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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정보

진철원-당시 20세

진철원-당시 20세

진철원(당시 20세)

1976년 1월 4일 출생
1994년 2월 대원고등학교 졸업
1995년 3월 경원대학교 도시계획학과 입학, 민족사 연구회 ‘한얼’ 활동 시작
1995년 12월 장현구 선배의 사인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투쟁이 전개되면서 그동안 소홀했던 자신의 활동을 반성하며 본격적으로 활동
1996년 4월 6일 밤 9시30분 경 총여학생회실에서 분신, 운명


경원대는 91년, 최원영 재단이 새롭게 들어서면서 고질적인 사학비리와 95년 108명 제적 등 무리한 학생 징계, 고발로 사회적 물의를 빚어왔는데, 95년 12월4일 분신 운명한 고 장현구동지의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을 위한 투쟁이 4달 남짓한 상황에서 벌어진 연속적인 분신운명으로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었다. 당시 경원대는 학교당국에 대한 고 장현구 동지 명예회복 요구과정에서 총학생회장, 부학생회장을 비롯한 6명이 제적, 8명이 무기정학, 2명이 유기정학을 당하는 한편 7명의 학우들에 대한 고발 및 공권력 투입으로 95년 총학생회장 백승규(무역90)학우가 구속을 당하고 나머지 6명의 학우들은 수배상태에 놓여있었다. 여러가지 객관적 정황을 종합 판단했을 때 진철원 동지의 죽음은 이러한 학내상황과 맞물려 있으며 고교선배(고 장현구 동지)의 분신사망과 동아리, 학과의 선배동지들이 제적, 고발 등으로 힘들어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 고통을 참지 못하고 최원영 재단의 살인적 학원운영에 항거, 분신운명한 것이다.



동지가 남긴 글 - 유서


심장이 펄펄 끓어 오를 때,

양심이 끔틀거릴 때,

우리는 움직여야 한다.

알면서도 행동하지 못하고 있다.

옆에서 힘들어 하는 동지들이 있는데,

나는 나서지 못하고

비겁자처럼 놀고 있다.

1996. 3. 23. (현구형 투쟁 100일째 되는 날 )



일 지

저, 진저리*는 생각합니다.

96새내기들이 모든 일에 열심이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선배가 될 때는 알겁니다.

내 마음을

열심히 살길 바랍니다.

모든 일에 열심일 때 여러분의 모습은

아름답게 보일 겁니다.




96. 4. 6. P.S. 김영삼 X새끼 < * 진저리 : 진철원 동지의 별명>

마석민족민주열사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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