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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정보

장재완

장재완

장재완

- 1965년 7월 17일 경남 진양 출생
- 1980년 2월 부산 대성중 졸업
- 1983년 2월 부산 동인고 졸업
- 1983년 3월 부산대 사회과학대 사회복지학과 입학
- 1985년 12월 3학년 마친 후 휴학
- 1986년 1월 19일 방위병 입대
- 1987년 3월 23일 귀가 중 버스에서 중요문건이 든 가방 분실 계속 가방을 찾았으나 찾지 못하였고(이후 24일 보안대로 넘어간 것이 확인됨)
- 1987년 3월 27일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고 자결
- 1987년 3월 30일 부산대 총학생회 우편함에서 '이제 가야 할 때가 왔습니다. 적들의 야수같은 손길이 저를 찾고 있습니다…'라는 유서가 발견 됨.
- 제 100차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 인정자

동지는 부산대학교에 입학해 민족해방과 조국통일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활동했다. 3학년을 마친 후 휴학을 하고 방위병으로 근무하던 중에도 동지의 운동에 대한 신념은 끊이지 않았고 조직과 동지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운동에 복무했다. 그러던 중 동지의 실수로 민족민주운동의 중요 문건과 책자가 든 가방이 보안대에 넘겨진 사실을 알고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을 동지들과 조직을 자신의 목숨을 끊음으로써 막을 결심을 했다. 동지는 ‘본인의 중대한 과오로 인해 조직을 보위 코저, 나의 육체적 생명을 단절합니다. 우리의 혁명과 투쟁이 너무나 순결하고 숭고한 것이기에 나의 희생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나의 생명이 다할지라도 혁명을 향한 민중들의 투쟁은 더욱더 가열 차게 격렬해질 것입니다… 이제 저는 가야할 때가 왔습니다. 적들의 야수 같은 손길이 나를 찾고 있습니다. 나의 죽음이 우리 혁명과 조국통일을 조금이라도 앞당기는 계기가 된다면 조금이나마 그 의미를 찾을 수 있겠지요.’ 라는 내용의 유서를 부산대 총학생회로 보내고 자결하여 ’87년 3월 27일 야산에서 등산객에 의해 주검으로 발견됐다.


방위병으로 근무중 민족민주운동의 중요 문건과 책자가 든 가방이 보안대에 넘겨진 사실을 알고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을 동지들과 조직을 자신의 목숨을 끊음으로써 막을 결심을 하였다. “... 본인의 중대한 과오로 인해 조직을 보위코저, 나의 육체적 생명을 단절합니다. 우리의 혁명과 투쟁이 너무나 순결하고 숭고한 것이기에 나의 희생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나의 생명이 다할지라도 혁명을 향한 민중들의 투쟁은 더욱더 가열차게 격렬해질 것입니다...”는 내용의 유서를 부산대 총학생회로 보내고 자결하여 87년 3월27일 야산에서 등산객에 의해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동지를 생각하며 혁명과 투쟁이 너무도 숭고하고 순결한 것이기에, 스스로의 죽음을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셨던, 순진하기만 했던 한 선배님을 불러봅니다. 이 사회, 이 대학, 이 나라의 군대를 당신의 것으로 하시기에는 너무도 순진하셨던 선배님. 그렇습니다. 선배님은 우리보다는 개인을 실천보다는 말을, 노력보다는 순간의 안락함을 앞세우는 지금의 세상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순진하다못해 어리숙하기까지 여겨지는 청년이셨습니다. 그런 우리들의 선배, 장재완 열사를 불러봅니다. 당신이 가신 지 5년, 지난 5년의 시간은 세상의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을 버림으로써,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다하려는 결심을 하기까지만큼이나, 힘들고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나라의 민중이 나아가야 할 길이 너무도 분명하기에 언제나 치열하고 진지함이 넘쳤던 투쟁의 역사였습니다. 우리 모두, 그리고 이 사회 전체에 선배님의 순결하고 숭엄한 투쟁의 의지, 믿음과 사랑의 실천을 고루고루 나누어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로 물들어가는 나를, 대학을, 그리고 이 사회를 바꾸어내고, 선배님의 삶과 죽음이 너무도 당연하고 누구나 따라 배워야하는 사회를 만들고자 합니다. 지금도 현실은 차갑지만, 이제 우리는, 이학관 큰 바위 어느틈에선가 언땅을 뚫고 솟아오를 봄의 새기운처럼 단단한 의지와, 민중을 사랑하는 열정으로 반드시 녹여내겠습니다. 이제 저희들과 함께 억압도 착취도 없고, 자유로운 개성이 봄날 진달래처럼 흐드러지는 민중의 나라로 가십시다. <제 5주기 추모제 및 계승대회 자료집 中> 유 서 또다시 계절의 봄은 왔건만,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이땅의 민중들에겐 진정한 해방의 그날은 오지 않았습니다. 한반도 민중을 압살하는 침략자 미제국주의자와 미제의 괴뢰인 전두환 깡패집단은 민족해방과 조국통일을 갈망하면서 일어선 민중들의 가열찬 투쟁들을 온갖 잔혹한 고문과 살인적 폭력으로 억누르고 있습니다. 동지들! 저는 부산대학교 사회복지학과 83학번으로 86년1월 방위병으로 입소하여 군복무를 하던 중 본인의 중대한 과오로 인해, 조직을 보위코저 나의 육체적 생명을 단절합니다. 우리의 혁명과 투쟁이 너무나 순결하고 숭고한 것이기에 나의 희생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나의 생명이 다할지라도 혁명을 향한 민중들의 투쟁은 더욱더 가열차고 견결해질 것입니다. 애국청년 학생들이여! 이제 우리는 민족해방과 조국통일의 위대한 과업을 달성코자 강고한 지도 중앙의 기치아래 결집하여 자신의 온갖 정열과 투쟁을 다해야 할 때입니다. 동지들! 이제 저는 가야할 때가 왔습니다. 적들의 야수같은 손길이 나를 찾고 있습니다. 나의 죽음이 우리 혁명과 조국통일을 조금이라도 앞당기는 계기가 된다면 조금이나마 그 의미를 찾을 수 있겠지요. 동지들의 미제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과 우리 조국, 한반도 통일을 항햔 가열찬 투쟁을 기대하면서. 1987년 3월 27일. 민주학우가


화장(부산대학교 내 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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