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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정보

이영일-당시 28세

이영일-당시 28세

이영일(당시 28세)

1962년 강원도 홍천군 출생
1981년 속초고등학교 졸업
1984년 방위병 입대
1988년 9월 자동차 정비 기능사 2급 자격증 취득
1989년 4월 (주)통일 입사
1990년 5월 3일 오전 8시경 회사측과 경찰의 지속적인 탄압에 분노, 항의하며 온몸에 신나를 붓고 분신·투신
이영일 동지는 1962년 강원도 양양에서 3남2녀중 둘째아들로 태어났고 81년 속초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방위병 근무를 마친 뒤 자동차정비 공부를 하여 89년 4월 (주)통일에 입사했다.

평소 내성적인데다 말수가 적었던 동지는 입사 당시에는 노동조합에 적극성을 띠지 않았다가 89년 11월 조사통계부 차장과 90년 2월 노조대의원이 되면서 노동운동과 노동조합에 대한 강한 애착과 열정을 갖고 적극적으로 할동을 해왔다.

(주)통일 재단과 경찰은 끊임없이 노동조합과 노조원을 탄압해 왔는데 칠년동안 투병생활 중에 있는 이영일 동지의 노모를 형사들이 찾아가 자식이 노동운동을 하고 있으니 그만두게 하라는 등 계속 협박을 통해 고통을 주었다. 이를 안 이영일 동지는 무척 괴로와했고, 어머니와 자식 사이를 이간질까지 하면서 노조를 탄압하는 비인간적인 탄압에 분노하였다.

90년 5월3일 오전 8시경 이영일 동지는 (주)통일 1공장 식당 옥상에서 지속적이고, 악랄한 노조탄압에 분노 항거하면서 온몸에 신나를 붓고 분신과 함께 투신. 급히 창원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10시 50분경 사망하였다.

경남 도경은 5월 4일 새벽 창원병원 영안실에 6백여명의 병력을 동원해 영안실을 지키던 노동자 150여명을 연행한 뒤 시신을 탈취하여 대전 시립 화장장에서 화장하였으며 유족들은 유해를 충남 대청댐에 뿌렸다.



동지가 남긴 글


<유 서>


어머님
사는 것이 왜 이리 힘듭니까
이 세상이 사람을 힘들게 만듭니다. 못살게 만드는군요.
살아볼려고 발버둥치는 사람, 힘들게 살아야 하는 사람을 못살게끔 하는 군요. 이런 생각이 저의 절망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회가 정직하게 사람답게 살아볼려고 발버둥치는 나에게도 여지없이 찾아오더군요.

착하고 정직하게 살아볼려는 사람을 악하고 분노하게 만들더군요. 그것이 저의 잘못입니까.

잘못된 것 잘못 돌아가는 것을 잘못됐다고 나쁘다고 한 것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좀더 강직하게 살지 못한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가진 것 없어도 한 평생 인간다운 삶을 위해 사는 아버님께 무엇보다도 부끄럽습니다.

어머님 옛날이 그립습니다.

잘 못먹고 잘 못입어도 인간다운 삶의 맛이 나는 세상이 그립습니다. 잘 살고 못 살고 돈이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아닌 것 같더군요.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 같이 어우러져 사는 세상, 얼마나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느냐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살아보지 못한 것이 한이 됩니다. 그러나 후회는 없습니다.

더럽고 치사한 세상에 살았다는 것 말입니다. 이런 세상을 만든 놈들을 저주합니다.

마지막으로 어머님께 효도 한번 못한 저를 용서하세요.


영일 드림.



<동지가 남긴 기록들>


마지막 부탁드립니다.

미신은 믿지 않지만 만약 혼이 있다면 원혼이 되서라도 영원히 저놈들과 싸우겠습니다.

어머님, 형님 부탁드립니다. 위원장님 및 조합원께 부탁드립니다. 저를 화장시켜 주세요. 그리고 단 한줌의 뼈라도 사내에 뿌려주세요. 영원히 통일자본가와 싸우고 싶습니다. 통일 조합원 및 위원장님 조합을 영원히 새날이 올때까지 지켜주세요.


몇일 전에는 노무과 놈이 와서 저보고 몸조심 하라나요. 우습군요. 잘못하면 쇳덩이라도 던질 뻔 했습니다.

저녁에는 고향집에 형사가 왔다 갔다는 군요.

나만 못살게 구는줄 알았더니 부모형제까지 못살게 굴더군요.


오늘은 노동절, 별다른 일은 없지만 좋다.

어둠은 찾아오고 비는 억수같이 오지만 이 어둠과 비도 막을 촛불과 우산이 있다. 비바람이 몰아쳐서 우산이 뒤집혀져도 목적지까지는 가야 한다. 반쯤가다 되돌아오면 더욱 더 비에 젖고 만다. 개인날 또다시 가야할 것이면 비를 맞고라도 바람이 몰아쳐도 지금까지 온 것이 아까와서라도 뒤돌아보지 말고 가야한다.

어머님

전 제가 사는 동안에 가장 보람찬 시간이 있었다면 지난 1년간이었습니다. 우리 노동자들과 같이 가진 놈, 권력있는 놈들에게 마음대로 하고 싶은 말 다해가며 인간다운 생활을 해 보았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노동자의 단체인 노동조합을 사랑합니다. 좋아합니다. 남들은 나쁜 단체다 불순분자라 할지라도 그런 생각 하지 마십시오. 어머님이 사랑하시는 아들 아버님을 존경하는 아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어머님 아들이 부끄럽거나 못난이라고 생각지 마십시요. 정의로움을 외치다 잘못되어가는 것 잘되게 하려다 갑니다.


남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여 존경합니다.

이런 분들은 돈있고 권력있는 사람들보다는 없어도 마음이 부자인 사람 가난할지라도 열심히 사는 사람들 중에 더 많음을 안다. 노동조합 사람들 남을 위해 사는 인간이 됩시다.


통일이 되면 아버님 고향에 가보고 싶었는데 아버님 뼈라도 고향에 묻어드리고 싶었습니다.



동지를 생각하며


<천만 노동자의 가슴에 횃불을 질러>


여기
못 다 이룬 29년 참노동의 꿈.
작업장 옥상에서 한 점 불꽃으로
우리의 가슴에 살아있는 형제가 있습니다.
“진짜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형제들이 있어 좋다”던,
“가진 놈, 권력있는 놈들에게 마음대로 하고 싶은 말 다해가며
인간다운 생활을 해 보았다는 것이 자랑스럽다“던
그래서 노동조합을 그토록 사랑한 우리의 형제
이영일 동지여!


최루가루 자룩한 5월의 하늘
작업장에 쏟아지는 햇살을 온 몸에 받고
아, 더러운 침탈의 땅
이 한 몸 불꽃으로 이 땅의 아침을 열지않으면 안되게 하는구나.
어머니, 눈물을 거두세요.
저기 아버님의 모습이,
웃으시는 모습이 보이지 않아요.


장하구나, 영일아
정의로운 너의 몸으로,
남을 위해 너를 불사른 그 혼으로 내 비석을 세웠구나
장하다, 내 아들아
걱정말고 어서 가라
저기 물결이 보이지 않느냐
천만개의 불꽃이 물결치는 저기 평등한 세상이 보이지 않느냐.
2천명의 더러운 군화발이 너의 시신을 탈취한 새벽에 가라,
가라
천만개의 불꽃으로 살아
더러운 권력과 자본의 야합이 너를 화장시킬 때
‘우리의 요구관철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는 골리앗 크레인으로.


우리의 신성한 작업장에
우리의 삶의 터전에
더 이상 가진 자의 더러운 착취, 무력침탈이 없게 하자.
노동형제의 지시가 없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릴 수 없다.
그렇다.
더 이상 이땅에 이영일 동지가 없게 하자.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 같이 어우러져 살 수 있는 세상’
동지가 그렇게 바라던 세상이지 않는가
전.월세값이 없어 목숨을 끊는 우리의 형제들을 이제 동지의 불꽃.
천만 노동형제의 불꽃으로 살려내야 하지 않는가.


“비바람이 몰아쳐도, 우산이 뒤집혀도 목적지까지는 가야 한다. 뒤돌아보지 말고 가야 한다.”
어머니 밝게 웃으세요.
저기 보이지 않아요.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며 외치는 함성이 들리지 않아요.
마지막 남은 식수를 가진 자들의 더러운 얼굴에 던지며
일어서는 골리앗 크레인에서
백골단의 헬멧을 까부수고 달려나가는 서울에서
그리고 다시 골리앗 크레인 위의 아빠를 기다리며 외로운 편지를 읽어내리는 아이의 눈망울속에서.
울산으로, 울산으로 모여드는 4천만 형제들의 거대한 행렬이 보이지 않나요


이영일 동지여
꽃잎처럼 날리는 5월의 햇살을 받으며
고이 가소서
한 점 불꽃으로 살아나는 동지의 원혼은
오늘 천만 노동자의 가슴에 횃불을 질러
5월 광주에서
6월의 함성으로
7. 8월 대투쟁으로
이 더러운 세상 씻어버리고
노동해방의 그 날로 온 세계를 불태울 것을
천만 노동형제와 4천만 민중의 굳게 뭉친 가슴으로 맹세합니다.

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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