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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민주화운동사

대구경북민주화운동사


대구경북민주화운동사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지역과 수도 서울간의 상호경쟁과 협력적 발전의 과정이었다. 그러나 한국민주화운동사 연구에서 지역민주화운동의 연구는 필수적 영역이나 소홀한 면이 있었다. 이 연구는 항쟁의 시발지 또는 격발지인 지역 저항운동의 동태와 역동성을 밝혀내고 전체 운동사에서의 위치 바로잡기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한편, 민주화운동사 연구는 해당 지역사 연구의 중요한 공백을 메우는 작업이기도 하다. 대구경북의 역사로는 관찬사로서 경상북도사(1983년)와 대구시사(1995년)가 편찬되었지만, 민주화운동사는 공백으로 남아있다. 대구경북은 현재 수구보수 세력의 아성으로 알려져 있다. 87체제 이후 역대 선거에서 진보적 정당이 승리한 적이 한 번도 없으면서 이런 평가가 굳어졌다. 하지만 대구경북이 대한민국 성립 이래 줄곧 이랬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해방 이후 전개된 주요한 민주화운동이 대구경북에서 시작하거나 선도했던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은 1970년대까지 이어지다가 1980년 광주항쟁을 기점으로 흐름이 바뀌었다 할 수 있다. 5·16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권력기반을 강화하기 위해서도 출신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자신을 반대하는 민족민주운동세력을 탄압하고 제거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60년대 중반에서 유신시기에 일어난 중요한 공안사건의 관련자가 대구경북지역에 집중되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면서 1950~60년대 진취적이고 개방적 시민의식을 가졌던 대구경북 지역은 1970년대를 거치면서 서서히 보수화되어 갔다.

1980년대 대구경북 민주화운동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나타내었다. 먼저, 대구경북은 독재정권의 지역주의 지배전략의 강력한 자장 속에서 힘겹게 운동을 전개했다. 지역적 불평등과 연고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지역주의는 군사독재정권이 사회적 저항을 진압·봉쇄하고 집권을 도모하기 위한 정책수단으로 삼으면서 심화되었다. 대구경북은 지역 출신 엘리트들이 장기집권하면서 주요 기관을 장악하고 말단까지 보수 세력이 정치적 주도권을 행사한 지역이다. 이 시기 5·18민중항쟁을 지지하는 민주화운동 참여자들은 ‘극렬용공좌경 분자’라는 이데올로기적 공세에 시달리며 소수집단으로서 대중운동을 전개해야 했다. 이런 열악한 상황 속에도 민주화운동을 끊임없이 전개하고 확장시켰다.

둘째, 유신시기 공안사건으로 막대한 인적 손실을 입었던 1980년대의 대구경북지역 민주화운동은 전국적으로 선도성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1983년 대구 미문화원 폭발사건은 조금씩 복원되는 조직역량에 심대한 타격을 입혔다. 민주화운동세력은 공권력의 탄압과 보수적 지역공동체의 억압에 맞서면서 전국운동의 보조와 함께하며 민주화운동의 폭을 확장했다. 전선운동과 학생운동, 여성운동은 전국운동의 흐름을 따라가는 형편이었다면, 농민운동, 교육운동, 문화운동은 전국운동에서도 선도성을 발휘하면서 전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셋째, 대구경북지역의 민주화운동은 대구와 경북이라는 다른 성격의 지역들이 결합하여 전개됐다. 대도시인 대구와 농촌 및 군소도시로 구성된 경북은 운동의 전개와 발전양상에 차이가 있었다. 대구는 학생과 지식인운동 중심의 도시일반의 성격이 강했고, 경북은 농민운동과 노동운동의 발전에 따라 지역명망가 중심에서 노동자·농민이 지역운동의 주력이 됐다. 노태우정권기에는 이런 특징이 심화되었다. 이 시기 포항과 구미는 노동자들이, 안동은 농민과 학생들이, 그 밖의 다른 지역은 농민들이 지역운동의 주력으로 나섰다. 특히, 1989년 봄 전교조가 결성된 뒤, 경북의 대부분 시·군에서는 지역 농민회와 전교조 교사들이 연대하여 시·군 단위의 대중운동을 건설하는 촉진자 역할을 했다.

넷째, 제도권 야당의 기반이 약하고 수구·보수 세력이 강한 대구경북지역의 민주화운동은 다른 지역보다 운동세력의 자립성·독자성이 강했다고 볼 수 있다. 제5공화국 시기에는 신민당과의 연대로 운동의 활로를 개척하거나 탄압을 돌파하기도 했지만, 1990년 3당 합당 이후에는 제도정치권과의 연대는 미약했다. 그리고 이런 특징 때문에 여러 부문에서 지역연대조직이 비교적 빠르게 결성됐다

1980년대 대구경북지역 민주화운동 세력은 지배세력의 탄압에 맞서며 다양한 영역에서 치열하게 활동을 전개했지만, 지역주의 통치의 장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 결과 보수대연합과 김영삼 정부의 출범을 막지 못해 30여 년간 수구보수의 아성이라는 대구경북의 정치적 지형을 초래하고 말았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강고하고도 치열한 투쟁을 통해 지역 민중에게 민주주의와 민족통일과 민중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사회건설에 대한 전망을 제시해왔다. 그러면서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지역 민주화운동을 새롭고 다양한 형태로 전개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리고 수구·보수 세력의 심장부에서 민주주의의 의지를 끊임없이 표출하고 그들을 타격(압박)함으로써, 한국 사회 민주주의 발전에 중요한 보루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진보적이나 고립된 투쟁을 넘어 지역대중을 설득하여 정치적 다수가 될 수 있는 대중적 활동을 강화할 책무 또한 떠안고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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