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동 대공분실은 서울의 중심 용산구에 위치해 있지만 서측으로는 철도가 지나가고 남측으로는 미군기지 캠프킴(CAMP KIM)이 있어 주변 환경에 의해 도시와 단절된 곳에 존재한다. 이는 대공분실이라는 용도의 성격상 적합한 장소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한강대로에서 진입이 용이하고 건물 내에서 부지를 조망하기 위해 대지의 북측에 건축물을 배치하였다. 대공분실은 대공용의자 조사를 담당하는 ‘분실동’과 통신 정보 분석업무를 담당하는 ‘AMD동’, 그리고 식당 및 기계 보일러실이 위치한 ‘부속동’으로 구성되었다. 각 건물은 기능에 따라 독립적으로 구성되었다. 5층 규모의 분실동은 남향으로 배치하고 그 좌측으로 2층 규모의 AMD동을 연결하였으며, 부속동은 AMD동 남측에 별동으로 배치되었다.
1호선 남영역 플랫폼에서 보이는 남영동 대공분실, 보통사람의 일상과 남영동 대공분실의 비일상이 이렇게 가까이에서 공존하고 있었다.
한강로에서 진입하는 길의 정면에 주출입구가 위치해 있으며, 비정형의 형상을 갖고 있는 주출입구와 경비실은 실제 설계에서는 현재와 같이 바뀌었다. 진입로 정면에 위치한 주출입구는 보안상 신속한 움직임이 필요한 업무 속성에 적절한 구성으로 보인다. 주목할 것은 주출입구가 2중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외견상 일반적인 양 여닫이문이 설치되었으나, 내부에는 외부에서 위력에 의한 진입을 시도할 경우 이를 저지할 수 있는 슬라이딩도어가 추가로 설치되어 있다. 육중한 무게의 슬라이딩도어 작동을 위해 내부에는 모터가 설치되어 있다.
분실동 지상 1층은 현재 교육장과 전시실이 주요 공간을 이루고 있으며 그 외의 공간은 로비와 화장실, 계단실, 창고 등 부속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분실동은 신축 당시에는 사무공간과 숙직실 및 피의자의 출입을 위한 출입구(건물 뒤편)와 검색실 그리고 면회실 등이 위치했으나 경찰청 인권센터로 사용하면서 용도가 변경되었다.
분실동의 지상 2층은 사무실, 휴게실, 시스템실, 서버실, 통신실, 숙직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시스템실에는 통신 설비가 배치되어 있다. 대부분의 공간들이 이전 소유자가 사용할 당시 그대로 남아 있다. 1976년 원 도면에서 확인되는 코어에 위치해 있는 두 개의 승강기 중 직원용은 전 층을 운행하도록 설계되고, 피의자용 승강기는 1층과 5층만 연결되도록 설계되었다. 그러나 현재 2층의 사무실에서 피의자용 승강기 출입구가 확인되는데 이는 시공과정에서 원 설계와 달라진 것으로 판단된다.
분실동의 지상 3층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위계가 가장 높은 시설이 집중되어 있다. 대공분실 책임자의 업무공간이 위치할 뿐 아니라 고위급 피의자를 조사할 수 있는 특수조사실이 배치되었다. 3층은‘특수조사실, VIP실, ITV 기계실, ITV 모니터실, 실장실, 실장실 전실, 실장 침실, 반장실’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분실동은 AMD동과는 기능적으로 다른 공간이지만, 분실동 3층에 위치한 반장실에서 AMD동 계단실과 연결되며, AMD동 계단실을 통해 AMD동 전층과 연결된다. 지상 3층의 공간구성은 1983년 증축 이후 책임자의 공간이 7층으로 이전함에 따라 공간 구성에 변화가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나, 현재로는 어떻게 변화되었는지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다. 지상 3층은 남영동 대공분실의 본부에 해당하므로 5층 조사실 못지않은 중요한 장소이다.
특수조사실은 고위급 피의자를 조사하기 위한 공간이며, 벽면 마감이‘유공합판 위 V.P. (비닐페인트)’인 것을 볼 때 차음을 고려하여 계획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VIP실도 3층 약전평면도에서 감시용 카메라가 설치된 것을 확인되므로 고위급 피의자를 조사하기 위한 공간이었다고 볼 수 있다. 벽면 마감은 특수조사실과는 달리 ‘고급흡음벽지’로 기재되어 있다. 특수조사실은 용도와 마감재료 및 공간의 구성 측면에서 5층 조사실과 동일하지만, 화장실이 독립실로 구성되어 있고 면적은 배 이상 넓다. 신축 당시 3층은 대공분실 책임자가 사용하던 공간이었으나, 1983년 증축 후 책임자의 공간이 7층으로 이전함에 따라 3층의 공간구성에 변화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되지만 실체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3층과 7층은 남영동 대공분실을 운영했던 지휘본부가 위치했던 곳이다.
지상 3층 동측에 위치한 ITV 기계실 및 ITV 모니터실은 3층과 5층에 위치한 피의자 조사실에 설치된 감시용 카메라로부터 영상과 음향을 수신하는 장소이자 감시하는 장소다. 1976년 원도면에 수록된 약전평면도를 살펴보면, 지상 3층의 ‘특수조사실, VIP실’, 그리고 지상 5층에 위치한 18개의 조사실에 설치된 감시카메라의 배선이 모두 지상 3층의 ITV 기계실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76년 감시용 비디오 및 오디오 배선 : 3층 약전평면도(좌), 5층 약전평면도(우)
지상 3층 동측에 위치한 ITV 기계실 및 ITV 모니터실은 3층과 5층에 위치한 피의자 조사실에 설치된 감시용 카메라로부터 영상과 음향을 수신하는 장소이자 감시하는 장소다. 1976년 원도면에 수록된 약전평면도를 살펴보면, 지상 3층의 ‘특수조사실, VIP실’, 그리고 지상 5층에 위치한 18개의 조사실에 설치된 감시카메라의 배선이 모두 지상 3층의 ITV 기계실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상 4층은 두 개의 전시실과 수장고, 그리고 기계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실은 자동 유리문에 의해 중앙의 복도와 분리되어 있다. 우측은 박종철 기념 전시실, 전시실 안쪽에 수장고와 기계실이 존재한다. 좌측은 경찰청 인권센터 시기부터 전시 공간으로 리모델링되어 사용되었다.
분실동의 6층은 두 시점을 통해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1976년 최초 준공 당시에는 옥탑층으로 ‘배풍실, 물탱크실, 승강기 기계실’ 이 위치해 있었다.
1983년 2개층 증축 공사를 통해 기존 옥탑층은 지상 6층의 업무공간으로 변경된다. 증축되어 조성된 지상 6층에는 ‘외근반, 서무반, 5분실장실, 연구실’
등이 위치하게 된다. 지상 6층은 기존 저층과 동일한 위치에 기둥을 연장하여 증축되었기 때문에 외근반과 연구실의 중앙에 구조 기둥이 노출되어 공간
활용 측면에서 효율적이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 2019-2020년 (가칭)민주인권기념관 임시운영시 사무실과 일부 창고로 쓰였다.
2개층이 증축되면서 2~4층에 위치했던 업무공간이 전면적으로 재편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구체적인 업무공간의 변화를 파악하는 것은 현 단계에서는
어렵다. 추후 관계자의 증언을 통해 업무공간의 변화를 파악하는 것은 1987년 사건 당시 남영동 대공분실의 공간이용현황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분실동의 7층은 6층과 함께 1983년 증축되면서 조성되었다. 7층에는‘단장실, 비서실, 단장 개실, 관리 및 지도반,
회의실’등이 위치해 있다. 지상 6층과 동일하게 기존 구조 기둥이 연장되었지만 비교적 작은 면적의 공간들이 배치되어 구조부와 실내공간의 간섭은 관리
및 지도반에서만 발생한다. 현 단계에서 전체 공간의 재구성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7층의 공간구성을 통해 3층의 책임자 공간이 7층의 단장실 공간으로
재구성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기존의 지상 1층에서 지상 5층까지 연결되었던 피의자용 원형 계단은 6층에서부터는 연결되지 않는다.
* 2019-2020년 (가칭)민주인권기념관 임시운영시 시민단체에 무료로 개방하여 7층 강당은 시민단체에 무료로 개방하였고 일부는 회의실로 쓰였다.
기존 옥상층에는 정보 분석을 위한 송수신 설비 2세트가 옥상에 위치했음이 사진을 통해 확인되지만, 1983년 증축 후에는 송수신 설비가 변경되었음이 확인된다. 기존 옥탑층에 위치했던 승강기 기계실은 1983년 증축시 두 개 층 위로 이동하였지만, 피의자 수송용 승강기는 6층과 7층에 개구부를 설치하지 않고 일반 승강기만 연장하여 운행하도록 계획되었다.
분실동과 AMD동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외부공간은 홀 방면의 출입문 및 창호나 면회실의 출창, 그리고 정팔각형의 외벽으로 감싸진 계단 등 주면의 조형적인 건축 장치들 간의 틈새 공간으로 매우 섬세하게 디자인되었으며 두 건물의 진출입을 연결시켜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 분실동의 주출입구 구성방식은 1979년에 준공된 동숭동의 '샘터사옥'과 '아르코 미술관'의 주출입구 구성과 매우 유사하다. 이와 같은 주출입구 구성은 건축에 도시를 담고자 했던 김수근의 건축에서 자주 나타나는 김수근 건축의 특징적인 부분이다.
통신과 정보 조사 및 분석을 주 업무로 하는 AMD동은 공간적으로 대공분실과 분리되어 있다. 이는 AMD동내에서 이루어지는 업무와 분실동에서 이루어지는 업무사이에 공통점이 없기 때문이다. AMD동의 1층에는 ‘서무실, 숙직실, 예비실, 기계실, 정비실, 창고, 전시실, 화장실’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이들 기능은 분실동과 별도로 계획된 자기완결적인 공간구성이다. AMD동의 2층에는 ‘방송 방탕통제실, 통신암호분석실 2개소, 305 작업실, 305 분석실, 숙직실, 서류창고, 사진실, 암실’이 배치되어, 대공분실 내에서 이루어지는 무선 감시 및 통신 암호 분석 등 특수한 업무를 수행하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AMD동의 2층은 중복도로 구성되었는데, 중복도의 서편은 철로에서 발생하는 소음 방지를 위해 개구부를 설치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소음은 차단되지만 햇빛을 받을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복도 서편에 위치한 작업실과 분석실은 층고를 높여 동측 상부에 고측창을 설치하였다. 이로 인해 2층은 중복도를 사이에 두고 사무공간보다 작업실 및 분석실의 층고가 높게 설계되었다. 2층에서는 AMD동과 분실동이 기능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통신암호 분석을 주 기능으로 하는 AMD동의 2층은 5층 건물(증축 이전)인 분실동의 옥상에 설치된 무선 송수신탑과 기능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현재는 관련 시설이나 장비가 완전히 철거되어 구체적인 실의 사용방법을 추정하기 어렵다.
AMD동의 서측 입면은 소음에 대응하기 위해 철도변으로 창호를 설치하지 않았으며, 동시에 서측벽면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물홈통 요소를 이용하여 넓은
벽면의 지루함을 해소하였다. 남영역과 바로 맞닿아 있다.
*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직후의 6개월을 다룬 영화 <1987>의 배경이 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부속동은 지하 1층과 지상 2층으로 구성되었는데, 지상 1층과 지하 1층은 전기 및 기계실이 위치하며, 지상2층에는 식당이 위치해 있었다. 이 공간들은 남영동 대공분실의 지원 용도로써 보일러와 펌프 등 각종 기계들이 위치해 있고 지하 피트를 통해 각 공간으로 연결되는 배관으로 각종 설비와 연결된다. 현재 오일 탱크실로 들어가는 문은 폐쇄되어있으나 대부분의 공간이 초기의 모습 그대로 잘 남아있다. 지하 1층은 대체로 큰 부피를 가진 기계들이 많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지상 1층까지 복층 공간으로 되어 있다. 지상 1층에는 펌프실과 배전반실이 최초 계획되었다. 부속동 2층은 ‘식당, 주방, 창고’가 배치되어 있었으며 동측으로는 넓은 베란다가 외부 공간으로 있다. 식당의 경우 계획 초기에는 고려되지 않아 1층 규모로 계획이 진행되었으나 설계 과정 중 발주자의 요구로 인해 추가하게 되어 2층 규모로 변경되었다.
당시 관공서 건물로는 드물게 외부 운동시설인 테니스코트가 설치되었다. 이는 은밀하게 움직이는 대공업무의 속성상 이곳 근무자들이 외부에 노출되지 않고 체력을 단력할 수 있도록 설치된 시설로 알려져 있다. 테니스코트의 존재는 1967년 항공사진에서 확인되며, 남영동 대공분실이 건축되기 전에 이곳에서 테니스를 치는 사진을 통해서도 테니스장의 존재가 확인된다.
현장에서 해당 도로를 따라 남측으로 가면 미군기지 캠프 킴과 맞닿는 곳에 남영동 대공분실의 대문과 다른 형상의 대문이 있다. 남측의 대문에서 캠프 킴의 담장을 따라 서측으로 가면 철도와 캠프 킴 사이 공간으로 연결되며 이 공간을 통해 곧장 외부로 나갈 수 있게 된다.
외부공간의 중앙에는 차량이 회차 할 수 있도록 로터리(원형 잔디밭)이 형성되었고 분실동 전면의 외부공간 남측에는 국기게양대가 위치해 있다. 외부공간은 일부 설계 당시와는 달라졌지만, 나무와 관목이 성장한 점 외에는 비교적 그대로 유지되었다.
남영동 대공분실 대문 옆에 위치해 있는 안내실은 1976년 원도면에서는 위치와 전체적인 형태만 확인 가능했으며 전기 도면 배치도에서 수위실의 평면을 확인할 수 있다. 내부는 두 개의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연결되지는 않는다. 외벽은 벽돌을 들여쌓기 하여 치장하였다. * 2019-2020년 (가칭)민주인권기념관 임시운영시 앞 공간은 안내실로, 뒷 공간은 해설사 휴게실로 쓰여졌다.
* 출처: 건축 관련_남영동 대공분실 시설물 기초조사 연구보고서
영상_김희철 / 사진_서영걸, 정택용 / 건축사진_진효숙