화 추진위원회에서 밝힌 오범근 동지의 자살에 대한 의문점은 다음과 같다.

1) 유서가 없다. 자살을 사전에 생각했더라면 유서를 남기기 마련이다.

2) 성실하고 꿋꿋하던 생활태도를 볼 때 자살할 만큼 의지가 약하지 않다.

3) 사망 당일도 구사대의 파업농성 파괴에 분노하면서 회사측의 호출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으면서, 다녀 온다고 하며 올라갔다고 한다. 그런 그가 왜 대책회의 중인 전무이사실에서 음독했겠는가.

4) 회사 측은 오범근동지가 평소에도 자살하려고 독극물을 갖고 다녔다고 하지만 한번 자살하려고 했던 사람은 그 시기가 지나면 독극물 등을 버리는 것이 보통이다.

5) 오범근 동지가 술에 취한 채 쓰러진 것을 병원에 옮겼으나 곧 사망했다는 경찰의 허위보고가 사망의 진상을 은폐하려는 증거이다.



3월 20일 새벽 5시 30분 오범근동지의 시신은 400여명의 전경이 겹겹이 에워싼 가운데 병원에서 고향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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