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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정보

유병진

유병진

유병진

- 1966년 충북 옥천 출생
- 1985년 옥천고 졸업
- 1985년 고려대학교 문리대 영어영문학과 입학
- 1986년 ‘문예비평회’에 가입
- 1987년 ‘문예비평회’회장 역임
- 1987년 학원민주화를 위한 공동대책위 학술부원 활동
- 1987년 대통령선거 공정선거 감시인단 활동 철야 작업 중 화재로 질식
- 1988년 3월 25일 오랜 투병 끝에 운명

동지는 ’85년 고려대학교에 입학하여 2학년이던 ’86년 문예비평회에 가입하였다. 엄혹한 사회현실은 동지를 그냥 평범하게 살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 그 질풍노도와도 같은 시기, 학내에서 매일 마다 풍기는 최루탄 냄새와 그 속에서 피 흘리며 이 땅의 민주화와 조국통일을 외치는 학우들의 모습은 동지의 의식을 흔들었고, 이후 동지는 진정 억압받는 사람들을 대변하려고 애썼으며 후배와 동료들의 고민을 나눠가지려 했다. 동지는 문예비평회에 가입하면서 각종 세미나 및 유인물 작성, 배포하는 등 열성적으로 활동했다. 동지는 언제나 환한 미소와 동지들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았는데 한 번은 후배가 등록금을 내지 못해 휴학을 하게 되자 집에서 받아온 방값을 후배에게 건네주고 자신은 동아리 방에서 지낸 적도 있었다. 이렇듯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삶을 추구했던 동지는 ’87년 군사독재정권을 끝장내기 위한 대선 투쟁 당시 공정선거 감시인단으로 4천만의 눈이 되어 철야작업을 하던 중 불의의 화재로 100여일의 투병생활 끝에 ’88년 3월 25일 운명했다.



유병진 열사는 여느 어떤 학우와 다를 바가 없었다. 술을 좋아하고 노래를 좋아하고 강의를 듣느라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그러나 한두번 풍기는 최루탄 속에서 사회구조에 대한 눈을 뜨기 시작했고, 진정 억압받는 사람들을 대변하려고 했으며 후배와 동료들의 고민을 나눠가지려 했다. 한 번은 후배가 등록금을 내지 못해 휴학을 하게되자 집에서 받아온 방값을 후배에게 건네주고 자신은 동아리방에서 자기도 했다. 이렇듯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삶을 추구했던 우리들의 벗, 우리들의 선배 유병진 열사는 공정선거 감시인단으로 4천만의 눈이 되어 그날도 철야작업을 하던 중 불의의 화재로 100여일의 투병생활 끝에 한줌의 흙으로 돌아갔다.



열사의 날적이 중 - 1985년 4월 30일


호익 대동제의 비 회원으로 동참했다.

학생들의 정치적인 사건과 두목의 부패성으로 인한 일로 치열한 분가만이 융성할 뿐이다. 터주 대감님께 고사를 지낸 후에 횃불 놀이를 마쳤다.

곧장 전경들과의 충돌. 많은 사람들의 동참과 지지속에 오늘의 투쟁은 쟁점을 찍었다. 아무런 죄없는 사람들만 때리고, 그들이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우리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일텐데. 값비싼 눈물만 흘린다.

아무 곳에서나 흘릴 수 없는 눈물이다. 오늘의 투쟁의 효과는 훗날에 알알이 되리라.

도서관에서 개폼 잠을 잤다. 이토록 오랜 잠을 청한 적은 한 번도 없건만 오늘만은 심신이 피곤하다. 차시간 때 매일 다니던 길을 걸었다. 깔려진 최루탄 냄새 때문에 눈이 시큰하다. 코가 아프다. 이것이 투쟁의 부산물이다.

학생들의 거룩한 분노는 결국 민중을 위한 길이건만 그들은 너무도 우매하기에 동조해주질 않는다. 우리는 그들에게 조금의 피해도 주질 않는다. 기성 지식인들과의 연결이 하루바삐 시급하다.

그런 날이 오겠지. 학생들의 분기가 필요 없어지게 되는 날이.



열사가 생전에 남긴 시


사 랑


누가 나를 시험하던지 간에
나는 그녀를 내 품에 포근히 안아 줄 수 있다.
누가 나를 사랑하든지 간에
나는 아는 만큼의 진실함을 보일 수 있다.
누가 나를 사랑한다고 하면은 나는 쑥스러워 할 것이지만
나에게 진실을 보여줄 계기를 만들어준 보답을 하고 싶어
참 안간됨을 보여주고 싶다.
누가 나를 사랑하든지 간에
교만하지 않고 허위와 진실이 부정되지 않는 빨간 빛 내 마음을 보여줄 수 있다.
사랑이란 것은
한 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어머니의 열매이다.
맛 있고, 달콤하고, 맵고, 짜고 …
사랑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맛과 책으로 우리들에게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추모시


고 백


유병진, 그 청년 알았던 내가 나이 스물 헛것이었네
민주정부이고 투쟁이고 다 지푸라기이고 고개 꺽은채 묵묵부답이었네
유병진 그 청년 알려준 선배조차 미워했었네
사람하나 없는 밤조차 열사 추모비를 늘 비껴다녔네


식민지 군대에서 돌아온 복학생 한 사람
짙은 안개 드리운 조치원 밤하늘 진달래터에서 흐느꼈었지
술 한잔에 북받치는 눈물 감당못해 통곡하던 그 복학생
내게 열사추모비에 다가설 용기를 주었지, 깊이
유병진 열사의 온기 느낄 수 있었지 유병진, 그 청년


어느날부터인가 정확하지 않지
병진이형 당신의 벗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였던 제삿날이었는지
학교측과 싸우며 진달래터를 복원시키던 날이었는지
열사의 열기가 화악 내 가슴 불지펴오르는 순간
혁명선배로서 병진이형은 성큼성큼 다가왔었지


여전히 병진이형은 내 삶이 짊어진 십자가이지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병진이형 기려야지
민족해방의 십자가 유병진 열사를
조국통일의 나침반 유병진 열사를

국문 92. 오평석

고려대 서창캠퍼스 내 추모비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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