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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권-당시 23세

김용권-당시 23세

김용권(당시 23세)

1964년 6월 10일 출생.
1983년 서울대 경영과 입학.
1985년 카튜사 자원 입대.
1987년 2월 20일 내무반에서 의문의 교사체로 발견됨.
1983년에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김용권 동지는 1985년 10월 카투사병으로 지원입대하여 의정부 소재 캠프 인디안에서 복무하였다. 그러던 중 1987년 2월 20일 오전 10시 50분경 자신의 막사에서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김용권 동지의 목은 탁자위의 전기스탠드 끝으로 이층침대 난간에 매달려 있었으며 얼굴은 침대 쪽을 향해 있었으며, 하체는 꿇어앉은 모양이었다.

한편 영등포에 살고 있던 김용권 동지의 어머니인 박명선씨는 그날 오전 10시경 부대로부터 김용권이 없어졌으니 급히 부대로 와보라는 연락을 받고 급히 부대로 왔다. 박명선 어머니가 부대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경이었으며 이때 아들 김용권의 시체가 막사에서 발견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시체에 대한 검사는 이미 끝난 상태였으며 시체는 이미 병원으로 올겨진 상태였다. 마침 스낵바에 있던 인사계(?)가 현장의 모습을 설명해주었으며 그에 따르면 김용권은 자살했다는 것이었다.

가족들이 김용권 동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시체로 발견되기 이틀전인 2월 28일이었다. 이 날 김용권동지는 자대를 오전 7시 25분 출발하여 용산소재 미8군 121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복용약을 받은 후 영등포의 자택에 들렀다가 오후 7시경 전철을 타고 귀대하였다. 가족의 입장에서 김용권동지는 8월 18일에도 자살할 만한 별다른 징후를 보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3남1녀의 장남으로서 집안에서 김용권 동지에게 거는 기대가 컸던 만큼 김용권 동지의 자살소식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더구나 김용권동지가 고문을 당하였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은 바 있고 또 시체가 발견된 날에도 몇가지 납득할 수 없는 일이 전개되는 것으로 보아 타살일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는 생각조차 하게 되었다.

이러한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김용권동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고문 및 의문의 사망에 관한 진상조사와 관련자의 처벌”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작성하고 이를 고문폭력대책위원회(?)에 제출하였다. 이 위원회는 진정서를 접수한 후 김용권동지의 가정을 방문하여 의문점이 무엇인지를 자체적으로 조사하였다. ‘고박종철군 범국민추도회 준비위원회 집행위원회’에서 ‘고김용권군 의문사사건 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하여 민간차원의 대응을 모색하였다. 이들 민간단체와 교회 등은 스스로 조사를 하고 조사보고서와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이 과정에서 2월 28일에는 고문폭력대책위원회 위원장이었던 김상근, 3월 3일에는 목사 김동완 등이 연행되고 즉심에 넘겨져 구류를 살기도 했다. 이러한 민간차원의 적극대응과 아울러 박명순은 3월 3일 미8군 사령관에게도 진정서를 넣어 의문점을 통보하고 엄정한 조사를 요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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