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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전망 43호

기억과 전망 43호


기억과 전망 43호

책머리에(이관후)

『기억과 전망』 2019년 겨울호에서 편집위원 오제연은 “2020년은 4·19 혁명 60주년, 전태일 분신 50주년, 5·18 40주년이 되는 해로, 한국 민주주의와 관련하여 기억할 것도 많고 전망할 것도 많은 한 해가 될 것”이라고 권두언을 마무리했다. 실로 이번 호에 실린 글들은, 그러한 의도로 사전에 심사를 어찌할 바가 있는 것이 아님에도, 언급된 각각의 사건과 관련된 논문들이 모두 한 편씩 포함됨으로써 ‘한국 땅에 발을 디디고 있는 연구자들의 역사의식, 일종의 사명감이 어떤 식으로든 작동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실린 글들에 대한 소개는 잠시 뒤로 미루고 올 한해를 돌아보면, 역시 2020년은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상황을 경험했던 기이한 해로 기억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권두언을 쓰고 있는 지금도 정부와 서울시에서는 방역 단계를 더욱 상향하여 거의 모든 공공시설을 폐쇄하고 저녁 9시 이후의 사회적 삶을 사실상 중단하는 조치를 발표하고 있다. ‘우리의 삶이 과연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논하는 것은, 우리가 미래를 예측하려고 했던 것만큼이나 무의미한 일이 될 것 같다. 어쩌면 이러한 시기의 연구자들의 사명은 호사가들처럼 섣불리 앞날을 점치는 것보다는 지난 과거를 반성적으로 ‘기억’함으로써 새로운 세계의 방향을 세우고 그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미래란 우리가 손을 놓은 채로 무던히 시간이 흘러가서 마주하게 되는 시점이 아니라, 사람들의 의지와 그것이 구축하고자 하는 세계가 만나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면한 과제들만 보아도, 작게는 우리가 어느 정도의 방역을 하고 어느 수준에서 일상의 삶을 중단시켜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 크게는 감염병이라는 새로운 사태를 맞이해 기후위기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대처해야 한다는 각성을 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것 역시 이러한 과정의 일부일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번 호에는 한국사에서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다룬 논문들이 주로 실렸다. 우선 김일환의 “사립대학으로 간 민주화 운동: 4·19~5·16 시기 ‘학원분규’와 사립대학 법인 문제의 전개”는 그 부제가 설명하듯이 4·19와 5·16을 거치면서 학원 민주화 운동이 어떠한 방식으로 촉발되고 진행되었으며, 「사립학교법」으로 일단락을 짓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사회의 엘리트를 자처하던 대학생들이 4·19로 인해 개혁의 주체로 떠오르게 되자, 이들은 맨 먼저 자신들의 공간 내부에서 ‘학원의 독재자’에 대항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5·16을 맞은 사립대학 재단들은 다소 기묘한 위치에 처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학원 민주화를 저지하고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지키고, 다른 한편 대학을 포함한 사회 전체를 권위주의적으로 통제하려는 쿠데타 정권의 심기도 거스르지 않아야 했던 것이다. 1963년 제정된 「사립학교법」은 그러한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그 결과 군사정권이 대학 분규를 억누르기 위해 기존 이사회의 사적 지배 영역을 보장해 주고, 대신 규제를 통해 사립대학에 대한 정치적 통제가 가능하도록 하는 체제, 곧 김일환이 ‘갈등적 담합’이라고 부른 체제가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체제의 골격은 이후 유신독재와 1980년대를 거쳐, 사학법 개정 시도를 했던 노무현 정부, 그리고 대학의 위기라 불리는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크게 바뀌지 않고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동원은 전태일의 노동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인공지능과 연계한 매우 흥미로운 연구를 게재했다. ““나의 전체의 일부”인 인공지능: 1960년대 말 비인간 노동과 전태일의 후기인간주의”라는 논문은 전태일이 내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라는 세 가지 테제를 중심으로 ‘후기인간주의’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저자가 밝혔듯이 이 글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인공지능의 부상과 인간ꠓ기계의 새로운 관계 모색을 자본·기술의 관점과 미래의 전망이 아니라, 역사적 맥락 속의 노동의 관점으로 규명하려는 작업”이다. 조동원은 앞서 제시된 세 가지 테마의 의미를 각각 ‘(비)인간 선언’, ‘노동(자) 거부’, ‘지(의)식’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공장제 산업화가 본격화된 1960~1970년대 한국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인간주의와 더불어, 인간과 인간의 노동이 비인간화되고 그것을 거부하게 되는 후기인간주의가 이미 동시에 출현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전태일의 사례를 통해 밝혀내고 있다. 이것은 흔히 기술의 발전에 따른 인간(노동)의 변화를 서구의 이론에 기대어 막연하게 해석하려는 기존 한국 학계의 방법론에 대한 비판이며, 자본주의의 기술지배 양식에 대한 주체적인 비판적 성찰이 우리의 역사적 맥락과 사회운동, 정치경제에 대한 인식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울림으로도 읽힌다. 

김형주의 “5·18, 광주 일원에서의 연행·구금 양상과 효과: 계엄군의 연행·구금이 지역민 및 일선 행정기관에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는 4·19 혁명 60주년, 전태일 분신 50주년, 5·18 40주년으로 이어지는 민주화 3부작의 마지막에 해당한다. 이 글은 5·18 당시 연행과 구금의 방식, 효과를 지역적 맥락에서 이해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5·18 당시의 국가폭력에 대해서는 이미 다수의 연구가 이루어진 바가 있지만, 연행이나 구금의 방식이 끼친 영향을 구체적으로, 또한 이 글에서처럼 ‘이중 구조’의 측면에서 살펴본 글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이 논문은 ‘공세적이고 광범위한 연행·구금 대 수세적이고 지엽적인 연행·구금’, ‘폭력의 전시 대 폭력의 은폐’, ‘공포의 불안과 상승의 객체화 대 순응과 침묵’이라는 대립항을 통해, 당시 나타났던 계엄군의 폭력과 그 효과를 분석하고 있다. 또한 계엄군의 무자비한 폭력을 방관자나 협조자의 입장에서 가까이서 지켜본 지역의 경찰과 행정기관의 공무원 등이 어떠한 시선을 갖게 되었는지도 후반부에서 서술하고 있다. 저자 스스로 결론에서 밝혔듯이, 광주 전남의 지역사회에서 5·18 이후 계엄군의 폭력을 맞닥뜨린 사람들이 어떠한 사유적·행태적 변화를 겪게 되었는지, 또한 이것이 정치의식과 어떻게 결부되었는지 등에 대해서 후속 연구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이번 호에서 민주화의 역사적 사건이 아닌 주제를 다룬 유일한 논문은 정진영의 “존재로서의 사회운동: 발달장애인의 탈시설-자립생활 과정을 사례로”이다. 이 글은 탈시설-자립생활의 과정에서 발달장애인들이 사회운동의 주체로 어떻게 자리하는가를 탐구했다. 탈시설 장애인들은 기존 거주시설 정책의 폭력성과 지역사회의 배제를 체감하기도 하고, 자기 결정권의 권리와 책임 사이, 활동가들과의 관계 설정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 놓이게 된 발달장애인의 몸이 어떠한 ‘경계 지대’로서의 의미를 지니는지를 보여준다. 이것은 또한 ‘기존 사회의 수많은 경계들이 발달장애인의 몸 위에서 교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연구가 대상으로 삼고 있는 주제는 발달장애인이지만, 다른 한편 모든 경계의 생성 혹은 드러남은 늘 해당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지점에 있는 주체들이 그 사회의 공개된 장소로 노출될 때 발생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보편적인 주제이기도 하다. 당장 코로나19 상황에서 비로소 그 존재를 드러낸 ‘필수 노동자’는, 방역을 위한 사회적 거리가 누구 때문에 가능한지 보여주는 동시에 대다수 플랫폼 노동자들이 노동자와 비노동자의 경계에서 얼마나 위태로운 노동을 하고 있는지를 알려주기도 했다. 

한국사회의 민주화에서 중요한 사건을 다룬 세 편의 글과 정진영의 논문은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실은 모두 ‘억압적 체제와 (탈)근대적 주체’라는 키워드로 묶어 생각해 볼 여지도 있어 보인다. 각각의 연구들은 교육의 공간, 노동의 공간, 국가 폭력의 공간, 장애인이 세상과 맞닥뜨리는 공간에서 (비)의도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억압의 체제에 행위자들이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코로나19의 시대, 기술변화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여전히 앞으로 품고 가야 할 화두이기도 하다. 

회고록은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임헌영 선생이 써주셨다. 임헌영은 1941년 경북 의성 출신으로 초등학교 교사, 경향신문 기자를 지내고, 1966년 문학 비평으로 등단한 이래로 대학과 시민사회에서 문화예술 운동을 지속해 왔다. 박정희 정권하에서 여러 고초를 겪었는데, 1974년 소위 ‘문인간첩단 사건’,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투옥된 바가 있다. 이번에 실린 회고록 “투 스타의 추억 한 토막: 문인간첩단 사건에 대한 기억”은 그중에서도 전자의 사건을 자세히 그려내고 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을 회고하면서 임헌영 소장은 ‘별이 2개라는 점’에서 박정희도 ‘투 스타’이고 옥고를 두 번 치른 나도 ‘투 스타’라는 해학적인 요소로 출발해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끔찍한 고문의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을 유머를 섞어 자못 흥미롭게 펼쳐 나가는 부분에서는 오히려 애달픈 마음이 들기도 하거니와, 그 안에서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통해 배교를 강요하는 일본의 행태를 독재에 비유한 대목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후 서대문 구치소에서의 생활과 재판의 진행 과정, 석방 후에도 오랫동안 요시찰 인물로 살아야 했던 이야기들, ‘으악새 모임’을 통해 억압된 체제에서 겨우 숨 쉴 공간을 마련했던 당대 사람들의 기지 역시 그 시대를 살아보지 못한 뒷사람들에게는 소중한 읽을거리다. 

이번 호의 주제서평은 전북대학교에서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신동원 교수의 글이다. “한국전쟁과 전염병 연구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제목의 서평에서 신동원은 이임하가 쓴 『전염병 전쟁: 한국전쟁과 전염병 그리고 동아시아 냉전 위생 지도』를 중심으로 2020년 코로나와 한국전쟁기의 전염병을 대조시키고 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서평처럼 한 권의 책에 대한 소개와 비평에서 그치지 않고, 감염병에 대해 국내에서 출간된 거의 모든 서적의 일람을 제시하고 한국전쟁기에 전염병을 다룬 저작들을 개괄하고 비교하는 등, 하나의 논문이라고 해도 남음이 있을 정도로 육중한 서평이다. 따라서 이러한 특정을 감안하여 편집위원회에서는 이 글에 대해 ‘서평’이라는 일반적인 타이틀 대신에 ‘주제서평’이라는 적절한 코너 제목을 부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판단하였다. 신동원 교수는 한국전쟁기의 감염병에 대한 연구가 어떠한 이유로 어려웠으며, 그것이 수만 쪽에 이르는 주한유엔민간원조사령부(UNCACK) 자료를 통해 어느 정도 해소되게 된 과정과 배경, 그러한 맥락에서 5만 쪽이 넘는 문서를 통해 정리한 이임하의 연구가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그동안 주요한 사망 원인을 아사나 동사로 알고 있었던 국민방위군 피해자의 다수가 실은 전염병 발진티푸스로 인한 피해자였으며, 그 역시 방역의 무능에서 기인한 인재(人災)였다는 점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이 글은 이임하의 책 이외에도 유사한 주제를 다룬 전우용의 저작과 당시 북한의 사정을 추적한 문미란, 홍순원의 연구까지 비교하여 소개하고 있어 매우 유용한 주제서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2019년에 2020년을 예상했듯이, 2020년에 2021년을 내다보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다. 세상은 여전히 코로나19라는 짙은 안개 속을 헤매고 있고, 사람들의 삶은 숨어들거나 부유하고 있다. 우리의 일상이 ‘다시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을 넘어, ‘다시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우리가 그것을 원할 것인가?’라는 또 다른 질문은 우리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후자의 말은, 우리가 늘 생각만 해왔던, ‘전복적 사고가 다수의 삶으로 스며들어서 가능한 세계가 되는 대안적 미래는 어떻게 탄생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적 계시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억에서 전망으로 가는 방법론이기도 하다. 내년에 어떠한 세상이 펼쳐지든지 간에 묵묵히 이 질문을 탐구해 보는 것도 필요한 일이 아닐까 한다. 당황스럽고, 어수선하고, 슬프고, 고단하고, 막막했던 한 해가 가고 있다. 모두가 행복하시길.

 

2020년 12월
편집위원회를 대표하여

이관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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