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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정보

정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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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9년 서울 중앙고등학교 졸업
- 1970년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입학
-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 1심, 2심에서 무기징역 선고
- 1975년 안양교도소에서 특사로 출소
- 1980년 김대중내란음모사건 연루로 안기부에서 50일간 구금
- 1983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 고문
- 1980년대 한국공해문제연구소에서 최열님과 함께 활동
- 1986년 민통련 지도위원
- 1990년 민중당 대변인
- 1992년-1995년 말지 편집국장
- 1998년 11월 7일 지병으로 한양대병원에서 별세

선생님은 서울대학교 정외과 재학 시절에 유신독재의 모순에 눈뜨기 시작하여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는 데 일조할 결심을 하고 1974년 민청학련사건의 서울대 조직책을 역임하여 유신독재의 조종을 알리는데 일익을 담당하였습니다. 당시 민청학련 선언문을 작성하였다고들 합니다. 1심과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유신독재의 참담한 현실을 고발하였습니다.


이후 1980년에는 신군부가 5.18쿠데타를 자행하면서 남산 안기부에 연행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으며 50일간 불법구금되었다가 석방되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도시산업선교활동으로 유명하였던 천영초와 결혼하였고 1980년대 최열씨와 함께 한국공해문제연구소를 창립하여 온산공단 등의 오염실태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한국 환경운동을 태동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전두환군사독재의 서슬푸른 시절에 김근태씨의 민청련 고문 및 민통련 지도위원을 맡아 반독재의 선봉에 서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민중당 대변인을 역임하면서 현실정치에 참여하였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1990년대에는 월간 말지 편집국장을 역임하면서 진보언론의 초석을 다지면서 많은 기사를 작성하여 민주화의 완성에 기여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1998년 11월 7일에 한양대병원에서 입원치료중 지병으로 타계하셨습니다.

벽제 시립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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